2020년의 봄, 여름, 가을은 코로나19에게 빼앗겼다. 비대면이라는 명제 아래 맞잡은 손의 온기를 누리는 자유도 같이 잃어버렸다. 2와 2.5라는 수치로 표기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물리적 한계에도 경직되었다. 온기를 나누는 마음은 바이러스보다 힘이 더 셀 것이라 믿으며 토닥여본다. 열 살 꼬마 아가씨와 아이를 돕는 세 여자의 동행 이야기로 마음 온도를 높여 위안을 나눈다.
열 살 영래는 시작장애아이다. 엄마는 영래에게 넓고 푸른 숲이 되었다. 할머니는 그 숲의 가장 큰 느티나무다. 박승자 돌봄 선생님은 숲 속 나무사이 길을 안내한다. 박승자 돌봄 선생님은 영래가 하교할 때 픽업해서 아이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공부를 돌봐주는 동행자다. 영래와 선생님의 낯선 만남은 사계절이 지났다. 이제는 이모라는 호칭과 박승자 선생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친구와도 함께 어울리며 따뜻한 연대(連帶)를 이루고 있다. 깜찍한 영래의 매력에 다들 흠뻑 빠졌다. 물론 골 부리는 모습은 여느 집의 열 살 여자아이와 다를 바 없다. 함께 가야 할 이유다.
영래 엄마, 아픈 만큼 더 멀리 더 깊이 봐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는 행복했다. 아들도 사랑스러웠지만 딸은 더 예뻤다. 백 일이 지나면서 충격적인 사실과 맞닥뜨렸다. 영래가 엄마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생후 3개월이면 엄마와 눈도 마주치고 빛 반응도 보일 때인데 영래는 반응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아이를 데리고 검진을 갔다. 검사는 오래 걸렸고, 부모에게 아이가 평생 볼 수 없이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의사의 입장도 이미 형벌이나 다름없었다.
영래가 영구장애라는 의사의 선고를 듣고 가족들의 마음은 무너졌다.
집에 올 때 까지도 입술을 깨물며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엄마는 모든 것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3개월 된 딸이 있다는 사실도, 30개월 된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저 대답 없는 물음을 던지며 나락으로 한 없이 떨어졌다. 아빠는 참다못해 SNS에 영래가 영구 시각 장애인이라고 포스팅을 하며 영래의 상태를 수면위로 올려버렸다. 처음엔 남편의 돌발행동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공포탄을 쏘아 올리는 것뿐이었다. 빛은 저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 모두가 보고 알게 된 그날…,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장애아를 가진 엄마, 장애아를 가진 가족, 그리고 장애아를 가진 오빠…. 모든 것이 두렵기만 했다. 누군가는 놀라 전화를 걸어왔고, 누구는 마땅한 위로의 방법이 없어 멀어져갔다.
돌이켜보면 남편의 결정이 옳았다. 이미 쏘아 올린 공포탄으로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놓았다.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래 받아들이자. 그래 영래가 당당히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내가 앞장서서 도와가자. 일찍 시작한 특수교육. 그리고 영래를 위한 모든 환경이 다시 편집되었다. 이사도 했다. 영래를 위해 아낌없는 나무가 되었다. 이 험한 세상을 영래가 꿋꿋하게 살아가려면 더 많은 것을 도와주고 더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우선 하는 것은 혼자 해낼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엄마는 힐링 플레이 “숲에서 놀자”를 운영하는 활발한 활동가다. 영래에게 멈추지 않는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영래의 몸과 마음을 성장 시킨다.
영래 할머니, 뿌리를 깊게 내린 큰 느티나무
할머니의 친필에 손녀딸에 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저녁 식탁을 준비하는 영래의 할머니. 우엉조림을 만드시는 손끝에 정성이 고스란히 배었다. 손녀딸에게 여름날 느티나무 같은 분이다. 비바람을 막고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신다. 마을을 지키는 든든한 나무처럼 영래를 지키는 뿌리 깊은 나무이다.
돌봄 선생님에서 ‘이모’가 되다. 박승자 선생님
영래와 선생님의 첫 만남. 맹학교 하교 수업시간 영래를 기다리며 설레었다. 단발머리에 깜찍한 꼬마와 첫 만남은
“몇 살이세요?”
영래는 만나자마자 선생님에게 나이를 물었다.
“응 선생님은 쉰세 살이야.”
“나는 아홉 살인데….”
첫 대화로 높은 담 하나를 무너뜨렸다. 차에 오르자마자 ‘철커덕’ 안전벨트 매는 소리가 들렸다.
‘아, 혼자 할 수 있는 아이구나.’
선생님은 뭉클하고 기특했다.
“차가 참 넓어요. 차가 참 좋아요.”
“저는 여자 친구를 갖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 반에는 남자 친구 한 명과 수업을 받아야 해요.”
아주 똑똑하고 분명한 아이였다. 첫 만남이 좋았다. 당돌하리만치 궁금한 것은 바로바로 질문을 했다.
이어지는 한마디에 선생님은 놀라고 말았다
“세탁기도 제가 돌릴 줄 알아요. 제 속옷과 실내화와 앞치마는 내 손으로 빨아요.”
환경을 생각해서 피죤 대신 식초를 쓴다는 말에
“우리 집도 식초를 써.”
선생님의 대답에 반색하는 영래가 너무 기특했다.
사소한 대화는 둘이 더 친밀해지는 통로가 되었다.
하교 길에 영래는
“보이는 것 이야기 해 주세요.”
선생님은 좌회전을 하며
“음, 지금 학교 골목을 빠져나왔어. 앞에 미용실도 보이고 고층 아파트도 보이네.”
“타이어 뱅크는 바퀴 은행이죠? 그런데 나는 영어가 싫어요. 그래서 나는 바퀴 은행이라고 부를래요.”
“그런데 왜 치킨이라고 해요?” 영래는 쉬지 않고 질문을 해 댄다. “그냥 닭튀김이라고 해도 되죠?”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 또 질문 그리고 대답들. 영특한 아이다.
선생님과 영래의 마음의 거리는 좁혀지고 이해의 폭은 더 넓어졌다.
영래에게 보내는 연서 by 박승자 선생님
―꽃집에 갈까요? -향기 있는 삶이길-
“내 앞에 먼저 가지 마세요. 만지지 마세요. 선생님이 만든 거 먹기 싫어요.”
며칠 동안 힘들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아니 영래로서는 불편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가까워질 수 없는 평행선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차타고 가면서 보이는 것 엄마와 이야기 나누기라는 슬기로운 생활 과목의 숙제가 눈에 띄었다. 그래, 그거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앞에 동구청이 보이네. 엄청나게 큰데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어. 그러니 영래도 만져보고 싶다고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근데 그 구멍이 너무 커서 차도 지나갈 정도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그냥 지나쳤던 여러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식당도 보이고 교회도 보이고 아파트도 보이고 어린이집도 보이고 미용실도 보이고 그리고 꽃집도 보였다. 그랬더니 영래가 꽃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제일 큰 꽃집 골목에 차를 세웠다. 집에 오다가 중간에 내려서 움직이는 것이 처음이라 조심스러웠다. 어떻게 영래를 데리고 다녀야 할지 기도가 되었다. 맘대로 잡을 수도 없고 그냥 혼자가게 하면 다칠까 염려됐다. 그렇게 길을 건너가서 국화화분이 보이기에 안내해주고 살살 만져보도록 했다. 큰 화분도 있어 향기도 맡아보고 만져보며 좋아했다. 그런데 그곳에 향기가 나는 허브종류가 있는지 여쭤보았다. 안쪽에 계시던 주인아주머니가 나오시며 영래가 꽃을 만지는 것을 보시고는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 꽃을 만지면 어떡해, 안돼!하며 영래를 쳐다보셨다. 영래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내가 얼른 다른 나무로 안내해 주었다. 향기 나는 율마를 쓰다듬어 줄까? 영래는 그날 율마를 쓰다듬으며 향기를 느껴보았고 로즈마리를 이리저리 흩어주며 사랑을 전했다. 그렇게 그날 영래와 꽃구경은 처음 나들이를 잘 치른 즐거운 날이 되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베란다 화단에 갖다 놓고 직접 조리에 불을 받아 물을 주기도 하였다. 뭐든지 자기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영래에게 좋은 선물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영래야 율마나 로즈마리처럼 향기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네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가치와 귀중한 삶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며 행복하고 행복을 전하는 삶이되길 기도한다. 사랑한다, 영래야.
세 여자는 영래의 그림자이지만 빛이 난다. 어두운 밤하늘이 되어 영래를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게 만든다. 영래가 가는 길이 어둠에 묻히지 않도록 손잡고 그 길을 안내한다. 사랑과 희생이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영래 엄마, 할머니, 돌봄 선생님 세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이 단순한 ‘미담’으로 희석되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 함께 가는 시민 의식으로 뿌리내려 또 다른 ‘영래’도 세상이 지켜내야 한다. 모두 함께 가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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