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의 단상]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홍경석 편집위원 승인 2020.12.10 17:06 의견 0

미운 오리 새끼(The Ugly Duckling)는 2012년에 선보인 한국 영화다. 전직 기자 출신의 아버지는 군사정권 시절 고문 후유증(정신 이상)으로 가장노릇마저 할 수 없다.

설상가상 그 바람에 어머니는 미국으로 떠난다. 이런 특수한 집안 사정 때문에 주인공인 23살 전낙만은 오후 6시에 칼퇴근하는 6개월 방위로 군 생활을 시작한다. 낙만은 처음엔 소위 ‘깍새’라 불리는 이발병으로 입대했다.

이후로 그가 하는 일은 사진 찍기, 바둑 두기, 변소 청소, 거기에 헌병 대신 영창근무까지 서는 그야말로 팔방미인, 아니 ‘팔방방위’로 활약한다.

낙만은 6개월 방위라는 폄훼의 표현인 ‘육방’이라는 이유로 하루하루 무시당하기 일쑤다. 얼른 이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삶을 낭만(浪漫)으로 치환코자 고군분투한다. 이런 가운데 별별 희한한 감방 수감자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자신을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군 내 간부들의 온갖 횡포와 갑질에 분노를 느낀다. 그렇지만 가장 말단이자 최하위 을(乙)인 ‘미운 오리 새끼’ 방위병으로서 낙만은 과연 자신의 의도대로 무사히 전역할 수 있을까?

곽경택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1980년대 시절 헌병대에 배치된 ‘6방(6개월 방위)’ 전낙만 이병 이야기다. 지금은 없어진 방위병의 얘기지만 내가 실제 방위병으로 복무했다. 그래서 느끼는 감회가 남달랐다.

한 달에 한 번 군부대로 집체교육(集體敎育)을 가면 위병소(衛兵所)를 1km 앞두고부터 “좌로 굴러~ 우로 굴러”로 현역들이 잔뜩 군기를 잡았다. 한겨울에도 땀이 뻘뻘 흘렀으며, 군복은 하수구에 빠진 땅강아지처럼 너저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묵묵히 감내할 수 있었던 건 ‘거꾸로 걸어놔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진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낙만처럼 나 역시 부모님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했다.

낙만은 ‘깍새’였지만 나는 소년가장이 되어 역전에서 구두를 닦는 ‘딱새’로 고생을 경험했다. 구두닦이엔 ‘찍새’와 ‘딱새’가 있었다. 찍새가 인근의 다방 등지에서 손님의 구두를 찍어오지 않으면 딱새는 할 일이 없었다.

처음엔 경험이 없었으므로 찍새를 시작했는데 구두를 많이 물어오지 못한다고 만날 두들겨 맞았다. 그렇지만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풍진 세상과 맞짱(일대일로 맞서 싸우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뜨며 살았다.

못돼먹은 양아치들이 계속 괴롭히기에 밤마다 은밀하게 복싱을 배워 결국 평정(平定)했다. 이 영화의 영어제목으로 쓰인 ‘ugly duckling’은 처음에는 별로 매력 없거나 성공하지 못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중에 성공하거나 흠모를 받게 되는 존재라는 뜻이다.

미운 오리 새끼가 후일 우아한 백조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할 것이란 은유적 비유를 담은 셈이다. 못 받은 부모의 정은 내가 아버지가 되어 아이들에게 몇 배로 베풀었다. 배우지 못한 설움은 독서와 독학, 만 권의 독서달성으로 상쇄했다.

바다는 거대한 물을 담고 있다.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끄떡도 않는다. 그래서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 것이다. 또한 바다는 무시로 파도(波濤)가 일렁거린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파도의 연속이다. 지금 나는 그 파도를 격하게 맞고 있다. 하지만 파도 없는 바다는 죽은 것이다. 달팽이도 산을 넘듯 파도 역시 거뜬히 넘고 볼 일이다.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분명 ‘ugly duckling’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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