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협회 임직원 백선엽 장군 묘역 참배

홍경석 편집위원 승인 2021.01.06 15:30 의견 0


12월 2일 대한민국육군협회에서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권오성 회장과 임직원, 박동철 육군본부 인사사령관, 대한민국육군협회 대전세종지부 이용우 지부장, 강천석 고문, 김춘식 사무국장 등이 국립대전현충원의 장군 묘역에 안장된 고(故) 백선엽 장군 묘역을 참배했다.

참배는 작년 7월 별세한 백선엽 장군의 100세 생일이 11월 23일이었고, 작년이 6·25 전쟁 발발 70주년인 점 등을 기념해 이뤄졌다. 주한미군전우회가 작년 11월 23일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주관으로 백 장군 생일을 기념한 웹 세미나를 열자 육군협회도 백 장군의 뜻을 기리고 나선 것이다.


이날 백선엽 장군 묘를 참배한 권오성 회장은 “장군님께서 가시는 날에는 천둥이 몰아치고 하늘에서 비 눈물이 그리도 쏟아졌다”면서 “영면하신 모습을 뵈니 나라를 생각하는 짐을 내려놓으시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조국을 내려 봐 주시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6·25 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 전투에서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쏘라!”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다. 그러한 사즉생(死卽生)과 불퇴전(不退戰)의 남다른 각오가 있었기에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은 북한군과 중공군의 침략에도 거뜬히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의 참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5년에 선보인 영화 ‘1941: 세바스토폴 상륙작전’은 러시아 연방과 우크라이나의 공동작품이다.


1942년 미국 국제 학생대회에서 루즈벨트 미국 영부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러시아 여자 군인이 있었다. 어리고 왜소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치열했던 1941년의 세바스토폴 전역에서 활약하고 살아남은 러시아의 전쟁영웅이자 백발백중의 스나이퍼였던 ‘죽음의 숙녀’ 루드밀라 파블리첸코였다.

그 덕분에 소련은 독일에게 함락당할 위기에서 미국의 도움으로 기사회생의 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바꾼 한 명의 영웅이 얼마나 중차대한 위치를 점하는 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국가마다 때론 ‘굴욕의 시절’이 있는 것이 우리가 경험한 역사의 교훈이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이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만으로도 우리 민족은 숱한 고초를 겪었다.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최대 패배를 안겼는데 임진왜란에서는 7년간이나 버텼음에도 병자호란에선 불과 두 달 만에 조선이 굴복하여 끝나는 치욕을 당했다. 1600년대부터 1839년까지 황제들이 대를 이어온 중화제국은 모두가 인정하는 아시아의 초강대국이었다.

그러다가 1839년 영국이 제1차 아편전쟁을 벌이면서 비극의 아수라장으로 접어들었다. 그로부터 시작해 1945년 중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무려 100여 년 동안 중국은 군사지배 및 해상봉쇄, 광범위한 영토 할양, 전쟁 배상금, 주권침해, 대량학살 등 온갖 굴욕을 다 겪었다.


따라서 이 기간이 중국으로선 ‘치욕의 백년’인 셈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후진국이라 불리며 온갖 멸시와 무시를 당하던 중국이 어느새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된 이면은 국가와 국민이 대동단결한 의지의 집합 결과이다.

우리도 이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에 대하여 “파묘” 운운한 일부 좌파 정치인의 굴절된 의식에서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전쟁에서 지면 국민은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한다. 현 정부의 눈치만 보는 대부분의 여당 정치인과 일부 군인과 달리 주한미군사령관은 이·취임식 때마다 “존경하는 백선엽 장군”이라는 문구로 연설을 시작하는 등 한미동맹의 당위성을 강조해 왔다.


백 장군의 별세 전에는 미군 장성 진급자 모임인 캡스톤 그룹(capstone group)이 방한하면 백 장군을 예방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다.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이자 우리 민족을 나락에서 구해준 백선엽 장군은 진정 대한민국 최고의 명불허전 군인이었다.

한편 이날도 온갖 지원과 정성을 아끼지 않은 강천석 고문은 대한민국육군협회 대전대전세종지부 창립위원장을 맡아 특유의 친밀감과 강한 추진력으로 성공의 반열로 이끈 주인공이다.

대전신일여자중고등학교 이사장이기도 한 강천석 고문은 각종 봉사와 기부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당발 인맥까지 자랑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청풍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