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 작가의 여행이야기] 그대, 아루나찰라로 초대합니다. -최종회-

이연자 작가 승인 2021.01.07 15:59 의견 0
아루나찰라 정상


어느 경우에나 마음 혹은 에고를 내버려야 하는데, 왜 그것을 분석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합니까? ‘나는 누구인가?’ 하는 탐구는 실제로는 에고, 즉 ‘나’라는 생각의 근원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스리 라마나 마하르쉬

16. 수료증을 받아야지.

목요일 새벽 1시에 떠난 프라닥시나는 금요일 아침 8시 쯤 끝이 났다. 나는 모든 기력이 다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먼지를 뒤집어쓴 내 얼굴은 기이해 보일 것이다. 다운타운을 지나 언덕배기로 올라오는 신새벽에 드디어 아루나찰라 산이 붉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아, 그래서 빨간색 아루나찰라 사진이 있는 것이구나. 제 몸도 엉망이면서 나를 가르치고, 차를 끓여주고, 베란다도 빌려주고, 3일간 잠도 재어준 다나. 그는 보통 새벽 3시쯤 도는 프라닥시나를 나와 함께 새벽 1시에 같이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몸의 상태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서 있기도 힘든 것 같았는데, 그럼 다나는 언제 쉬고 잠을 잔 거였을까?

게이트 앞 다나 스님



다나에게 레슨비를 주고 싶었다.

마침 아쉬람 정문에 꽃을 파는 모녀가 서 있다. 나는 20루피를 주고 주황색 꽃으로 만든 1줄짜리 리스를 끊어서 샀다.

사부. 이게 레슨비랍니다. 다짜고짜 그의 목에 감아준다.

이제 내게 수료증을 줘야 하니, 나한테도 꽃을 사줘요. 그가 15루피만큼 꽃을 사서 내게도 걸게 한다. 꽃값을 각자 계산하면서 “돈을 정확히 주었네, 안 주었네.” 하며 잠시 꽃 파는 소녀와 옥신각신한다. 얼마나 인간적인지, 정화(purified)되는 것도 성(sacred)―꽃을 거는 것―과, 속(secular)―옥신각신하는 것―을 다 갖추니 말이다. 하하하하

다나는 사부답게 그의 리스를 벗어서 아쉬람 제단에 바친다.

나는 다나가 내게 걸어준 리스를 목에 걸고 뱅갈로르행 버스를 5시간 30분 동안 타고 갔다. 초우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저녁 7시 반에 타서 자그마치 21시간 동안 가는 뿌네행 기차 속에서도 계속 걸고 있었다. 잠자기 위해 꽃을 목에서 푼다. 연하고 약간 차가운 꽃잎의 감촉. 둘둘 말아 머리맡 배낭에 올려둔다. 오후 4시 반 기차에서 내리기 위해 배낭을 들다가 약간 시든 리스를 바라본다. 비닐봉지에 버린다.

이생에서 그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아 다나, 당신은 전생 어디쯤에서 틀림없이 추기경(cardinal)이었을 거야.

내가 받은 꽃은 주황색이라기보다는 진홍색인 것 같아(cardinal은 진(심)홍색, 그리고 추기경이란 뜻). 힘없이 시든 리스는 진홍색으로 짙어진다.

리스를 버린 것은 사부에 대한 제자의 의식이었다. 그대를 넘어가겠다는…

17. 이쎄트라(etc.)

1. 아루나찰라로 방향을 틀기 전에 나는 인터넷에서 뿌네의 한국교회 사이트에 접속해서, 배낭 하나 들고 가니, 원하는 게 있으면 배달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무언가 이민가방 가득히 옷을 모아 나누어주고 싶은 적이 있었기에… 전혀 답이 없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귀찮게 하나보다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떠나기 며칠 전 엉뚱하게도 왜 답장을 안 보내는가 메일이 왔다. 당황한 나는 뿌네는 루트에서 제외되었고, 나는 티켓도 없이 기차를 타야 하므로 짐을 더 늘리는 것은 내 능력 밖이라고 사양한다. 하지만 한국의 어머니에게 전화는 걸어본다. 배달품목은 말린 나물들, 당면, 손자 옷인데 추워서 트레이닝복이 필요하다고 어머니는 간곡히 부탁하신다.

나는 내복을 직접 사서 가지고 왔다. 수냐가 소포는 분실되니 자기에게 맡기면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언젠가 전해준다는데, 그 언젠가가 언제일지 모르기에 내가 직접 배달하기로 했다. 뱅갈로르 역에서 초우면을 반 공기쯤 되게 먹었는데 너무나 짜서 물을 한 병 사서 다 들이켰다. 전화통화로 뿌네 역에서 하룻밤 잘 계획이라 하니 장 목사는 내게 집으로 오라고 한다. 루파, 로베르토, 수냐에게 전해달라고 가진 돈을 다나에게 다 주고 왔다. 옷도 이제는 달랑 반팔 하나뿐이다.

릭샤꾼이 25루피에 무척 비싸 보이는 새 아파트 앞에 내려주었다. 남부에서 올라온 나는 적응이 안 될 만큼 호사스럽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월 70만 원 정도 생활비가 든단다. 아주 오랫동안 목사님에게 선교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가는 태어나서 심장 수술을 했었단다. 나는 수냐에게 들은 대로 축복의 말을 전했다. “이 아가는 다음에 영적으로 아주 큰일을 할 거랍니다.” 하룻밤 자고 새벽 6시에 장 목사의 오토바이를 타고 나와서 릭샤를 탔다.

2. 7시15분 뿌네발 뭄바이행 기차를 타고 오전 10시 30분에 내렸다. 얼핏 보니 길 건너편에 기차 옆자리의 여자가 서 있다. 그녀에게 “택시들이 담합해서 가격을 안 내린다. 타지마할까지 태워줄래?” 하고 물었다. 공인회계사라는 그녀의 밴을 타고 타지마할 호텔에 내렸다. 타지마할 호텔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바라보며 로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사물을 바라보지만 내 눈과 마음은 비어있다. 공항은 저녁 5시까지 가면 될 것이다.

노점에서 인도풍 면 상의를 흰색과 오렌지색 2벌에 180루피를 주고 샀다. 거스름돈 20루피를 받아서 마린 드라이브까지 택시를 타고 아라비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기억에 버스를 타면 마린 드라이브를 바라보면서 공항까지 간다고 했었지. 그런데 일요일이라서 그런 버스가 없단다. 아침 점심도 굶었다. 배낭과 색에는 책 13권이 들어서 무지하게 무겁다. 쓸데없는 오기가 발행했다. 나 끝까지 버스를 타리라. 50분 정도를 기다려서 결국 버스를 탔다. 중간에 한 번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탔고 마침내 공항에 내렸다.

3. 공항에 들어섰다. 저쪽 줄에 한국인 부인들 셋이 서 있다. 7시 델리에서 뜨는 에어인디아 비행기는 날씨 때문에 언제 뜰지 모른다더니 결국 24시간 딜레이된다. 우리 한국인들은 반드시 가야 한다. 내가 대표로 매니저와 이야기하자 방콕에서 내리고 타이완에서 트랜짓 하는 비행기로 인도 청년 둘을 덤으로 묶어준다. 다른 승객들은 모두 호텔로 가고, 우리는 남아서 밤 12시 비행기를 기다린다. 아주머니들은 나중에 부산 사투리로 내게 “혹시 선생님 아닙니꺼?” 묻는다. 세 분은 스님 세 분과 1개월 동안 인도 절과 달라이라마 렉쳐를 보고 오셨다. 인도 여행을 위해 10만배 약속을 하고 지켰다 한다.

오퍼상과 재벌회사 사장이라는 두 인디언들은 면직물 생산 기계 2천만 원짜리 18대를 계약하러 간단다. 인도인답게 사진을 찍고 싶다 해서 한국아줌마 넷과 인디언 남자 둘이 인천공항 로비에서 사진을 찍는다. 헤어지기 전에 “시바신이 너희들을 지켜 줄 거야.” 했더니, 오퍼상이 내게 “라라, 이 세상에 예수가 유일신이야.” 한다. 아, 뜨거라. 카톨릭 신자란다. “그래. 나두 카톨릭이야. 굳 럭.”


4. 두고 올 수 있는 것은 다 두고 왔다. 흰색 캐시미어 스웨터를 슈나에게 선물로 주었기에 나는 반팔로 대전행 리무진 버스를 탔다. 차 안의 승객들이 덥다고 난리 부르스에 기사아저씨에게 히터 꺼달라고 몇 사람이 가서 말을 해도 이 아저씨 절대 안 껐다. 아직도 바가반의 은총이 유효한가? 얇은 윈드스타퍼 속 반팔 차림에도 땀이 날 정도니, 다른 사람은 환장할 정도로 더웠을 게다.

택시를 타고 집 앞 경비실까지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돌아왔다. 세상 속으로


18. 가족―흩어졌다 모이니, 주어진 시절 인연

딸, 엄마, 도를 이루었다고 아예 안 돌아오시면 안 돼요.

남편, 도대체 인도를 왜 또 가냐? 하긴 더 늙으면 못 걷는다.

현관문을 여니 거대한 쓰레기통이다. 며칠 동안 말이 안 나온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딸과 남편이 묻는다. 벽에 붙인 사진이 무엇이냐고?

“응. 아루나찰라 산이야.

이곳은 역사상 한 번의 지각변동도 없었대.

지구 심장의 중심축처럼 외계의 플레이아데스 성단(Pleiades star cluster)과 연결되는 통로래.”

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하하하하하하 하며 소리 높여 웃는다.

내 설명은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무장된 그들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묻혀버린다.

오 아루나찰라

나, 내 스승을 넘어, 오던 길로 가리라.

*주 - 제가 가진 사진이 별로 없어서 몇몇 사진들은 구글링으로 빌려왔음을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샨티 샨티(평화).

플레이아데스 성단

플레이아데스 성단 위치



게이트 앞 다나 스님

스리 라마나 마하르쉬

아루나찰라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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