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손주에게 선물하는 가족이야기―63세, 평범한 주부의 자서전, 양정자 여사님

자서전은 끝이 아닌 시작

김경희 작가 승인 2021.01.11 13:56 의견 0
양정자 여사


아슬아슬하게 추풍령고개를 넘었다. 양정자 여사님.

충북 영동이 고향인 여사님은 올해 추풍령고개를 넘듯이 곡예사처럼 한 해를 보내셨다.

그 옛날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선비들이 일부러 추풍령고개를 피해서 다녔다는 설이 있을 만큼 추풍령고개는 험난하고 각진 고개였다.

여사님은 두 달 전 암 투병 중이던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딸을 결혼 시켰고 내년 봄날에 손주를 만난다. 가족의 죽음과 탄생의 한가운데 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앞으로 시작될 노년의 삶을 자서전을 만들며 회억하고 설계해 본다.

사진속의 그와 그녀들. 너무 곱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59세에 돌아가셨다. 평생 고생만 하던 어머니는 항암치료는 구경도 못하고 젖가슴에 광목 띠를 두르고 피고름을 애써 참아내시다 돌아가셨다. 40년 전 결혼 하던 날, 영화배우 같던 새신랑 그니도 먼저 떠났고, 포대기에 업혀있던 딸도 내년 봄에 엄마가 된다. 파란 추리닝에 새마을 모자를 쓴 시골 국민학교 졸업생 큰 조카는 장군이 되었다. 그 60년 세월의 한복판에 그녀가 섰다.

빛바랜 추억의 사진들


아직 젊은 나이신데 자서전을 만들 생각을 하신 계기가 있으셨나요?

돌아가신 어머님이 당신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넘는다고 하시더니 제가 그 나이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이제 환갑 넘은 나이인데 백세인생의 반을 조금 더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들이 구슬처럼 알알이 박혀있네요.

책은 대단한 사람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우연히 소박한 시골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읽으면서 내 삶의 어느 시절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했어요.

내 인생도 자랑은 없지만 열심히 살아온 삶이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족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이야기, 자매들, 남편, 우리 아이들 석영이, 소라… 그 이야기를 내년 봄날에 태어날 우리 손주에게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태어날 손주는 할아버지 얼굴도 못 본 채 자랄 텐데 할아버지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몇 달 전 남편을 떠나보내면서 남편과 함께 한 지난 4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암으로 투병하다 한 줌 재로 제 가슴에 뿌려진 남편을 생각하면서 지난 시절의 아픈 기억, 가슴 따듯한 추억들이 되살아나는데 어딘가에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도움을 받아 소박하고 작은 책에 제 이야기를 담게 되었습니다.

20대 고향 친구들, 마을 어귀의 코스모스길에서


여사님은 시골에서 자란이야기, 고생한 어머니 이야기, 티격태격 싸우고 사랑하면서 성장한 자매들이야기, 남편 만나 고생하고 즐거웠던 이야기, 남매들 키우면서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이 한편의 영화처럼 스쳐지나간다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딸 소라 결혼식, 남편의 눈물


남편이 올해 결혼한 딸 손을 잡고 당신의 마지막을 예견하며 울음을 삼킨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애써 참던 울음을 토해내셨다.

내년 봄이면 여사님은 손주를 품에 안는다. 떠난 남편의 빈자리가 주는 흔적을 손주가 고스란히 채울 만큼 사랑스러울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녀딸 가연이, 예림이


남편을 떠난 보낸 마음, 손주를 마중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담아 작은 책에 기록한다.

태어날 손주에게 할머니가 준비하는 특별한 선물, 할머니의 자서전.

매일 성경을 필사하는 양정자 집사님


3월에 만나는 양정자 여사님의 자서전이 가족에게 따듯한 봄 선물로 다가올 것이다.

여사님이 맞을 내년 봄날은 모란꽃과 많이 닮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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