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명의] 난치병 환자의 대부 한익규 한의사

난치병 환자의 치료는 환자와 같이 동행하는 과정

이연자 작가 승인 2021.02.09 15:01 의견 0

임상에서 한약 접근체계로 나만의 완치처방전을 만들자

나는 난치성 질병에 나만의 치료 패턴을 만들고 있다

임상경력 32년 차, 완치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자물쇠가 열쇠와 딱 맞는 소리가 나야 철컥 문이 열리듯 문진과 임상을 통해 약을 더하거나 빼면서 환자의 병에 딱 맞는 완치 처방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료입니다. 고방 문헌에 나와 있는 단 몇 줄의 기록에 근거해 마치 퍼즐을 찾듯 임상에 사용하고 적용하고 기록하는 나의 꿈은 환자들의 환한 웃음이다.”

한겨례한의원 한익규 원장


정림동 한겨레한의원에서 약 2만 명, 노은동 한겨레한의원에서 약 7000명의 임상데이터를 축적했다. 전공은 침구과이지만 15년 전부터 상한론 고방을 연구했다. 한약 처방, 특히 고방을 잘 활용해서 환자를 제대로 정확히 치료하고 완치하자는 목표를 수행하듯 걸어왔다. 나는 한의학이 치유에 대한 신념의 세계 즉 체내의 어혈과 담음 등의 독을 없애고 세포 활성화를 추구하는 방법들이 바이러스, 박테리아와 항생제로 대변되는 양의학보다 더 유연하다고 믿는다. 어떤 처방을 찾느냐가 질병 치료의 시작이다. 자물쇠가 열쇠와 딱 맞는 소리가 나야 철컥 문이 열리듯 문진과 임상을 통해 약을 더하거나 빼면서 환자의 병에 딱 맞는 완치 처방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료이다.


어떻게 해서 난치병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모든 환자는 병이 생기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완치될 방법과 힘이 있다. 완치 처방을 찾아 가는 치료과정과 환자와 의사의 신뢰가 형성된다면 모든 질병은 완치에 접근할 수가 있다. 경전에 근거한 처방이 어떤 질환에 유달리 잘 들어 환자가 완치되면 비슷한 환자가 오게 되고 경험치가 쌓인다. 질병 치료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어려운 질환들도 해답이 보이면서 큰 보람과 희열을 맛보게 된다.

난치병 환자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걷는 트랙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전국 유명한 병의원, 한의원, 민간요법과 자연요법까지 좌절과 포기 상태에서 주변에 치료받았던 사람들의 소개로 희미한 희망의 끈을 찾아다니는 일의 반복이다. 난치병이자 고질병은 유형별로 한도 끝도 없이 깊어진다. 쉬운 병도 소통이 안 되면 치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난치병 환자의 치료는 환자와 같이 동행하는 과정이다. 조금씩 처방을 해 가면서 결과를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케이스의 적용이 있기 때문에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의사는 환자의 미세한 상태의 변화를 환자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

원장실에 있는 책들


왜 고방에 그토록 집착하시나요?

한의학은 침 뜸과 약이 기원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한약을 잘 써서 치료하자는 한약 처방이다. 한약을 쓰는 여러 방법 중 나는 약재의 가짓수가 적고 방향이 분명한 고방에 매료돼 공부를 파고든 지 어언 15년이다. 여전히 나의 부족을 자책하지만 동시에 한의학의 희망을 보았다. 2000년 넘는 한의학(고방)이 변형된 정보와 자료들로 명맥을 이으면서 학문체계가 다소 미흡하고 현대의학과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들도 부지기수이다. 한편 수많은 질병 치료를 향한 실패와 성공이 고스란히 쌓여있는 것은 명확하다. 단 몇 줄의 서술에서 치료방법을 최대한 찾아내고 적용하여 고통 속에 살아가는 환자들을 완치시켜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한의학과 양의학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양약은 쉬운 예로 감기에는 항생제 해열제 소염제 등의 조합으로 처방전이 정해져 있다. 감기에 한약은 마른 분과 뚱뚱한 분, 임산부나 허약체질, 청장년이나 노인 등 각 환자에 맞는 약제와 처방의 경우의 수가 다양하다. 전염병에도 양의학은 백신과 치료제로 치료하지만 한의학은 환자마다 개별 처방이 이루어지는 차이가 있다. 한의학에는 치료약과 함께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고 약해진 신체기능과 면역체계를 회복시켜주는 보약의 개념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내가 지향하는 것은 한약을 이용한 치료의학이다. 한약이 치료의학으로 정착되는데 해결책은 첩약의 의료보험화로 아직 요원하지만 다행히 시작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한약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엄격한 국가적 관리가 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된다. 한의사들의 한약에 대한 인식도 과거 보약 위주에서 현대의학과의 보완 협력을 통한 치료제로의 접근으로 바뀌는 등 변화하고 있다. 식약청에 등록된 한약은 우리가 매일 먹는 쌀과 채소 과일보다 더 안전하다. 생리통, 중풍후유증, 구안와사의 첩약의료보험이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니 앞날이 밝다.


30년 임상에 적용한 고방 처방법을 설명해주세요.

내가 쓰는 고방은 100여 종이 안 된다. 어려운 환자가 올 때는 단일 병명이 아니라 여러 증상들을 가지고 온다. 단순하게 처방을 구성해서 최소한의 약재를 써 보는데, 클리어하게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예를 들어본다. 환자가 ‘체했고 울적하고 뼈마디가 아프다면’ 먼저 체한 것부터 해결한다. 중요한 순서부터 약을 처방하고 복용하고 변화를 듣는다. 환자의 입을 통해서 결과가 나온다. 가장 간결한 처방으로 병증의 얽힌 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의 라포(rapport)형성이 중요하다.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면서 맞는 처방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공부로 귀결된다. 계속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나의 의미이다.

소아류머티즘환자 일과체크 일지


그렇다면 환자의 케이스를 공개해 주시겠습니까?

68년생 남성인데 피부발진으로 1년 동안 전국의 병원을 다녔고 차도가 없어서 2018년 10월 1일 처음 강원도에서 저를 찾아오셨다. 그는 폐플라스틱 처리공장에서 지게차 운전 일을 하고 있었다. 작업환경이 밀폐 공간으로 여름에는 40도 가까운 살인적인 더위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한기에 노출되면서 작업했다. 거기에 더해 폐플라스틱에서 발생하는 환경호르몬과 먼지, 불규칙하고 형편없는 식사도 주요 원인이었다. 여러 병원을 순례하였지만 가려워서 잠을 못 자고 피부에는 진물과 딱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스테로이드도 듣지 않으면서 고통에 못 이겨 자살까지 생각하던 때에 오셨다.

환자의 처방전도 조금 공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작은 3가지 약재로 구성된 ‘치자벽피탕’부터 처방하였다. 단기처방으로 환자의 증상변화를 살펴가며 7종류의 처방으로 진행해서 환자에 맞는 처방으로 치료된 케이스다. 환자의 끈기와 노력이 대단했다. 대략 2년이 지난 시점에서 환자는 여전히 똑같은 환경에서 계속 일하고 있으면서 병을 이겨냈다.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 치료했다면 훨씬 쉽고 빠르게 나았을 것이다. 어떤 치료로도 효과가 없었던 난치성 피부질환의 좋은 치료 예라 생각한다. 어떤 난치병 환자는 처방전이 거의 책 한 권인 분도 있다.

환자 초진이 30분 이상 오래 걸리는 이유는?

오랫동안 초진에 공을 들인다. 양의학처럼 기계나 혈액검사 방법 대신 환자에게 어떻게 언제 아픈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속병까지 물어서 근거를 찾는다. 묻다 보면 대부분의 환자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되풀이해 물어보고 관찰하고 복진 맥진하다 보니 진료시간이 길어진다. 어떤 처방의 근거가 마련되어야만 환자에게 쓸 수 있다. 좀 더 노련해지고 공부가 깊어지고 경험이 쌓이면 한눈에 읽어내고 찾아내는 단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체한 환자가 문진을 통해 스트레스 때문에 체했고 예민해서 자주 체한다. 처방을 써보니 몇 년 앓았던 ‘체하고 우울하고 불면증’의 3종 세트가 해결된다. 한약은 학문은 어설픈데 치료는 잘 되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한다.

― 단골 완치 예 ―

* 토요일 인터뷰 중에 단골 환자 2명을 운 좋게 인터뷰했다. 그이들은 꽤나 선선하게 응해주었다.

완치 예 1) 소아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53세 미숙 씨가 완치됐다.

초등학교 때 소아류머티즘이 시작되었다. 70년대 초반이라 관절염으로만 알았다. 관절이 마비되고 기능을 상실한 상태인 20대 초반에 서울 한양대병원 류머티즘과에 처음 가서 제대로 진단을 받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약을 꾸준히 먹고 진행을 늦추는 길 뿐”이라는 의사의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병마의 근원적 뿌리를 뽑고 싶어서 종교에도 심취했고, 대체의학과 비방들을 찾아다녔다. 결과는 더 나빠진 몸 상태였기에 40대에 다시 양방으로 돌아갔다. 류머티즘에 대한 정보로 치자면 나도 전문가 수준인데, 지속적으로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를 먹으면서 언제까지 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절망했다.

우연히 소문을 듣고 한의원을 방문한 첫 문진 때 나를 안타까워하고 진심을 담은 원장님의 먹먹한 눈빛이 전달되었다. 대전대한방병원에서 근무할 때, 20대 후반 여성 류머티즘 환자가 변형된 관절의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실력이 부족해 못 고친 것이 항상 마음의 빚이었는데, 30년 만에 같은 환자가 나타났다고 하셨다. “어려운 병인지 알지만 고쳐주고 싶어요. 자신은 없지만 나와 한번 해볼 것인지 선택하세요. 나를 믿고 따라오면 해 봅시다.” 담담하고 수줍게 말씀하시는 원장님의 제안에 모든 걸 다해봤던 나는 시작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드디어 다 나았다.

8개월간 일주일에 한 번씩 처방을 바꿔가면서 상태를 추적 체크하고 예후를 점검하며 처방전이 계속 바뀌었다. 변경된 약의 내용을 정확하게 들었고 마침내 가장 적합한 처방을 받았다. 탕약을 계속 먹다가 동일 성분의 환약으로 바뀌면서 비용이 대폭 줄어들었다. 1통에 2만 원으로 일주일에 환약 20알을 1번만 먹는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조금 더 먹는다. 환 1통으로 2~3개월 먹으면서 류머티즘의 조절이 가능하다. 모든 스테로이드제를 끊었고 병원은 3개월마다 류머티스 인자 혈액검사만 체크하러 간다. 40년 만에 양약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내 몸에 대한 토털 케어는 보너스이다. 갱년기 증상 등 내 몸의 밸런스를 제대로 맞추는 종합적인 케어가 가능한 평생 주치의를 만났으니 행운이다.

완치 예 2) 까맣고 까칠했던 40대 정숙 씨가 짱짱해졌다.

나는 평생 관절, 두통, 감기, 소화불량 때문에 약으로 땜빵하며 살았고 부작용으로 피폐했다. 감기가 오면 바로 천식으로 가면서 10년 정도 고생하였는데 흡입제를 쓰면 근육경련과 위장장애에 수전증까지 와 덜덜 떨렸다. 급성기관지염이 와서 항생제 2단계를 투여기간을 다 채웠지만 증상이 심해서 고역이던 중 직장 동료가 소개해 주었다. 심신이 지친 상태로 한의원을 찾아갔다.

첫 문진 때 30분 넘게 질문을 워낙 많이 받았는데 나는 바보처럼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내 몸인데 내가 잘 모르고 있다니 놀랐다. 그날 침 맞고 물약 3봉지를 받아서 먹었다. 그날부터 5개월 반 동안 모든 음식물을 체크하고 원장님의 피드백과 새로운 처방약으로 마침내 치료가 끝났다. 나는 20년간 5월에서부터 추석까지 매일 설사했던 특이한 스타일의 설사를 잡고, 감기를 잡고, 천식을 잡았다. 나는 이제 정상이어서 행복하다.

한방치료로 돌린 결심은 무언가요?

평생 스테로이드 뿌리고 입을 헹구고 2차 감염에 시달리고 누렇게 떠서 사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 금방 기관지염이 고쳐지기에 혹시 천식도 치료가 되느냐고 물었다. 심장과 폐가 원인이 아니니 가능하다는 대답에, 직장이 근처라서 2달간 매일 갔다. 증세에 따라 물약이나 환으로 먹었다. 한 단계 잡히면 다음 약을 예측하고, 양방처럼 2일치, 3일치 먹으면서 침을 맞았다. 3번째 달부터는 한의원에 일주일에 두세 번 갔다. 5개월 반이 지나자 원장님이 의학적으로 할 것은 다했으니 이제 재활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천식으로 호흡근이 오랫동안 작동하지 못해 폐 근육이 약해져 있는 상태이니 유산소 운동을 해서 일반인처럼 폐활량을 늘리라는 지도를 받았다. 설사가 호흡기에까지 영향을 미쳤었다고. 정말 약 한 번에 쉽게 고쳤다. 나는 저질 체력이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한의원을 다니면서 어느 시점에서 날아갈 듯 가벼움을 느꼈다. 꾸준히 받은 치료와 회복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잠재력이 터진 것 같다.

원장님도 좌절과 한계를 느껴보셨나요?

한의학으로 해봤으면 하는 암 초기 환자는 양방 쪽 최신장비와 현대 의학으로 가신다. 오시는 분은 현대의학에서 손을 놓아버린 말기 환자들이다.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국 보내드려야 했다. 초교친구는 대학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당해 휠체어 생활을 해왔다. 인공배뇨를 계속하던 친구가 43살에 전립선암을 진단받자마자 내게 왔는데 안타까움만 가득했다. 또 술, 담배도 일절 안 했던 동창이 부친의 간암 진단으로 자신도 우연히 검사했더니 간암 말기였다. 41세였는데 병원에서 손을 놓았다. 내가 새로운 침법을 배우러 다닐 때라서 침 치료 위주로 통증 컨트롤과 복수만 줄여주는 정도로 3개월 보내다가 병원에서 사망했다. 두 친구를 보낸 나의 무력감에 절망하고 고뇌했다.

우울, 불안 등의 신경정신과 치료의 해결방법을 찾아 충남대 평생교육원에서 1학기 동안 최면도 배웠다. 갈망은 있었지만 풀리지 않고 내버린 시간과 돈만큼 좌절감이 쌓여갔다. 2006년에 1년 정도 매주 1회, 3~4시간씩 12명 동기와 내가 좌장으로 먼저 봤던 <황한의학> 3권짜리 강독을 완주했다. 수많은 치료법을 찾아 공부하고 나만의 한의학을 찾아 헤매고 좌절하다 마침내 답을 찾은 것이 고방 공부였다.

한의원 내부


임상에서 한약 접근체계로 나만의 완치처방전을 만들자.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를 완치시킨 희열은 세상의 어떤 즐거움보다 크다. 난치병 환자들에게 공포감을 이기고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의도로 바뀜이 일어나도록 도와드린다. 환자들은 낫는다는 희망과 함께 불안한 잠재의식의 긍정적 변화로까지 넘어서야 진짜 치료에 도달하는 듯싶다.

나는 난치성 질병에 나만의 치료 패턴을 만들고 있다. 만성 류머티스 환자도 몸살감기처럼 시작해서 만성 류머티스로 가는 과정, 즉 풍습상박을 거쳐 급성 만성의 역절풍으로 가는 그 미묘하고 복잡한 과정과 단계마다 나만의 완치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다음 10년 후에도 나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병에 계속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계속 공부하며 질병과 환자를 보는 안목은 좀 더 깊고 넓어졌을 것이고, 공부하는 책은 닳고 닳아서 부피는 두 배로 부풀어져 있을 테고, 그때쯤 홀연히 깨닫는 것이 있다면 필요로 하는 가슴 따뜻한 어느 누군가에게도 전수해야겠다.

임상경력 32년 차, 완치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1990년 한방병원 수련의부터 시작했으니 임상경력이 32년차이다. 대전대학교 한방병원에서 의국장으로 재직 후 펠로우 1년 차에 수련의들 퇴직금 문제로 병원측과 중재·해결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빚을 얻어서 94년도에 정림동에 한겨레한의원을 개원하였다. 10년 동안 밀려드는 환자를 응대하다 보니 한의사로서 자긍심을 잃었다. 내 한의학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심한 자괴감, 환자에게 어떤 의사인지 정체성에 대한 혼란 끝에 나는 정림동 한겨레를 접었다. 2004년 노은동으로 건너와 소수의 환자를 보면서, 수없이 되묻고 해석하고 추적하면서 질병과 완치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고방 문헌에 나와 있는 단 몇 줄의 기록에 근거해 마치 퍼즐을 찾듯 임상에 사용하고 적용하고 기록하는 나의 꿈은 환자들의 환한 웃음이다.

한겨례한의원 가족들


혹시 고방 공부 외에 취미가 있으신가요?

취미는 등산과 자전거, 그리고 마라톤인데, 30대부터 지금까지 풀코스 여러 번, 하프코스는 수도 없이 완주했다. 동호회보다 혼자서 즐기는 스타일인데, 공부도 진료도 마찬가지이다. 환자가 아이 때부터 다니다 결혼해서 자신의 아이와 같이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인터뷰를 끝내며

김중만 사진작가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한 손으로는 “수직 수평을 똑바로 맞추면서, 4분의 1초까지 안 흔들리고 찍는 연습”을 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수 없는 연습이 대가의 근원이듯, 난치병의 수많은 경우 수의 퍼즐을 꿰맞추는 한익규 원장도 마찬가지이다.

환자를 잘 치료하고픈 열정으로 유행하던 많은 치료법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결국 근본인 한약 처방에 15년 이상 홀로 정진해 온 한익규 원장은 성품 그대로 꼼수 없는 정공법에 매달리고 있다. 그의 노력은 한의학을 신비나 케케묵은 접근법의 오명에서 벗어나게 할 것 같다. 난치병 환자에게 딱 맞는 처방법을 찾아 2000년 전 두세 줄로 서술된 고방 처방에서 찾아 배합하는 그는 지금은 과학적인 한의사이지만 전생 어디에서는 연금술사(alchemist)가 아니었을까?

한익규 한겨레한의원원장

1963년 청양 남양면에서 출생

1988년 대전대학교한의과대학 졸업

1990년 정림동 한겨레한의원 개원

2004년 노은동 한겨레한의원 개원

주소 : 대전 유성구 노은로 158 그랜드타운 202호 (지족동)

전화 : 042-476-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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