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들을 위해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꾼 ‘그림이 있는 정원’

지금은 ‘그림 같은 정원’으로… “수천 그루 수목 등 자연은 그대로”

정다은 기자 승인 2021.02.10 13:35 의견 0


험악한 악산을 아기자기 예쁜 꽃동산으로 바꿔놓은 것은 아들에 대한 지극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1987년 3월 어느 날 아버지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신입생 환영 MT를 다녀오겠다던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아들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다. 아버지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


훗날 아들에게 멋진 소나무 숲을 만들어 주겠다고 사두었던 홍성 땅으로 와 나무를 심었다. ‘청록색을 보면 건전한 생각만 할 것 같아 소나무 위주로 심었다’고 한다. 옻칠공예 등 전통가구 제작의 명인이었던 아버지는 돈이 생기면 나무와 꽃을 구입해 정원을 꾸몄다. 꽃 한 포기, 돌 하나를 놓는데도 정성을 쏟았다. 조그마한 정원을 만들어 주리라 시작한 것이 점점 규모가 커졌다. 나무가 뿌리 내리고 쑥쑥 자라는 걸 보면서 아들도 용기를 키웠다. 아들은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 한 점을 만드는 데 1년 이상이 걸리지만 임형재 화가는 계속 그림을 그린다.

2012년 임형재씨 작품전시


절망과 고통의 계곡을 지나 아들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선해 당당히 화백이 됐고, 세계구족화가협회 회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삶이 쓰러져가며/ 절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버지의 땅에 내린/ 약속의 씨앗이/ 불을 밝힐 때/ 입술에 붙잡힌 붓이/ 거친 호흡을 삭이며/ 아버지의 나무를 키우기 시작했다/ … /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떨림으로/ 오아시스를 만들어/ 새 길을 내었고/ 숱한 사람들에게/ 꺼지지 않는 빛을 뿌려/ 그림이 있는 정원을 밝히고 있다.”(임형재의 시 ‘그림이 있는 정원’)

<임형재 화가 프로필>

1968년 3월 26일생
1986년 단국대 관상원예학과 입학
1987년 대학교 MT도중 사고, 척추마비로 전신마비
1988년 장애로 인해 대학교 자퇴
1996년 9월 구필화가로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
1997년 ‘일어서는 기록전’, ‘화사랑 미술전’, ‘한국장애인미술협회전’, ‘삶의 소리전’ 등 다양한 단체전 활동
1998년 세계 구족화가협회 가입
1999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부문 입선
200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 부문 입선
2013년 경매 당시까지 다수의 단체전과 구족화가 협회 열람전 활동

아들은 구필화가 임형재 화백이고, 아버지는 임진호 대표다. 임 대표는 수목원 한쪽에 갤러리를 마련해 아들의 그림을 전시했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임 화백의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아들의 그림’과 ‘아버지의 사랑으로 만든 정원’이 어울려 ‘그림이 있는 정원’이 됐던 것이다. 지금 그림이 있는 정원에 아버지는 없다.

임형재씨 아버지가 운영하던 고가구 -현재 고가구 갤러리에 전시 돼 있음


지난 2013년 수목원이 경매에 붙여져 일각에서는 홍성군에서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지금은 이병용 대표가 낙찰 받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엔 아들의 그림은 액자에 여러 장의 그림이 한 장의 사진으로 넣어져 걸려있고, 다른 화가의 그림이 전시중이다.

액자에 담겨있는 임형재씨 한장의 작품


사람들이 수목원의 아름다움을 보러 오는 한, 그림이 있는 정원은 홍성군민들의 자산이다. 이 자산을 잘 키워 군을 살리는 옥동자로 만들 것이냐, 말 것이냐는 오롯이 군민들의 몫이다. 세상사 시고 떫음에 아랑곳없이 꽃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푸름을 더해가고 솔숲에는 싱싱한 바람이 일고 있다. 나무에 귀를 기울이고 나무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안단다. 나무속에 숨겨져 있는 생각, 피부 밑에 흐르는 혈관, 우듬지에 매달린 잎사귀, 가지에 난 작은 상처, 노란 꽃들이 금빛 눈을 활짝 여는 아침의 황홀을 본단다. 주인이 누가 되든 꽃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나무는 자라 씨앗을 퍼트릴 것이다.


그리고 나무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가슴 뭉클한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정원의 산책길을 걸어보라. 그림 같이 예쁜 정원에 취했다가도 솔숲에 바람이 스치면 비록 무뚝뚝하지만 뜨겁고 절절한 아버지의 사랑이 가슴을 친다.

홍성8경의 하나인 ‘그림이 있는 정원’은 구필화가의 그림이 없어 홍성8경에서 제외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이병용 대표가 ‘그림 같은 정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정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호수를 조성하고, 4500여 평(1만5000㎡) 부지를 매입해 주차장을 확대하고 매표소도 옮기는 등 변화를 줬다. 겨울철에 방문한 손님을 위한 찻집도 개장했다.


지난 해 12월 홍성군의 대표 관광지가 8곳에서 12곳으로 확대됐는데, 홍성8경에서 사유지인 그림 같은 수목원(옛 그림이 있는 정원)은 현상 유지 됐다.

스토리가 있는 홍성8경 ‘그림 같은 수목원’은 아직 손 갈 곳이 많다. 이곳엔 이젠 구필화가의 그림은 없다. ‘그림 있는 정원’에서 ‘그림 같은 수목원’이 된 정원을 이병용 대표가 그만의 스타일로 가꾸어져 옛 명성에 뒤지지 않는 홍성의 멋진 여행지로 거듭나 전국의 명소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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