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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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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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2003년에 나온 한국영화다. 만물이 생성하는 봄이 오자 아이(동자승)도 신이 났다. 숲에서 잡은 개구리와 뱀, 물고기에게 돌을 매달아 괴롭히는 짓궂은 장난에 빠진다.
자신의 장난에 동물들이 괴로워하자 연방 즐거움의 웃음을 터트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잠든 아이의 등에 돌을 묶어둔다. 잠에서 깬 아이가 울먹이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노승은 자신의 잘못을 되돌려놓지 못하면 평생의 업이 될 것이라 이른다. 아이가 자라 17세 소년이 되었을 때, 산사에 동갑내기 소녀가 요양을 하러 들어온다. 소년의 마음에 소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샘물로 가득 차오른다.
노승은 이를 인지하면서도 모른 척 한다. 소녀와 은밀한 운우지정(雲雨之情)까지 이룬 소년은 소녀가 떠나게 되자 번민에 빠진다. 소녀에 대한 사랑의 집착을 떨치지 못한 소년은 결국 산사를 떠난다.
십여 년 후에 배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산사로 도피해 들어온 남자가 있었다. 예전의 동자승이었다. 단풍만큼이나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불상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노승은 그를 모질게 매질한다.
남자는 노승이 바닥에 써준 반야심경을 새기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결국 경찰에 체포된다.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친 남자는 중년의 나이로 변하여 폐허가 된 산사로 돌아온다.
노승의 사리를 수습해 얼음불상을 만들고, 겨울 산사에서 심신을 수련한다. 내면의 평화를 구하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절을 찾아온 이름 모를 여인이 어린 아이만을 남겨둔 채 떠난다.
노인이 된 남자는 어느새 성큼 자라난 동자승과 함께 산사에서 평화로운 봄날을 보내고 있다. 한데 동자승은 과거 ‘그 봄’의 아이를 닮았다. 이번엔 더 잔인하게 개구리와 뱀의 입속에 돌멩이를 집어넣는 장난을 치면서 해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업(業)의 무서움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불교용어에서의 ‘업’은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을 의미한다. 요컨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善惡)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전북 정읍시 내장동의 '천년 고찰' 내장사(內藏寺)가 불길에 스러졌다. 지난 3월 5일 내장사에서 수행하던 50대 승려가 대웅전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내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선운사의 말사(末寺)다.
정읍경찰서 관계자는 승려의 방화 원인은 스님들과의 갈등 때문에 그랬다고 밝혔다. 아무리 그렇다손 쳐도 어찌 자신이 신봉하는 부처님을 모신, 더군다나 자그마치 천년고찰을 불태울 생각까지 했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뒤에는 당연히 봄이 와야 옳다. 내장사에는 그러나 다시금 봄 대신 방화(放火)가 찾아왔다. 내장사는 1300년 넘게 소실과 재건을 네 차례나 반복했다. 정유재란과 한국전쟁에 이어 2012년의 전기난로 과열이 원인이었다.
방화와 실화는 처벌에 있어서도 수위가 다르다. 형법상 방화(放火)는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는 큰 죄다. 반면 실화(失火)는 벌금형만 선고할 수 있다. 어찌됐든 한마디로 비탄하다. 가수 김용임의 <내장산>이 애처롭게 들려온다.
“동녘바람 불어오면 곱게 물든 내장산아/ 저녁노을 붉게 타면 고운 애기 단풍은 어이해 떨어지나/ 망부석의 사연인가 서리서리 눈물인가 … (후략)”
내장산은 올해 과연 봄을 제대로 맞았을까…. 내장사 화재에서 여전히 마음까지 시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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