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의 그림책 산책] 『이상한 화요일』 & 『1999년 6월 29일』

이해완 시인 승인 2021.06.15 15:14 의견 0

6월을 맞아 상상력이 풍부한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책을 준비했습니다. 『이상한 화요일』은 개구리와 두꺼비들이 연잎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험을, 『1999년 6월 29일』은 6월 29일 하늘에서 거대한 채소들이 내려오는 경이로운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글, 그림: 데이비드 위즈너
출판사: 비룡소

장맛비가 내리더니 집 앞 공터에 물이 고이자 맹꽁이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차들이 씽씽 달리고 빌딩들이 늘어선 건물 뒤쪽 공터에서 나는 소리였다.

도시 한복판, 장대비 쏟아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맹꽁이들이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리를 창문을 마주하고 얼마나 오래 들었는지 모른다. 저들은 왜 저렇듯 울어대는 걸까? 원래 그들의 터전이었던 땅을 돌려달라는 외침일까, 이 터전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는 외침일까?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자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쿠니야, 우리 산책 나갈까?”

산책이란 말에 꼬리를 흔드는 쿠니와 간밤을 시끄럽게 흔들던 그쯤을 어름하며 우리 가족은 맹꽁이의 흔적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풀이 우거진 사이사이 웅덩이가 보였지만, 어디에도 맹꽁이는 보이지 않았다.

포기하고 용소로 옆을 지나는데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가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었다. 인사나 나누자고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옆에 있던 쿠니도 난생처음 보는 두꺼비가 신기했는지 다가와 코를 큼큼대며 관심을 보였다. 딸은 그 모습을 동영상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들의 이런 행동에 두꺼비는 잠시 발길을 멈추고 무표정하게 가만히 있다가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나는 내 갈 길 갈 테니 귀찮게 하지 말고 너는 너 갈 길 가라는 뜻인듯싶었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쿠니야, 우리 간식이나 먹으러 가자.” 하고 뒤돌아서니 좋아라 꼬리를 흔들며 뒤따라 온다.

두꺼비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 그랬는지, 데이비스 위즈너의 『이상한 화요일』이 떠올랐다.

연잎을 타고 하늘을 나는 개구리들과 두꺼비의 모습이 장관인 『이상한 화요일』은 작가 데이비드 위즈너에게 칼데콧 상을 안겨준 그림책이다.

『이상한 화요일』은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무성영화를 만들고 대사 없는 만화를 그렸던 것이 훗날 칼데콧 상까지 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화요일 저녁, 8시쯤. 동쪽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르자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 통나무 위로 산책을 나온 거북이의 눈이 커지고, 물고기들의 입이 헤 벌어진다. 이는 개구리와 두꺼비들이 연잎을 타고 하늘을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기 때문에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이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깔릴 때, 연잎을 탄 개구리와 두꺼비 들의 비상에서 새벽녘 동이 트자 서서히 힘을 잃고 지상으로 하강하기까지의 구조 속에는 우리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의 귀가 장면과 맞닿아 있다는 기시감이 든다. 해가 지면 나타났다가 한바탕 신나게 놀다가 “꼬끼오!” 하고 닭이 울면 서둘러 돌아가는 도깨비들의 모습. 이런 구조는 서양의 드라큘라 이야기 속에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작가가 그의 아내에게 전해 들은 우리 옛이야기의 영향이 아닐까 혼자서 추측해본다. 작가 데이비드 위즈너의 부인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이 글자 없는 그림책은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글작가가 되어 그림에 맞게 글을 써보기에 더없이 좋다. 그 과정을 통해 그림을 읽어내는 안목 또한 기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참고로 이 책을 해석하는 데는 시계가 한몫한다는 사실을 잊기 마시기 바란다.

글, 그림: 데이비드 위즈너
옮긴이: 이지유
출판사: 미래아이

집 안에 꽃나무를 들여놓고 잘 키워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애정을 지나치게 표현해서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물을 너무 자주 줘서 뿌리가 상했던 탓이다.

내 손만 닿으면 싱싱하던 꽃들이 시들고 종내에는 나무까지 죽어 나가는 것을 겪다 보니,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식물을 키우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집 안에 화초 하나 없는 것은 너무 쓸쓸해서 고구마나 양파 등을 유리컵이나 접시 위에 두고 그들이 틔워내는 파란 잎과 줄기가 뻗어나가는 것을 즐기곤 한다. 물이 부족할 때마다 보충만 해주면 그들은 유리컵 속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루는 딸이 하늘마를 사 왔다. 가끔 마를 믹서기에 갈아 우유와 함께 마시곤 했는데, 그걸 보고 아빠의 건강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사 온 것 같았다. 그런데 하늘마는 땅속에서 자라는 일반 마와 달리 줄기를 타고 높이 올라 허공에 매달려 열매를 맺어야 해서인지 껍질이 공룡의 피부 같은 질감이 느껴져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식탁 한쪽에 방치해 두고 말았다.

그날부터 하늘마는 손바닥만 한 작은 플라스틱 통 안에 든 채 잊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봄이 왔다.

“아빠, 이것 좀 봐, 싹이 났어!”

물 한 모금 없는 투명 플라스틱 안에서 파란 새싹이 선명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봄이 되자 기어이 피워내고야 만 생명력이 참으로 경이로웠다.

하늘마를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 창틀에 옮겨주고, 조심스럽게 물을 부어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줄기에 잎이 달리기 시작하더니 쑥쑥 자란다. 이대로 잘 자라준다면 하늘 저 높이 우주 공간으로 뻗어나갈 기세다. 가을이 되면 열매도 주렁주렁 열릴 터이다.

만약 하늘 높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하늘마 열매를 외계인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데이비드 위즈너는 『1999년 6월 29일』에서 꼬마 과학자 홀리를 내세워 하늘 높은 곳에서 채소가 어떻게 자라는지 실험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고는 채소 씨앗을 실은 화분을 풍선에 매달아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런데 한 달여가 지난 6월 29일, 세상이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 벌어진다.

하늘에는 초대형 양배추가 둥둥 떠다니고 로키산맥에는 거대한 순무가 나타난다. 어느 도시에서는 오이가 우주선처럼 날아가고 다른 도시에서는 아티초크가 하늘을 뒤덮는다. 홀리의 집 뒷마당에도 커다란 브로콜리가 내려앉는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작품에 자주 보이는 이런 장면들, 예를 들면 개구리가 연잎을 타고 하늘을 날거나 거대한 채소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초현실주의자들이 흔히 쓰는 데페이즈망 기법이다. 이는 낯익은 물체들을 뜻하지 않는 장소에 놓아 보는 이에게 심리적 충격을 가함으로써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무의식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리는 자기가 하늘로 날려 보낸 씨앗에서 자란 채소가 우주 공간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줄 알았다가 자신의 씨앗 목록에 없는 채소가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그럼 이 거대한 채소들은 어디서 왔을까? 실은 외계인 요리사가 실수로 우주 밖으로 날려 보낸 것들이었다. 그들의 식재료인 채소들이 인간이 사는 지구로 떠내려가 버린 이 상황에서 외계인들은 저녁밥을 어떻게 해결할까? 어쩌면 홀리가 띄워 보낸 화분 속에 답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외계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낼지 모르겠다.

앗, 그런데 외계인의 손에 들린 책을 보니 답을 찾은 것 같다. 과연 외계인은 어떤 책을 들고 있을까? 여러분이 그림책을 보고 찾아보시기 바란다.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강사 역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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