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금강유역환경청의 실내온도가 암시하는 29라는 숫자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타 기관보다 훈기가 조금 더해진 온도는 환경청이 짊어진 책임감의 수치적인 표현이다. 남들보다 덜 시원하게, 덜 따뜻하게, 에너지 효율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최 일선의 현장이다.
환경은 이제 기억보다 추억으로 되새김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아름답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리움처럼, 안타깝다는 말들의 우회적인 나열이다.
흑백사진속의 시골 마을 초등학교 운동장.
그네에 앉은 영희 뒤를 철수가 살금살금 걸어간다. 철수의 접힌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꿈틀거리며 살집을 내보이는 그 녀석은 바로 송충이. 영희 등에 송충이를 붙여놓고 냅다 도망을 쳤던 철수, 영희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철수가 안 보일 때까지 쏘아본다. 과거를 회상하며 유년의 기억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의 한 장면처럼 되어버린 ‘송충이의 추억’.
우리는 진화의 기쁨을 누리느라 퇴색되고 잊혀진 존재들의 진가를 놓치고 있었다. 이제 사라져간 미물들이 남겨놓은 발자국이 우리 삶에 어떤 존재였는지 떠난 뒤에 알게 되었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천진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송충이의 삶의 터전이던 이파리들은 사포처럼 윤기를 잃고 한 장 한 장 숨죽여 떨어졌다. 꿈틀거리는 뒤틀림이 징그럽던 6cm짜리 벌레의 생존 여부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 그 녀석이 사라지는 동안 우리는 그 연장선에서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정종선 청장은 두 달 전에 금강유역환경청장에 취임했다. 필자는 그를 ‘준비된 환경청장’이라고 말하는데 재고의 여지가 없다. 뼛속까지 환경지킴이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제 삶의 철학은 자연과 닮아가는 것입니다. 학습된 의식이 아닌 유년시절 시골아이로 자라면서 몸으로 깊게 밴 가치관입니다. 충북 옥산이 고향입니다. 경부 고속도로 휴게소로 지명이 알려진 곳이지만 제가 나고 자란 곳은 면소재지를 벗어난, 저를 둘러싼 우주가 하늘과 땅, 바람소리, 물소리가 전부였던 오지였습니다. 농부였던 아버지를 돕는 시골아이였고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소리를 처음 들었던 ‘촌놈’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제 삶의 전부는 자연이 제공했습니다. 당연히 자연 속에서 자랐고 성장하면서 조금씩 사그라드는 자연을 보면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환경부는 제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밤이면 별빛과 새소리만 들리던 곳에서 성장통 없이 자연이 베푸는 혜택의 최고의 수혜자가 되었다. 자연관이 켜켜이 쌓인 성장의 이력은 진로선택의 갈등 없이 그를 준비된 환경청장으로 안내했고 환경행정의 최적임자로 손색이 없다.
환경 행정가로서의 고민과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실천의 과정들은…
행정은 하라는 항목보다 하지 말라는 항목이 더 많아서 일에 대한 당위성이 필요합니다.
직원들에게도 환경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불편함을 담보로 하지만 당연히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를 실천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행정가로서가 아닌 뼛속까지 환경인으로, 말이 앞서기보다 먼저 실천하고 있습니다.
금강유역환경청은 그린인증 건축으로 지열을 사용하여 냉난방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너무 낭만적인 말입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변화를 넘어 재앙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종이 사라지고 생태계는 이미 교란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 대가는 사람들이 혹독하게 치르고 있습니다. 자연과 사람은 분리할 수 없는 존재, 자연이 훼손되면서 인간들의 삶의 질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치명적인 악재 앞에서 우리는 환경에 기인해서 감염병이 왔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끝일까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제2, 제3의 현상이 올수 있습니다. 모두 인간행위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환경 앞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환경과 마주해야 합니다.
이미 자연이 주는 평화를 몸으로 체득한 정청장은 유년의 기억이 가치관으로 정립되었다. 은퇴 후에도 한 치의 고민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흙의 주인이 되어보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그는 환경문제가 가파른 절벽에 매달려있다고 간절함을 넘어 절박한 여건에 놓여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숙명 같은 거대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졌다.
그에게 과연 “가능 할까요?” 라고 우문을 던졌다.
그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미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환경을 둘러싼 의식의 해이를 동반한 채 사람들의 방식대로 마음껏 써 재친 환경이 우리에게 이제 다시 엄청난 과제를 내주었다. 풀 수 없는 방정식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우리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산업구조가 다 바뀌어야 하고 365도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정가로서의 에피소드하나 들려주시면…
사무관 때 1년 간 총리실에 파견근무를 나갔습니다. 제가 하던 기존의 업무를 잠시 벗어나 총리실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파견기간을 마치고 돌아올 때 국장님이 총리실에 잔류 하라고, 업무성과를 우회적으로 언급하셨습니다. 저는 환경부에서 근무하려는 마음으로 행정고시를 준비했던 사람이라 환경부가 아니면 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뼛속까지 환경공무원이었습니다.
초창기 세종청사는 세베리아라고 불렸습니다. 시베리아 벌판처럼 황량한 땅에 고립된 청사, 점심 먹는 곳도 없던 시절이라 퇴근 후 여유 시간에 성악을 공부했습니다. 성악가에게 노래 레슨을 받으면서 성악은 취미 이상으로 제 삶을 질의 높였습니다. 환경부에 공간을 만들어 직원들과 성악동호회를 만들고 송년음악회도 열었습니다. 심리적인 환경이 정갈해지면서 근무 환경도 좋아지는 것을 여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공간의 문제를 떠나서 심리적인 환경도 우리 삶의 질과 분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환경청장은 대전일보에 환경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그가 화두로 던진 ‘생태백신’ 을 통해서 바라본 환경 문제를 간략히 나누어 본다. (칼럼 내용 중 일부 발췌)
■생태백신 (대전일보)
기상 통계에 따르면 과거 30년과 최근 30년을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여름은 19일이 길어지고 겨울은 18일이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0년간 한반도의 기온이 1.4℃나 상승한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환경문제의 출발은 우리의 생산과 소비, 일상의 삶 속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환경문제의 해결은 바로 이와 같은 생산과 소비,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환경문제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원인 제공자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감염병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건강한 생태계의 중요성과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결국 환경문제 해결과 감염병 극복은 자연의 생태적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연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우선시해야 할까? 바로 기후위기 극복이다. 정부는 지난해 2050 탄소중립을 국제사회에 천명하였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불가피하게 훼손하였다면 이에 상응하는 생태적 회복을 통해 자연의 건강성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건강한 자연이 인간의 건강도 지켜주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호혜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일종의 생태백신인 것이다. 때로 불편을 감수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친환경을 넘어서 필(必)환경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것도 필(必)환경을 향한 적극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자연의 생태적 건강성을 유지시켜 주는 자연과의 거리두기를 위한 환경적 실천이 코로나19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감염병을 예방하는 최고의 백신인 것이다. —정종선 금강유역환경청장
환경은 변화의 단계를 넘어 생태계의 遷移(천이)를 불러 왔다. 종들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변천하며 속성 자체가 변하면서 사람들은 가혹한 현실과 만났다.
30년 전에도 환경이 파괴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예측 가능한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정종선 청장은 절박하지 않았기에 지금 탄소중립, 기후재앙, 必환경이라는 다소 거친 표현의 말, 목적 중심의 건조한 말들이 환경을 진단하는 현주소에 이르렀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시간들을 반면교사로 삼고 이제 우리는 매일 달라진 삶을 살아야 한다.
‘실천하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삶의 방정식을 바꿔야 한다.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들고, 다시 손수건을 꺼내 반쪽씩 접어보는 향수도 불러일으켜야 할 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환경문제, 365일 실천하는 것만이 해답이다. 정 청장이 던진 화두, ‘생태백신’을 일상의 언어로 가져오며 회복되는 환경의 청사진을 그려본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청풍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