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서예가 장헌 조득상 선생 다섯 가지 서체 ‘오체천자문’ 발간

오체(五體)는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 草書)
장헌 선생의 좌우명은 ‘진솔(참 진(眞) 쫓을 솔(率))’

정다은 기자 승인 2021.07.07 16:18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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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서예가 장헌 조득상 선생

서예는 글씨를 붓으로 쓰는 예술을 뜻한다. 흔히 화선지에 붓으로 쓴 전통서예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근래에는 전각, 캘리그라피, 회화 등 현대미술과 접목한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충남 청양 출신인 장헌 조득상 선생은 진솔(참 진(眞) 쫓을 솔(率))을 좌우명으로 삼고 평생 조부의 뒤를 이어 서예에 정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사저널 장헌 선생을 청풍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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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 조득상 선생의 손은 예술의 손이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예술작품으로 탄생한다. 또한 글씨를 쓰는 조 선생의 얼굴에는 마치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써있는 듯이 반짝반짝 빛난다.

“어려서 조부께 천자문(千字文)을 배울 때가 겨우 5살 무렵으로 기억된다. 한글도 완전히 깨우치지 못한 나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글이었다. 동문수학하던 다른 학형들과 천자문을 같이 읽을 때 공책에 천지현황란에 한자로 쓰라 명하시기를, 역왈천현이지황(易曰天玄而地黃)이라 하셨다. 어린 나로서는 감을 못 잡고 옆에 있는 학형의 공책을 넘겨보는데, 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조부께서 내 볼을 얼마나 힘껏 치셨던지 손목에 차고 계시던 시계줄이 단번에 풀어질 정도였다. 어려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울지도 못하고 있는데 조부께서 공책을 가져다가 천현이지황(天玄而地黃)이라 적어주셨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결코 만만치 않은 시련이 나에게 시작됐다. 이런 과정의 천문을 공부하던 중, 조부께서 40세에 쓰셨다던 해서천자문(楷書千字文)을 보았다. 어릴 적에는 몰랐으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조부님의 해서천자문은 볼수록 아름다웠고 섬세했다. 자고로 충신 집에 충신 나고 효자 집에 효자 난다 했던가. 나 역시 조부님이 써 놓으신 천자문처럼 오체천자문(五體千字文: 篆, 隷, 楷, 行, 草)을 쓸 것을 목표로 하였다가,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지난 즈음에 숙원이었던 오체천자문의 계획을 세웠다. 그간 어려서부터 조부께 배운 나의 시답지 않은 실력이나마 오체천자문 초안을 약 1년에 걸쳐 각 체의 자전을 찾아 작성을 끝냈다. 이어 2015년 신년계획은 오체천자문 완성을 목표로 하였으나, 만 3년 8개월에 걸쳐서 2017년 8월 27일에 글씨를 끝내고, 해석문은 어려서 배운 말씀과 조부께서 생시에 강의하셨던 녹음자료를 토대로 하였으며, 여러 저자의 번역서를 수집 및 참고하여 초학자들이 궁금히 여길 만한 사항을 기록했다지만 항상 미진함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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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 조득상 선생은 “5체가 다 다르다 보니 한 칸 한 칸, 한 줄 한 줄, 붓으로 칸을 만들고 줄을 한 장을 치는 데 15분이 걸리는 거예요. 앞뒤로 연습한 것도 버리지 못하고 다 모아서 엊그제 족보 만드는 회상사에 가서 매 왔습니다. 약 4년에 걸쳐 오체천자문을 완성하고 해석문을 써서 갖다 맡기는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4년간 쓴 글씨가 책으로 어떻게 만들어질까? 가슴 뛰는 순간이었고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벅찼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잘 만들었습니다.”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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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어린 학동들에게는 우선 가르치는 것이 본인들의 본관과 부모, 외조부모, 또한 부모 형제와 본인의 성명을 한자로 써주고 숙지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 한문이 필요하고 논리가 정연해지지, 부모나 본인 이름도 모르는 아이에게 무엇을 교육시키겠는가. 곧 근본을 바로 세워야 도가 생겨난다(本立而道生)고 했습니다. 아마도 필수일 겁니다.

본 오체천자문은 오체와 해석문을 나누어 나열하여 서예의 변천과정과 또한 글자를 익힐 때 문장에 담긴 내용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작성하였습니다. 각 체의 출처는 내가 쓰던 체라고 해서 그냥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전자 휘(篆字 彙), 예자 휘(隸字 彙), 초자 휘(草字 彙)를 모두 찾아서 내가 흠모하던 당송(唐宋)의 명필들의 글자를 골라 여러 번 임서를 거쳐 옮겨 놓았습니다. 혹여 여러 서백(西伯)과 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지만 이 또한 본인이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조그마한 결과라고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서해(恕海)하심과 본 오체천자문을 보시는 분들의 질정(叱正)을 기다리겠습니다.

오체천자문(五體千字文)의 집필을 마치고 돌아보니 허점투성이입니다. 역시 욕심만 가지고 대들어보았다는 게 오점이리라. 허나 소시부터 글씨를 써온 나로서는 해볼 만한 일 같기에 조부께서 내려주신 전자 휘(篆字 彙), 예자 휘(隸字 彙) 및 집고명인(集古名人) 초자 휘(草字 彙) 등의 서적에서 한 자 한 자 색자(索子)해서 중국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로부터 당송(唐宋)에 이르러 손과정(孫過庭), 소동파(蘇東坡), 미불(米芾)과 동기창(董其昌) 같은 명인들의 글자에서 보편적이며 너무 난해한 글자를 피하여 수려한 글자를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에 연습을 가하여 옮겨 놓았습니다. 물론 서백(書伯)들께서는 가소로움을 금하기 어렵겠지만, 이 또한 본인이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기에 그다지 후회는 들지 않습니다. 중간에 에셔나 전서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글자, 또는 전자(篆字)가 다른 중첩된 글자와 통용되는 글자 등 매끄럽지 못한 점을 나름 보완했지만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끝으로 나에게 처음으로 글을 가르쳐주시고 글씨를 좋아하게 해 주셨던 나의 조부님과 나의 어머님 영전에 재배(再拜)하고 이 글을 바친다. 아울러 번역을 부드럽게 고쳐준 우리 식구인 나의 아내 김명례와 딸 항미, 항의, 아들 항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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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박현숙 씨는 “평생에 대단한 업적을 남기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에게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 일이 쉬운 길은 아닌데 오로지 한 길을 가셨다는 게 존경스럽고 또 배우고 있는 학생의 입장으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선생님이 직접 칸을 긋고 다섯 가지 서체로 천자문을 쓰신 것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한자를 하는 분들이 장헌 오체천자문 책을 보고 실력이 향상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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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기 연구원(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직접 칸을 긋고 영인본 만들 듯이 집자는 하지 않고 이렇게 책을 발간한 경우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처음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발간된 책을 보면 그 정성이 오롯이 들어있는 걸 아시게 될 것입니다. 서예를 공부하는 분들이 이 책을 보고 임서해서 실제 실력이 향상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특히 어려서 할아버지로부터 한자를 배우고 쓰게 된 선생님은 한자를 가르쳐 많은 제자들도 있으며 장헌 오체천자문을 발간하게 된 것에 대해 저희도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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