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의 시평] 묵화(墨畵), 북치는 소년 / 김종삼
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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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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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북치는 소년 /김 종 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서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이것저것 잔소리 없이 간결하고 짧다. 산수화 같은 여백의 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초월하지 않으면 언어에 끌려다니거나 억지스럽고 구차하다.
소의 목덜미, 할머니의 손, 서로의 발잔등 그 외에 무엇을 더 필요로 할까. 북치는 소년 또한 쓰다만 시 같기도 한데 각 행의 ‘~처럼’ 뒤에 북치는 소년을 덧붙여야 비로소 여백이 채워지는 것이다.
김종삼 1921~1984
시집 북치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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