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문장부호로 보는 인생(?!,.)
이창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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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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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기 객원교수(한국장애인멘토링협회 총재)
문장부호로 보면 그 사람의 일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평생을 의문부호(?)만 던지며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 의문부호에 답, 즉 느낌(!)을 찾고 마감하는 사람, 가끔 자신을 돌아보면서 쉼표(,)도 그리는 사람이 있다. 물론 인생은 의문과 느낌과 쉼, 그리고 마침표를 찍는 삶이 가장 잘 산 삶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사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가?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양면적이며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법륜 스님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수많은 선현들과 지식인들이 다양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첫째로 노예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오로지 먹기 위해 산다. 노예는 자유도 사랑도 추구할 수도 없고 추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통제에 익숙해져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나의 안전과 생존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사랑을 기대할 수 없다. 둘째로 자유만을 갈구하는 거지와 같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거지에게는 가족도 필요 없고 이웃에 대한 사랑도 없다. 심지어 노숙자들을 쉼터에 데려다 놓으면 뛰쳐나가서 다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셋째로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인(仁)도 사랑이요 부처가 말하는 자비(慈悲)도 사랑이며 예수는 사랑을 으뜸으로 여겼다. 심지어 성경책 구약과 신약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랑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임에 틀림없다. 먼저 나를 사랑하고 내 가족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지구 저 반대편에서 고통 받는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보내는 것도 사랑이다. 성경에도 예수가 제자 베드로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한 말의 뜻은 네 자신에 머물지 말고 심지어 네 가족을 넘어서서 세상의 모든 이를 네 가족으로 삼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그물을 던지라는 사랑의 메시지였다. 일찍이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럿셀은 “착한 삶이란 지식에 의해 인도되어지고 사랑에 의해 고무되어지며 연민으로 완성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처럼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세 가지 덕목은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 학습하는 것이고 나와 내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면서 기쁨을 얻고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는 가운데 보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치 없는 대상까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불의와 부정한 것 까지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 수잔 울프의 ‘진정한 삶이란 가치 있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충고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 행복한 삶이란 바른 지식을 사랑하고 나와 내 가족을 옳게 사랑하고 이웃을 고르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작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인생은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찾기 위해 학습하고, 그 느낌은 사랑이요 쉼표는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어려운 이들을 보듬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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