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의 그림책 산책] 『안녕, 모그!』 & 『혼자 가야 해』

이해완 시인 승인 2021.07.13 15:37 의견 0

이번 호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준비했습니다. 『안녕, 모그!』는 영혼이 몸을 빠져나간 뒤에도 자신을 잊지 못하는 다비와 이지의 가족을 위해 반려묘 모그가 펼치는 이야기를, 『혼자 가야 해』는 삶을 내려놓고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강아지의 특별한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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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주디스 커
옮긴이: 이순영
출판사: 북극곰

13년을 함께 산 쿠니를 보냈다.

쿠니가 우리의 반려견이 된 것은 막내아들의 생일 무렵이었다.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물었더니 강아지라고 했다. 난 기꺼이 그 청을 받아들였다. 사내아이들이란 누구나 한 번쯤 때가 되면 개를 키우고 싶어 하는 열병에 걸리는데 그 병을 꺼주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깊어져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마침내 분양을 해주겠다는 사람을 찾았다. 동학사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새 식구를 맞을 준비를 하고 나갔더니, 그쪽에서도 가족들이 나와 있었다. 온몸이 하얀 몰티즈였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의 품에 어린 강아지가 꼭 안겨 있었다. 옆에 있던 아버지인듯싶은 이가 이분들 집으로 가면 쿠니가 지금보다 더 잘 살 거라며 어서 건네주라고 했다. 보아하니 이사를 하는지 이들이 타고 온 용달에는 세간살이들이 실려있었다. 개를 키우지 못할 사정이 거기 있을 터였다. 마지못해 건네는 소녀의 눈에 투명한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책임분양비를 내밀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사랑하는 개를 보내면서 돈을 받을 수는 없다는 의지의 표명 같았다.

그렇게 해서 쿠니는 우리 식구가 되었지만, 옛정을 잊지 못했다. 밖에 여자아이들 소리가 나면 맛있는 간식을 먹다가도 후다닥 뛰어가 베란다 창틀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 모습은 옛 주인을 찾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 쿠니가 안쓰럽고 한편 서운했다. 쿠니의 이런 행동은 10년이 넘게 계속되었다. 그런데 세종시로 이사를 온 뒤부터 쿠니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밖에 여자애들 목소리가 나도 창가로 뛰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유독 나를 투명 인간처럼 대하던 쿠니가 어느 날부터는 꼬리를 흔들며 반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도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의 품을 떠나 우리에게 왔을 때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였는데, 이제는 누가 봐도 노견임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위화(중국의 소설가)의 표현대로라면 세월이 그에게도 돼지 잡는 칼을 무자비하게 휘둘렀음이다.

개도 오래 살게 되면 깨달음을 얻는 걸까 아니면 체념을 한 걸까? 쿠니는 어느 날부터 그렇게 살갑게 다가왔다. 옛 주인은 잊고 남은 삶이나마 우리 가족과 잘 지내기로 한 것 같다. 쿠니의 이런 변화가 반갑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데, 역시 쿠니에게 오고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아니 이미 예상했듯이. 쿠니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1970년에 출간되어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안녕, 모그!』가 51주년을 맞아 ‘북극곰’ 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책의 작가 주디스 커는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서 『안녕, 모그!』로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로 사랑받게 된다.

모그는 너무나 지치고, 머리도 무겁고, 발도 무겁고 꼬리조차 무겁게 느껴지자 ‘이제 영원히 잠들고 싶어’라고 생각한 순간 모그의 영혼이 몸 밖으로 쑥 빠져나오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은 모두 모그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다.

다비와 이지는 울면서 모그가 왜 죽어야 하냐고 묻는다. 엄마와 아빠도 울면서 모그는 정말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이 모습을 모그는 공중에서 다 지켜보고 있다.

한동안 아무 일도 없다가도 다비와 이지는 모그가 생각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모그에 대한 추억을 지우지 못한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어느 날 엄마가 아기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지만 낯선 환경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한다. 모그는 자신이 떠난 빈자리에 찾아온 이 어린 고양이와 다비의 가족 사이를 어떻게 이어줄까?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담은 『안녕, 모그!』는 작가 주디스 커의 가족과 함께했던 고양이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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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조원희
출판사: 느림보

쿠니가 우리 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말년의 하루하루는 참 단조로웠다. 아침을 먹고 우리 가족이 학교로 직장으로 떠나고 나면 앙상한 노구를 이끌고 자신의 잠자리로 들어가 낮 동안 잠들었다가 우리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기척이 나면 보름이와 다투듯 뛰어나와 반기는 것이 일과였다.

그런 쿠니가 며칠 전부터 젊음을 되찾은 듯 활기차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날 밤은 겅중겅중 뛰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보름이에게 자꾸 다가가는 것이었다. 쿠니가 진돗개인 보름이 가까이 가면 물릴까 봐 못 가게 가로막았더니 몇 번을 더 시도해 얼굴을 보름이 가까이 대고 비벼대려 했다. 그러고는 화장실 앞으로 가는데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모습이었다. “쿠니야, 엄마 씻고 있어!” 하고 외쳤더니 그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딸의 방으로 뛰어가는 거였다.

침대 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데 마치 우리 식구들 모두를 찾아 헤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제 잠자리에 들어가더니 조금 전의 생기발랄한 모습과는 달리 온몸을 발발 떨며 경련을 하기 시작했다.

막내가 급히 야간진료가 가능한 동물 병원을 검색했다. 그때가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병원이 있었다. 쿠니를 수건으로 감싸 안고 차에 태워 병원에 데려가 응급조치로 주사를 맞히고 돌아왔다. 하지만 쿠니의 경련은 아침이 되자 다시 시작되었다.

막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빠,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쿠니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가족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마음속에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었음이 아닐까 싶다.

고3인 막내 녀석이 함께 가고 싶다며 조퇴를 하고 왔다. 평소 다니던 동물 병원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쿠니를 안고 있는 아들의 옷 위로 노란 분비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번 목격한 주검이 앞에 있었다. 괄약근이 풀린 것이다. 이제 경련도 하지 않고 조용한 것이 고통도 멎었을 것이다.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주사를 놔주었다.

미리 알아둔 동물 장례업체 ‘무지개언덕’은 참 깨끗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 장례절차는 정중하고 사려 깊었다. 사람의 가는 길과 다르지 않게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쿠니에게 남길 말을 메모지에 쓸 때 아들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매달렸다. 전 주인인 소녀가 우리 가족에게 건넬 때 보이던 그 눈물이 떠올랐다. 쿠니는 이렇게 무지개언덕을 건넜다.

『혼자 가야 해』는 죽음의 세계를 향한 강아지의 특별한 여행을 다루고 있다. 한 마리 개가 눈을 감자 검은 개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작은 배를 만들고 피리를 손질하고 등불을 밝힌다.

망자가 된 강아지는 홀로 친구와 뛰놀던 공원을 지나, 혼자 기차를 타고, 푸른 안개를 따라가 검은 개와 만난다. 검은 개는 스틱스강에서 새로 도착한 망자의 영혼을 배에 태워 준다는 카론인 모양이다.

이곳에는 한 마리 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각기 자작나무 숲을 걸어온 개들이 검은 개가 마련해준 배를 탄다. 이제부터는 혼자 가야 하는 길이다.

작가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여 있다는 강까지 가는 길을 자작나무 숲과 푸른 안개, 연꽃 등으로 신비롭게 묘사하고 있다.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강사 역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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