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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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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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수양대군(首陽大君)이 13세 된 조카 단종(端宗)의 왕위를 빼앗자(1455. 7. 25.) 6명의 충신(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유성원)들이 비밀히 단종 복위를 진행했다. 때마침 명(明)나라 사절이 와서 창덕궁에서 환영연을 위해 군신이 함께 모일 때 세조(世祖)를 제거하려 했는데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못함을 보고 공모자 김질(金礩)이 변심하여 비밀을 고해바쳐 탄로 나게 됐다. 세조가 편전에 나와 6인에 대해 친국을 하였다. 6충신은 그 인격, 학식, 문장, 절조에 있어 당대 최고급 인재들로 최고의 지성이 모인 집현전 학사들이었다. 문종(文宗)이 병환 중에 여러 학자를 불러 밤늦게까지 모임을 가지며 어린 단종을 잘 보필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이 밤늦게까지 술을 나누다 잠이 들었고 밖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자다가 깨어보니 방안에 향기가 가득하고 초피(貂皮) 이불이 덮혀 있었다. 임금이 친히 덮어주신 것이었다. 서로 눈물을 흘리며 그 은혜에 감읍하였다.
① 성삼문(成三問)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세 번이나 “낳았느냐?”고 물어서 ‘三問’이라 이름 지었다. 세조가 “어찌 내 녹봉을 먹으며 날 배반할 수 있느냐?”고 묻자 성삼문은 나으리의 녹을 먹은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실제 그의 집에 가보니 을해년 이후에 받은 녹봉은 방에 그대로 쌓아놓고 손도 대지 않았다. 그는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라는 시를 짓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북소리는 목숨을 재촉하여/돌아보니 해 저무는구나/저승길 쉴 곳 없다 하니/내 오늘 밤 어디서 묵을꼬”라는 시를 지었다.
② 박팽년(朴彭年)도 세조를 나으리라고 불렀다. 나무라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했으나 단종의 신(臣)으로서 양심에 합당하게 살다 죽겠다고 결의를 다지며 “금생여수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옥출곤강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며/아무리 여필종부라 한들 님마다 좇을소냐”란 단가를 짓고 처형되었다.
③ 유응부(兪應孚)는 키가 보통사람보다 크고, 기골이 장대하며, 담장이나 집을 뛰어넘는 용맹과 힘이 있고 활도 잘 쏘는 무사였다. 평소에 “한명회나 권람(세조의 무사)을 죽이는 데 이 주먹이면 되지 칼과 창이 왜 필요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네가 상왕을 빙자해 사직을 도모한 것이 아니냐?”고 하자 “사직을 도모한 것은 수양 너다. 우리는 나라를 바로 세우려 했을 뿐 네 손에 잡혔으니 잔말 말고 어서 죽여라.”라고 말했다. 불에 달군 쇠로 배 아래를 지져도 안색도 변치 않고 “식었으니 다시 달구어 오라”며 호령했다. 함길도 절도사를 지낸 그는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낙락장송이 다 기울어지단 말가/하물며 못다핀 꽃이야 일러 무엇 하리까”라는 시를 지어놓고 죽었다.
④ 이개(李塏)는 목은 이색의 증손으로 문장이 특출해 세종의 사랑을 받았고 문종이 세자로 있을 때 단짝 친구였다. 세조를 돕는 정인지와 신숙주를 매우 꾸짖었다. 세조에게 누가 역모인가를 따졌다. 김질과 김명중을 시켜 끝까지 회유했으나 “내 귀를 더럽히지 말라. 나는 지금 세종과 문종 임금을 뵈오러 간다.”고 호통쳤다. “까마귀 눈 비 맞아 희난 듯 검노매라/야광 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임 향한 일편단심 변할 줄이 있으랴”라고 노래했다.
⑤ 하위지(河緯地)는 집현전 학자 중 가장 뛰어난 학자라 세조가 공들여 회유했으나 “역모로 모는 이상 죽이면 될 것이지 더 이상 묻지 말라. 상왕이 주신 예조참판을 했지만 당신이 집권한 후에는 받은 녹봉을 그대로 보관해두었으니 어서 도로 가져가라.”라고 하며 처형되었다.
⑥ 유성원(柳誠源)은 성삼문이 문초를 당할 때 성균관에서 제자들에게 강론한 후 버드나무 밑에서 쉬고 있다 소식을 들었다. 곧 귀가해 아내를 뵙고 아내에게 술을 청해 두 세잔 마신 후 두 아들에게 “사람은 한 번 낳고 한 번 죽는 것이니 비겁하게 살지 말라.”고 당부한 후 사당에 올라 이별을 고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대학자들이 희생된 것이 아깝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적지 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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