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의 그림책 산책] 『이슬이의 첫 심부름』 & 『순이와 어린 동생』

이해완 시인 승인 2021.10.13 15:43 의견 0

이번 호는 유아들의 성장을 다른 그림책을 준비했습니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은 이슬이가 처음으로 엄마의 심부름으로 우유를 사러 가는 이야기를, 『순이와 어린 동생』은 엄마가 외출한 사이 동생을 돌보기로 했는데 동생이 없어져서 찾아 헤매는 순이의 이야기입니다. 유아들에게는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같은 첫 경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글: 쓰쓰이 요리코
그림: 하야시 아키코
옮긴이: 이영준
출판사: 한림출판사

『이슬이의 첫 심부름』은 한국인 2세로 알려진 하야시 아키코의 첫 그림책이다. 1973년 고바야시 미노루가 쓴 지식 그림책인 『종이비행기』에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로 데뷔했는데, 거기 그려진 그림에 반해 쓰쓰이 요리코가 찾아와 그 스타일대로 그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난 쓰쓰이 요리코와 하야시 아키코는 콤비가 되어 『순이와 어린 동생』, 『병원에 입원한 내 동생』, 『우리 친구하자』, 『나도 갈래』 등에 나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이, 영이, 은지와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낸다.

하야시 아키코의 그림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천진하고 귀여운 아이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조카들을 수없이 관찰했듯이, 골목 하나하나도 적당한 배경을 얻기 위해 동네 구석구석을 직접 취재했다고 한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에서는 첫 심부름을 하는 아이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엄마와 함께 다닌 익숙한 길이 임무를 띠고 혼자 가야 할 때 두려움으로 다가선다. 앞에서 다가오는 자전거에도 철렁 놀라고, 가게 아주머니를 부르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쥐고서 대문을 나서는 순간, 그 익숙한 길들은 이제 단절되고 세계의 첫발을 딛는 미지의 길이 펼쳐지는 것이다.

가는 길에 친구인 영수를 만나는데, 이슬이가 심부름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것도 혼자 간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첫 심부름을 하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라이트 형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을 타고 새처럼 하늘을 날아 보이겠다고 장담하는 일 만큼이나 대단한 것이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자 했을 때, 마음 저 밑바닥에 깔린 불안을 어떻게 달랬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슬이는 보통사람이 그렇듯이 노래를 중얼거리며 간다.

그러다 콰당 넘어져 동전이 떼구르르 굴러간다. 임무를 수행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동전! 하나는 찾았는데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이 부분을 읽어 줄 때면 “풀 옆에 있어!” 하고 외쳐대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집중하며 이 책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이슬이와 자신들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슬이의 성공은 자신들의 성공이 되고, 이슬이의 실패는 자신들의 실패가 되는 듯 이슬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게 된다.

우여곡절을 겪고 마침내 가게에 도착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사히 임무가 끝난 것이 아니다. 가게 아주머니를 부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이슬이는 가쁜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우유 주세요.”하고 말한다.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는데 모기처럼 작은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도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우우-유 주세요.” 하고 말한다. 이번에는 부릉부릉 지나가던 자동차 소리가 이슬이의 목소리를 삼켜버린다.

다음에도 담배 사러 온 아저씨한테 밀리고 빵 사러 온 아줌마에게 치여 우유 달라는 말을 못 한다. 마침내 이슬이 혼자만 남게 되었을 때 “우유 주세요.” 갑자기 자기도 놀랄 만큼 큰 소리가 튀어나와 가게 아주머니와 눈이 딱 마주친다. 가슴은 쿵쾅쿵쾅 눈에서는 끔뻑끔뻑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꼬마 손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알고 미안해하며 거스름돈까지 챙겨주어 이슬이는 첫 심부름을 완수한다.

언덕길 아래에는 엄마가 동생을 안고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이슬이는 두려움이 없이 심부름을 잘할 것이다. 이 그림책을 읽은 아이 중에 첫 심부름을 안 해본 아이도 이슬이와 간접 동행했으므로 잘 수행해 낼 거다. 이것이 그림책의 힘이다.

글: 쓰쓰이 요리코
그림: 하야시 아키코
옮긴이: 양선하
출판사: 한림출판사

『순이와 어린 동생』은 『이슬이의 첫 심부름』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아들의 성장을 다룬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이슬이가 순이로 대체되는데, 이번 임무는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이다. 사실 어린 동생을 돌보는 일은 첫 심부름 못지않게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생이 막 잠이 들어 엄마가 은행에 다녀온 사이 순이가 어린 동생 영이를 돌보게 된다. 순이는 동생을 위해 분필을 꺼내 기찻길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기차역과 산과 터널을 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영이가 보이지 않는다. 순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동생을 잘 돌봐야 할 순이에게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영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때 큰길 쪽에서 끼익! 자전거를 급하게 멈춰 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이가 다쳤으면 어떡해!” 쿵쿵 뛰는 가슴으로 달려간다. 이때 순이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게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생을 잃고 찾아 헤맨 어린 날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순이가 동생을 돌보는 일이 처음이지만, 내게는 이미 동생이 그림자처럼 떠맡겨진 골치 아픈 존재였으므로 나는 틈만 나면 어떻게든 동생의 눈을 피해 멀리 달아나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던 때였다.

동생을 떼어놓고 친구들과 신나게 산으로 강으로 헤매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이처럼 동생을 찾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어 우리 가족 모두가 나서 뿔뿔이 흩어져 어두워지도록 찾아다녔지만, 동생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어두운 눈빛을 보면서, 이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만 같아 어린 속에도 가슴이 얼마나 탔는지 모른다.

늦게서야 돌아온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혹시 강물에 빠졌을까 봐 횃불을 밝히고 대나무 장대로 온 강바닥을 날이 새도록 휘젓고 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모두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집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파출소에서 미아를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동생을 찾으러 갔던 누님의 말로는 눈물과 콧물이 뒤엉킨 얼굴로 순경 아저씨가 끓여준 라면을 먹고 있다가 가족들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그 동공 속에 기쁨으로 반짝였을 동생의 눈빛은 순이가 공원에서 어린 순이를 찾아냈을 때와 닮아있었으리라.

순이가 어린 동생을 찾아 뛰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실감나게 그려졌는지, 마치 쿵쿵 뛰는 심장 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큰길에서 자전거와 부딪친 건 영이가 아니다. 이윽고 놀이터에 다가갔더니, 있다! 틀림없이 영이다. 순이는 천리만리, 아니 온 세상을 다 헤맨 끝에 어린 동생을 찾아낸 듯싶은데, 영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놀이터 모래밭에 웅크리고 앉아서 놀고 있다.

순이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영이한테 달려간다. 영이도 순이를 알아보고 방긋 웃으며 모래로 범벅이 된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런 동생을 순이가 꼭 껴안아준다. 어린 영이는 언니가 왜 이렇게 자신을 꼭 껴안는지 모른다. 저만치에서 볼일을 마친 엄마가 오고 있다.

책장을 덮으면 뒤표지에 엄마와 순이가 영이의 손을 잡고 오는데, 순이는 활짝 웃고 있지만 동생 영이는 뭔가 화가 난 표정이다. 엄마는 그 모습을 의아한 듯 바라본다. 이는 순이와 영이의 갈등이 계속되리라는 복선이다. 형제(자매)는 커가면서 이와 유사한 과정을 수없이 겪을 것이다. 나는 어린 날 순이처럼 동생이 내게 맡겨졌을 때 착한 형이 되어 주지 못했다. 그것은 내 성격이 못되고 모나서가 아니라 감당하기에는 그 짐이 무거워서였기 때문이다.

하야시 아키코의 작품으로는 위에 소개한 책 말고도 좋은 책이 많이 있다. 아직도 하야시 아키코의 멋진 책을 구입하지 못하신 분은 당장 서점으로 뛰어가 한 아름 안고 올 일이다.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강사 역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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