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칼럼] 엄마의 자전거 페달 재봉틀

송은숙 승인 2021.10.13 15:47 의견 0

7년 전 세상을 떠나신 친정엄마가 그릴 울 때 시선이 머무는 곳이 거실 한켠에 놓여진 재봉틀 발 탁자이다. 명절도 지났건만 자전거 페탈 철재주물로 만들어진 둔탁한 쇳덩어리에 금색 페인트를 덧바르고 3cm 두께 유리를 덮어 만든 재봉틀 발 탁자!

멍하니 바라보다가 오래된 앨범을 뒤적거려 사진 한 장을 찾아 액자에 담아 올려놓았다. 고운 미소에 개량 한복을 입고 꽃무늬 양산을 받쳐 들고 계신 빛바랜 1950년대 후반 사진이다. 현재 필자의 나이보다도 훨씬 젊었던 날의 내 어머니가 물끄러미 쳐다보신다.

그냥 눈물이 난다. 추석 명절이 되니 더욱 그리워진다.

6남매들을 다들 단톡방에서 이번에도 만나지 못해 아쉬움을 글로 주고 받았지만 추석 마지막 연휴 날 오후 근방에 있는 동생에게 문자를 넣었다.

‘나 시골집에 다녀오려 하는데 동행할래?’

‘무조건 콜!!!’

살고 있는 아파트 쪽문에서 고구마, 밤이 든 까만 봉지를 들고 있는 동생을 태우고 30분쯤 옥천으로 향하는 도중에 그곳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무조건 콜이란다. 고기와 선물세트를 양손에 가득 든 동생을 태우고 나니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가까이 있는 세 자매만 고행을 지키고 있는 오빠 댁으로 가는 길이지만 살랑이는 가을바람과 뭉게구름이 마냥 좋아 우린 수다쟁이 여고생이 되어버렸다. 깔깔 깔깔거리며 도착한 오빠 집은 친정 부모님 집을 개조하여 멋진 집으로 되어 있어도 그 공간 공간에 스며있는 추억들이 몽글몽글 나와 반긴다. 마당 구석구석 살펴보고 집도 한 바퀴 돌아보고 이곳저곳 살피는 자매들의 눈빛이 정겹다. 한쪽 벽면을 다듬어 차고로 만들었다며 설명하는 올케의 말에는 그저 반응만 할 뿐 옛 추억들에 빠져 있다. 대청마루엔 이미 다과상이 차려 있다. 정이 많은 올케는 삶은 땅콩과 밤과 떡들을 푸짐하게 담아 낸 상 앞에 앉아 우리를 부르며 따끈한 보이차를 내리고 있다. 50대를 지나 환갑을 맞이한 오빠까지 모두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에 이런 시골에서 6남매를 교육해주신 부모님의 노고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차고 열 작은 공간에 작고 오래된 나무상자가 보인다.

“아!! 엄마표 손 재봉틀!!”

세 자매 입에서 동시에 나온 말!!!

평생 농부의 아내로 사시면서도 호롱불빛에서 양말을 꿰매시더니 언젠가부터는 전깃불 아래에서 짧은 털실들을 모아 옷을 뜨기 시작하셨고, 그러다가 발로 재봉틀을 밟으시며 옷을 만들어 입히시고 조각보 이불도 만들어 덮으시다가 그 후 발 이용하는 부분을 손잡이로 개조하여 오래된 나무함에 담아 안방 한편에 놓고 손자 손녀들의 옷을 만들어 선물해 주시던 그 재봉틀…….

호호 먼지 털어내고 들어낸 재봉틀은 노루발에 녹이 서려 있고 실타래는 누런 먼지로 무슨 색인지 알 수 없지만 엄마를 뵌 듯 반갑다.

재봉틀을 ‘전 세계로 확산된 근대화의 운전수’라고 말한다. 현모양처형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옷을 만들어 입히는 개성 존중의 시대로 제한적이지만 서서히 가정의 노동이 경제적 가치를 갖는 직업으로 인정받게 하였고 근대 국가를 이루는 토대의 변화까지 이끌어 낸 것이다. 또한 경제 주체가 여성까지 확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도 알 수 있다.

방직공장은 근대회의 초석이자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고 2021년 IMD의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3위로 유엔무역 개발 회의, UNCTAD에서 이제부터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인구수 7천만도 안 되는 반쪽짜리 작은 땅의 나라가 엄청난 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상위 반열에 위풍당당 오르기까지 희생과 사랑과 건전한 삶의 열정이 있음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된다.

2020년 모 단체에서 인도 오디샤주에서 발생한 폭력에 홀로 남은 여성 20여 명에게 재봉틀과 재봉기술을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한 걸음 나아가 디자이너라는 꿈을 갖게 하고 당당히 세상에 발을 딛게 한 재봉틀은 강인한 여성이자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라는 엄마의 가르침이다.

녹슨 노루발을 성심껏 사포로 닦은 후 깨끗하게 씻고 오래된 나무상자도 정성 들여 다듬어 외할머니를 무척 좋아하고 따르며 할머니 사랑옷을 입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미대생 막내딸에게 주었다.

“엄마! 제가 잘 간직할게요.
할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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