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
디지털 세대는 아날로그 세대의 견인을 통해 성장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꼰대 세대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세대였다. 지금의 60~80대에 속한 세대들이 걸어온 것을 되짚어 보자.
① 우리는 ‘호롱불’ 세대였다. 90%는 전깃불이 없어 호롱불(림프)을 켜놓고 공부했다.
② 우리는 ‘뒷간’세대였다. 90%는 실내 화장실이 없었고 엄동설한 한겨울에도 집 뒤꼍에 있는 재래식 변소에서 용변을 봤다.
③ 우리는 ‘우물’ 세대였다. 상수도가 없어 자연부락 단위로 공동 우물을 파서 양동이나 물동이로 물을 길어다 항아리에 담아놓고 식수로 사용했다.
④ 우리는 ‘가마솥’ 세대였다. 98%는 목욕탕이 없어 ‘가마솥’에다 물을 끓여서 목욕을 했다.
⑤ 우리는 ‘손빨래’세대였다. 100% 세탁기가 없어 개울에 나가 추운 겨울에도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했다.
⑥ 우리는 ‘보행’세대 혹은 ‘자전거’ 세대였다. 95%는 자가용 차가 없어 대부분 걸어 다니거나 일부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⑦ 우리는 ‘고무신’ 세대였다. 95%는 ‘구두’나 ‘운동화’가 없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⑧ 우리는 ‘까까중’ 세대였다. 100% 이발비가 적게 드는 삭발로 ‘까까중머리’로 다녔다.
⑨ 우리는 ‘보자기’ 세대였다. 98%는 ‘책가방’이 없어 ‘보자기’에다 책을 싸서 어깨나 허리에 차고 학교에 다녔다. 책은 교과서만 있었고, ‘전과’나 ‘수련장’ 등 참고서는 몇 사람만 갖고 있었다.
⑩ 우리는 ‘고무줄’ 세대였다. 100% ‘장난감’이나 ‘놀이기구’가 없어 여자들은 ‘고무줄’ 놀이를, 남자들은 ‘새총 놀이’, ‘제기차기’, ‘팽이 돌리기’ 등을 즐겼다.
⑪ 우리는 ‘강냉이’ 세대였다. 100%가 ‘쌀’이나 ‘보리쌀’이 없어 학교에서 배급으로 주는 ‘강냉이가루’나 ‘분유’로 ‘강냉이 빵’을 만들어 먹거나 ‘꿀꿀이죽(부대찌개)’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살았다.
⑫ 우리는 ‘주경야독’ 세대였다. 98%가 낮에는 ‘가사일’, ‘농사일 돕기’, ‘풀베기’, ‘나무하기’, ‘소먹이기’, ‘동생 돌보기’ 등을 한 후 밤이 돼서야 학교 숙제를 할 수 있었다.
⑬ 우리는 ‘주판’ 세대였다. 100%가 전자계산기나 ‘컴퓨터’를 갖고 있지 못해 다섯 알짜리 ‘주판’을 굴리면서 ‘계산’을 했다. 주산의 급수를 따야 은행이나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⑭ 우리는 ‘일제고사’ 세대였다. 100%가 입학과 졸업은 물론이고,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전교생이 일제히 시험을 치르고 등수(석차)와 평균점수를 매겨가며 경쟁을 했다.
⑮ 우리는 ‘입학 고사’ 세대였다. 100%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본고사 입학시험’을 치러서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전국 각 대학교의 입시 기출 문제집을 공부하면서 출제 경향을 탐색했고 도시에서는 일본 유명 대학의 ‘전년도 시험문제’를 구해서 문제풀이 연습을 했다. 지금 같은 스펙이나 ‘자기소개서’ 같은 것은 없었다.
⑯ 우리는 ‘공돌이, 공순이’ 세대였다. 너무 가난하여 상급학교 진학을 못 하면 농사일을 거드는 ‘애기 머슴’이 되거나, 도시로 나가 ‘식모살이’ 아니면 구로 공단 같은 공장에서 ‘공돌이’, ‘공순이’, ‘버스차장’ 등을 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가서 공부했다.
⑰ 우리는 ‘삯월세’ 세대였다. 80%가 ‘신혼 살림집’을 구할 돈이 없어서 거의 모두가 ‘사글세 단칸방’부터 시작해 ‘월세’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 목욕탕도 없고 같은 화장실(변소)을 공동 사용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⑱ 우리는 ‘월남전’ 세대였다. 1966년 이후부터는 나라의 빈곤을 해결하고 우방국을 지원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백구부대, 십자성부대 등의 이름으로 참전했고 채명신, 이세호 사령관이 지휘했다.
⑲ 우리는 ‘광부’, ‘간호사’ 세대였다. 최빈국이라 독일로 파견돼, 석탄 광부와 시체 닦는 일로 돈을 벌어왔다. 그나마 고졸 이상만 뽑았기에 5대 1의 경쟁을 통해서만 갈 수 있었다.
⑳ 우리는 ‘중동 건설 노동자’ 세대였다. 열사의 나라 중동지방에 건설 노동자로 일하며 오랫동안 가족들과 이별해서 살아야 했다.
이렇게 하여 GNP 63달러에서 30,000달러까지 나라를 발전시키는 기초를 놓았다. 젊은 세대가 우리를 ‘꼰대’ 세대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재활용품을 줍고 신문지 사이의 광고지를 쓰고 다 쓴 볼펜 깎지를 버리지 못해 리필을 한다.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을 겪으며 버텨온 세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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