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의 그림책 산책] 『스티브에게』&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

이해완 시인 승인 2021.11.11 14:56 의견 0

이번 호에는 『스티브에게』와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를 준비했습니다. 『스티브에게』는 도시 생활에 지친 곰이 시골로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고,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는 엄마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피아노를 쳐야 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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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에게』
글·그림: 이로운
출판사: 키다리

계룡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부천 상동에서 살았다. 그 당시 부천 상동은 신도시라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산도 강도 바다도 없는 도시라 자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늘 답답하기만 했다.

답답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강화도로 떠나곤 했다. 강화도에서 망둥이 낚시라도 하고 와야 갈증이 풀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주말이면 강화도에서 재미있게 보낸다는 사실을 알고 주위 분들이 동참하게 되었다. 30여 명의 수가 바닷가에 줄지어 낚싯대를 들고 망둥이를 낚아 올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의 낚싯대에 망둥이가 걸려 나오자 탄성이 터지고 그 넓은 바다가 즐거운 웃음판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 일행이 힘을 모아 아들은 구해냈지만, 아버지는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말았다. 비록 우리 일행이 당한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 일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강화도를 찾지 않게 되었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의 지친 심신을 풀어주던 강화도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이 되자, 새롭게 마음 붙일 곳이 필요해서 내려와 터를 잡은 곳이 계룡이었다. 우리 부부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계룡으로 내려온 것은 도시 생활에 지쳤기 때문이었다.

『스티브에게』 는 도시에 사는 곰이 주위에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밤에는 불빛에 가려 별들을 볼 수 없게 되자, 친구 스티브가 사는 시골로 이사 가겠다는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된다. 이 편지 한 통의 글을 제외하면 이 그림책은 사실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표지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물들과 그들의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도시 생활에 지쳐 무표정한 동물들은 흑백으로 처리했고 시골로 떠나는 곰은 밝은 주황색으로 처리해 대조를 이룬다. 속표지를 열면 곰이 친구인 스티브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한 장을 더 넘기면 제목 밑에 빨간 우체통이 정겹다. 에필로그에 해당되는 여기까지 만으로도 그림책의 아기자기한 맛이 잘 살아있다.

아마도 이 곰은 이 도시의 한 모퉁이 편의점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은 삶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삶을 선택하는 법이다.

드디어 곰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친구 스티브가 사는 시골로 들어선다. 터널을 지나자 어둡던 배경들이 차츰 환한 빛으로 바뀌고 하늘엔 자유롭게 나는 새들의 모습도 보인다. 터널과 새는 상징이다.

꿈에 그리던 전원에 첫발을 디뎠는데, 하늘의 새들을 보다가 돌부리에 걸려 꽈당 넘어지고 만다. 이는 다른 세계로 편입한 자가 치러야 할 통과의례다. 다행히 지나가던 돼지와 개가 도와주는데 이는 이 세계에 무사히 안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곰은 자유를 얻은 것이다. 꽃향기도 흠씬 들이마시고 친구 스티브를 만나 밤하늘의 별을 맘껏 보며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거기서 새로운 힘을 받아 도시로 재진입을 할지,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살지 그것은 모르지만 이 그림책에는 작가의 소망이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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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기는 지겨워』
글: 다비드 칼리
그림: 에릭 엘리오
옮김: 심지원
출판사: 비룡소

어린 시절 피아노 치기를 싫어했던 엄마가 아들에게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강요하면서 생긴 갈등을 할아버지가 재치있게 풀어주는 유쾌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이 그림책은 2006년 볼로냐 라가치상 ‘새로운 예술상’ 부문 수상작입니다.

나는 내 아이들뿐 아니라,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이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좀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악기를 하나 배워 보고 싶은데 워낙 박치에 음악적 재능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왔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들이라도 악기를 배웠으면 싶은데, 그들 또한 내 핏줄의 내력을 그대로 이어받아서인지 그게 쉽지 않다.

이 책에는 피아노 치기를 지겨워하는 아이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강요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마르콜리노는 날마다 3시가 되면 피아노 연습을 시작한다. 첫 페이지를 펼치면 글자를 고딕으로 띵 땅 똥 한 음절씩 끊어 이 아이가 얼마나 피아노 치기를 싫지 하는지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마르콜리노는 3시 13분이 되면 의자에서 내려와 텔레비전을 켠다.

그러면 엄마는 14분에 득달같이 달려와서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당장 피아노 앞으로 돌아가라고 악을 지른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피아노 앞으로 가서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18분에 마르콜리노는 주먹으로 피아노를 땅 내리친다.

아, 지겨워!

엄마가 달려와서는 “자, 조금만 더 연습하자! 연습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어. 엄마는 너만 했을 때 몇 시간씩 연습하곤 했다니까.” 하고 달랜다.

“그런데 왜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했느냐”고 따지자 엄마는 마르콜리노가 태어나는 바람에 꿈을 접어야 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마르콜리노는 엄마를 위해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사실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에서처럼 자식을 위해 꿈을 접어야 했던 엄마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자식이 아니었으면 정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엄마는 마르콜리노처럼 피아노 치기를 지겨워했던 엄마였음이 할아버지에 의해 뒤늦게 밝혀진다.

마르콜리노가 그렇듯 이 엄마도 다른 모든 것은 즐거워하면서도 피아노 앞에서만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 시절의 사진을 할아버지가 공개함으로써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부모 욕심 떄문에 자신의 꿈을 잃고 시들어가는 아이들이 많다.

다행히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고 원하는 걸 들어주신 할아버지 덕분에 마르콜리노는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찾아낸다.

악기는 이름도 생소한 ‘튜바’

그때부터 3시가 되면 자신의 몸보다 큰 튜바를 들고 의자에 앉아 연습을 시작한다. 볼이 터지도록 불어대지만 뿌 뿌 뿌 뿌 소리만 나올 뿐이다.

날마다 3시 13분이 되면 엄마가 걱정스레 묻는다.

“피곤하지 않니? 먹을 것 좀 줄까?”

하지만 마르콜리노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다.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니까.

이 책을 쓴 다비드 칼리는 부모가 원하는 것을 자식이 따르게 하는 것보다는 자식이 선택한 것을 믿음으로 책임감 있게 이뤄갈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 하는 물음을 던지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또한 부모들이 꼭 읽어야 할 부모 교양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 이해완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아동문학 강사 역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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