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칼럼] 공기놀이와 추억

송은숙 승인 2021.11.11 15:03 의견 0

퇴근 무렵 단톡방에 문자가 들어왔다.

“외식 가능함요? 파스타와 스테이크 먹으러 가요! 내가 쏩니다!!!”

‘가능’으로 답하니 식당이 정해지고 시간이 정해진다. 곧바로 장소에 당도하니 조그맣고 깔끔하면서도 할로윈 축제를 살린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탈리아식당이다.

맛난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막내딸이 애교 섞인 눈빛으로 얼굴을 들이대며

“언니들 2탄은 공기놀이 어때?” 모두 ‘콜!’

다이소에 들러 공기놀이기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공기놀이에 대한 사연이 쏟아진다.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 모두 외할머니에게서 배웠다며 할머니의 추억으로 이야기가 옮겨간다. 할머니도 가르쳐 주실 때와 게임에 임했을 때의 표정에 대한 각자들의 추억들도 쏟아낸다. 직장맘인 엄마를 대신해 딸들을 사랑해 주셨던 외할머니는 늘 감사함의 대상이시다. 도착하자마자 거실 한복판에 추억의 과자들을 늘어놓곤 공기놀이가 시작되었다.

기묘한 신경전에 점수 날 때마다 터지는 함성들, 그리고 제일 경험이 없는 막내가 계속 실수를 반복하자 ‘한 번 기회 더 주기’까지 하면서 밤 11시를 넘긴다. 60년대생인 필자의 뇌리에는 과거 50여 년 전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과 새마을 운동으로 깔끔해진 동네 길목에서 흙바닥을 뒤지며 찾아내던 작은 공깃돌도 보이고, 마루 아래 어두운 공간에 몰래 숨겨 놓았던 공기 돌무덤들도 보이고, 함께 했던 소꿉친구들도 소환이 된다.

딸들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그들의 자녀들을 보며 어떤 추억에 잠길까 궁금해지는 가을밤이다. 세상을 교육 분야가 아닌 기업경영에서 어느 정도 살다가 다시 돌아온 필자로서 현재의 교육 현장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이 스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놀이를 무의미한 시간 보내기로 간주한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더욱 유아와 아동기들의 놀이가 모든 영역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보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놀이는 외적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활동으로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교육 활동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은 물론이다.

‘아이의 자유 본성에 기초한 놀이를 중단시키고서는 제대로 학습이 일어날 수 없다.’는 서머힐의 저자 A. S. 니일의 명언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어린 시절을 보내는 기간에 놀이는 삶이며 학습인 셈이다. 4차 혁명을 시대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도 또한 놀이와 일을 구분하지 않고 즐기는 사람임을 감안할 때 ‘그만 놀아라’가 아닌 ‘뭐 하고 놀 거야?’, ‘어떻게 하는 놀이야?’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으면서도 단계를 높여 놀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우리 사회는 게임과 중독을 한 단어로 보는 시선 또한 갖고 있다. 스마트기기가 생활 속으로 오면서 인간관계 속에서의 놀이가 아닌 홀로 허상의 세상에 빠져 몽환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된 폐단도 있었다. 아직 분별과 조절이 되지 않는 시기에 아무런 사회적 관계에서의 모든 조율과 자제 활동을 하지 않은 채 자란 세대에서 많이 나오는 현상임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놀이는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수단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감정을 표출하는 역할을 하며 다양한 역할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기르고 공감 능력을 기르고 감정이입을 할 수 배운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사소통을 통해 언어발달을 촉진하고 구르고 뛰면서 신체감각과 평형능력을 기르며 주변 환경을 탐색하며 인지발달을 촉진하게 한다.

특히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놀이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최초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수단이며 함께 하면 부모자녀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유대감이 강해지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자녀가 부모와 함께 놀면서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이 이해받는다고 느끼게 되면 가정에서도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보고서는 많이 있다.

놀이는 선(善)의 모든 원천(源泉)이다. 피곤하고 지칠 때까지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는 어른이 되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게 되며 자기 자신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 놀다가 피곤에 지쳐 곤히 잠드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 아이의 모습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놀이는 그 사람의 생애를 결정짓는 작은 나무와도 같다. 그 아이의 마음이 깨끗한가 아니면 오염되었는가, 온순한가 아니면 난폭한가, 성실한가 아니면 게으름뱅이인가는 모두 아동기 시절에 어떻게 보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교육은 실천학문이다. 실천이 갖는 의미는 어떠한 이론보다 앞서며, 유일무이한 것으로, 그 자체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청명한 이 가을 감사함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파이팅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로 삶의 에너지를 갖게 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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