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정치는 혐오의 대상인가?

이창기 교수 승인 2022.01.10 14:47 의견 0

주변에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특히 이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들의 가족 문제가 불거지면서 찍을 사람이 없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럴 때 필자는 이번 선거는 덜 나쁜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니 철저하게 비교 검증해보라고 조언해준다. 어떤 이들은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국민건강을 해치고 그래서 의료비가 더 많이 들어간다고 정치인들을 탓하기도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일류국가인데 정치만 삼류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삼류정치인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 본인은 일류만 뽑았는데 남들이 삼류를 뽑아 우리 정치가 삼류가 되었다고 남 탓만 할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자신은 정치와 거리가 있다고 하면서도 이미 정치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게 인간이다. 정치는 우리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다. 그런데도 친구끼리 또는 가까운 사람끼리는 식사할 때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들 말한다. 심지어 종교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 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이야기한다. 필자는 그 반대다. 가까운 사람끼리 서로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얼마나 위선적이고 얼마나 큰 위험에 빠뜨리는 일인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하는 사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에 관한 서로의 견해가 다르다고 논쟁을 회피하면 자기 세계에 갇힐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나라의 경우,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보고 듣다 보면 다른 견해에 편향성을 갖게 되고 확증 편향성을 띠게 마련이다. 소위 생각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고 그러면서 편향성을 강화하게 된다. 외견적으로 보면 학력도 높고 평소에 합리적인 사람도 정치적 견해에 있어서는 자신의 지연과 계층을 뛰어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아마도 남들이 볼 때 필자도 정치적 편견이 강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적 논쟁을 반복적으로 재현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혹시 오류는 없는지 확인을 해봐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정당하다면 논쟁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정치논쟁을 회피하는 이유는 자신의 편향성이나 무지가 드러날까 봐 부끄럽고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역사를 잊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100년도 안 된 일본식민지역사를 꺼내면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 당시 숨을 쉬고 살았다는 게 친일이냐부터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이야기까지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인권을 유린한 독재가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논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렇듯 뻔한 역사 인식마저도 서로의 진영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한다. 과연 우리 후배들에게 어떤 역사 인식과 나라를 물려 주고 싶은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 미국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 어느 엄마가 아들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서 너무 속상한 나머지 하버드대의 유명한 심리학 교수를 찾아가 상담을 했단다. 내 아들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니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걱정이 된다고 말하자 그 교수는 정치인을 시키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다. 미국처럼 정직이 국가의 근간이고 인간관계의 근본인 나라도 정치인은 거짓말을 하는 직업인가 보다. 우리도 현실을 직시해서 정치인은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에 바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덜 나쁜 사람을 뽑겠다는 검증의 현미경을 들이대자. 그렇지 않으면 플라톤의 말처럼 ‘우리가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말을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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