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의 단상] 집안이 화목하면

시사저널 청풍 승인 2022.01.11 14:40 의견 0

“집안이 화목하면 가난해도 좋거니와, 의(義)롭지 않으면 부(富)인들 무엇하랴. 오로지 한 자식의 효도만 있다면, 자손이 많아서 무엇하랴. 어진 아내는 그 남편을 귀하게 만들고 악한 아내는 그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글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은 고려 충렬왕 때 추적이 편찬한 어린이들의 학습을 위하여 중국 고전에서 선현들의 금언, 명구를 편집하여 만든 책이다. 책명의 ‘명심’이란 명륜(明倫)·명도(明道)와 같이 마음을 밝게 한다는 뜻이다. 또한 ‘보감’은 보물과 같은 거울로서의 교본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명심보감은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도 좋다.

평소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는 분을 자주 인터뷰한다.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 하나 있다. 윤택한 삶이 아닌 분이 봉사에 더 열정적이며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같은 팩트는 어느 날도 인터뷰 과정에서 발견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도 겨우 마치고 기술을 배워야 살 수 있겠기에 양복점에 들어갔다. 이른바 ‘시다’가 되었다. 노동운동의 역사로 일컬어지는 전태일의 지난날처럼. 기술자들은 그를 동네북처럼 툭하면 때렸다.

그렇지만 꾹꾹 참았다. 집에 가봤자 먹을 음식도 없었기에 양복점에서 잤다. 당시엔 양복점에 도둑이 들끓었다. 양복점 주인은 그런 그가 기특해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특전을 베풀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 과정 또한 결코 녹록한 게 아니었다. 의심이 많고 소인배인 양복점 주인은 엄동설한에도 전기장판을 사주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빨간 전구를 켜서 가랑이에 낀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이 부분을 회상하면서 나와 인터뷰이는 동시에 공감의 눈물을 찍어냈다. 어쩌면 그렇게 나의 어렸을 적 파란(波瀾)과 붕어빵처럼 비슷할 수가……. 베이비부머인 나 또한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다.

당시 중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은 반에서 3분의 2였다. 나머지 3분의 1은 기술을 배우거나 외지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죽마고우 중에 중학교 대신 양복점에 들어간 친구가 있었다.

그날의 인터뷰이처럼 죽어라(!) 두들겨 맞으며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기성복 시대가 도래하면서 힘들게 배운 양복기술이 무용지물 되었다. 지금은 수선을 겸한 세탁소를 하는데 벌이가 늘 시원찮다고 한다.

시간을 돌려 그날의 인터뷰이를 다시 만난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16살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옷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양복점을 열 군데나 전전한 끝에 마침내 양복 만드는 기술만큼은 장인의 위치에까지 다다랐다.

힘든 고생 끝에 자신의 가게를 연 인터뷰이는 본격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에 나섰다. 소년원을 찾아 결연(結緣)을 하였다. 입을 옷이 없는 아이에겐 옷을 만들어주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에겐 지속해서 장학금까지 댔다.

부모의 불화로 소년원에 내팽개쳐진 그 아이는 훗날 인터뷰이 덕분에 오매불망했던 엄마를 만난다. 하나 이미 재혼하여 자식이 셋이나 있는 엄마는 더 이상 엄마가 아니었다. 이 부분에서 새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중요성을 곱씹을 수 있었다.

없이 사는 사람은 추운 겨울이 악마보다 무섭다. 그렇지만 아무리 궁핍할망정 가정이 안온하면 누구나 살 수 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해가 바뀌었다. ‘가화만사성’으로 모두가 행복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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