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제약 이해균 회장 “‘약용식품연구가’ 이해균입니다.”

효자상품 호관원 등에 업고 5월 ‘호당원’ 출시로 날개 달 예정
당뇨건강기능성식품 호당원프리미엄골드

정여림 작가 승인 2022.05.06 14:37 의견 0

약재 도소매업 ‘금산인삼 약초사’로 출발해 ‘동진제약’ 회장이 되기까지…

동진제약 이해균 회장

“‘호관원’을 능가하는 ‘호당원’이 될 겁니다. 여러분의 당뇨도 이제 ㈜동진제약이 책임지겠습니다!”

지난 3월, ㈜동진제약 이해균 회장은 대전 사옥 착공식에서 자신감에 찬 목소리를 냈다. 관절, 뼈 건강식품으로 히트상품이 된 호관원의 뒤를 이을 제2의 주력 신상품, ‘호당원’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동진제약 이해균 회장은 인삼의 고장, 금산에서 나고 자란 ‘금산인’이다. 인삼 농사를 짓는 부모 아래 태어나 자란 그는 스스로를 ‘약용식품연구가’라고 불러 달라 했다. 행정학을 전공한 그지만 서울에서 마케팅 분야를 섭렵하고 고향인 금산으로 돌아왔다.

금산의 작은 약초사 사장으로 출발해 2000년 동진제약을 설립한 그는 성장한 회사만큼 그의 삶 또한 성장했고 파란 많고 부침 또한 심했다.

좋아하는 단어를 나열해 보고 덜 중요한 하나씩 지워가다 하나 남는 단어가 ‘배려’였다는 이해균 회장. 성공한 기업인이 으레 그럴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그 무엇이 그에게는 숨어있었다. 그의 삶 깊숙이 들어가 인간 이해균의 삶의 나이테에 돋보기를 갖다 대본다.

동진제약


금산의 대표기업… 국내 대표적 건강식품 제조회사로 한 획을 긋다

㈜동진제약은 2000년 3월, 충남 금산군 제원면 암질골길에 식품사업부를 설립하고 지역 금산을 거점으로 성장했다. 특히 2015년 5월 출시한 ㈜동진제약 관절건강 보조식품 ‘호관원 프리미엄’은 그 효능이 입소문 나 유명세에 날개를 달았고, ㈜동진제약의 명성을 높이고 성장하는 한 축으로 작용했다.

회사의 성장세는 인삼 생약추출방법 등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홈쇼핑 진출로 점화돼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수출로 이어졌다. 2019년 미국 FDA 공장·시설등록까지 마친 동진제약은 이제 글로벌기업의 발판까지 갖추고 제2의 도약 중이다.

특히 히트상품 호관원의 뒤를 이을 당뇨환자를 위한 신제품 ‘호당원’은 많은 당뇨인들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금산의 대표기업을 넘어 국내 건강식품 제조회사로서 한 획을 그은 동진제약. 글로벌한 시장에서의 활약도 마냥 주목받는 이즈음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동진제약 항암·당뇨 연구소

회장님이 아닌 ‘약용식품연구가’라 불러 달라

“60대이신데 어떻게 주름도 하나 없으시고, 얼굴에 광채가 나세요?”

“하하하! 저희 회사 제품 ‘모모단 프리미엄플러스’를 아침마다 먹는 게 그 비결입니다. 탈모·피부미용에 아주 좋아요.”

첫인사에서 활력이 넘치고 사업가다운 유머로 아이스브레이킹하는 이 회장은 자신을 ‘약용식품연구가’라 불러달라고 했다, 회장이라는 위계의 이름보다는 원료 재배 현장에서 약성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건강 도우미로 불리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얼마 전 동창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자기 어머니가 관절이 안 좋아 보행카를 끌고 겨우 문 밖 출입을 하셨는데, 딸이 사준 호관원을 드시고는 보행카 없이 거뜬히 걸어 다니신다고요. 그래서 그 집 다른 딸이 그걸 보고는 호관원을 더 주문해 주려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저희 제품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저는 제일 기분 좋습니다. 그리고 딸들이 부모에게 잘해요. 하하하.”

이 회장은 제품의 재료가 되는 약재 식물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항상 신 성분에 대해 촉수를 곤두세운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인도차이나에서 재배되는 박 모양과 유사한 동과(冬瓜)라는 열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연구원들과 동과의 과육과 열매의 약성을 연구하고 좋은 성분을 어떻게 제품화할지 검토 중이다.

“현대인들은 과음과 스트레스로 몸이 항상 지쳐있죠. 동과를 사용한 음료를 구상 중입니다. 식약처 자문요원들과 자주 접촉해 원료의 과육, 껍질, 씨앗 등의 성분을 분석하고 약용, 음용 가능성도 검증하며 분석하고 있습니다.”

계열사 ㈜동진물산에서는 옥천군 부지 7000여 평을 확보해 동과 재배 계획이 서 있고, 금산 5000여 평 부지에는 당뇨, 혈압 등에 약성이 있는 야콘과 돼지감자를 농민들과 계약 재배한다. 지역 농업인들과 함께 커나가며 상생한다. 동진제약은 지난 1월 대전테크노파크에 동진제약 중앙연구소를 설립하고 석·박사급 연구진들이 제품 연구 개발에 여념이 없다.

당뇨와 혈압에 좋은 야콘 재배

실패한 경험이 가장 큰 재산… 난전에서 대추장사도 해봤다

자수성가해 가능성의 힘을 확인한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자주 당부한다.

“아무리 작은 거래처와 상담을 할 때에도 항상 그들을 존중해주고 배려해 주세요. 모든 거래처가 우리보다 더 큰 회사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1년 정도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일했다. 이후 개인 사업으로 마케팅·기획 관련 사업도 했다.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경험과 맨파워를 활용해 사업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실패의 고배를 마시며 금산으로 낙향했다.

결혼한 가장이니 생활 현장에 무조건 나서야 했다. 난전의 대추장사부터 시작했다. 트럭을 몰고 대구지역 등지로 인삼, 약초, 곶감을 팔러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아파트 부녀회를 섭외해 주민장터에서도 물건을 팔았다.

“100일 갓 지난 아들을 트럭 시트에 뉘어놓고 아내와 장사했죠. 여름 천둥 번개 치는 날이었는데 애가 놀랐는지 자지러지게 울어 가보니, 애가 좌석 아래에 떨어져 있더군요. 아빠로서 가슴이 찢어지게 미안했습니다.”

그는 사업 종잣돈을 모으던 당시의 우여곡절을 술회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주소가 있어요. 판암동 임대아파트 407동 505호. 신접살림 보증금이 없어서 장인어른께 염치불구하고 빌려서 얻은 집이었죠. 대전에서 엑스포 행사를 할 때는 아들 우유 값을 벌기 위해 택시 스페어 기사도 했지요.”

동진제약 기공식기념사 - 동진제약 이해균 회장


빌린 3천만 원으로 금산의 작은 ‘금산인삼 약초사’ 점포 두다

25년 전 어머니가 보증을 서 줘 빌린 3천만 원으로 금산의 작은 점포에 ‘금산인삼 약초사’를 차렸다. 하지만 인삼약초 도매업은 한계가 있었다. 일 년 만에 한의사를 고용해 한의원도 차려보았다. 검증된 의학적 자격이 없는 고용주였던 그는, 왠지 그곳이 자기 자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싶었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자신의 길을 찾고자 했다. 그것은 금산군에 동진제약 식품사업부를 출범하는 것이었다.

“지나고 보니 기회라는 건 매일 오는 것이었어요. 기회를 잡으려면 귀를 열어야 합니다. 사람을 믿고, 진심으로 다가가고 스스로 검증해보다 보면, 그 기회는 성공이 됩니다. 사람이 기회를 의심해 오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젊은 날 서울에서 쌓은 마케팅, 광고·기획과 사업 실패는 오늘의 시각으로 보니 실패한 경험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그 경험이 지금 보니 가장 큰 재산이에요. 과거의 시행착오가 동진제약을 일구는 밑거름으로 깔렸고,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가는 데 경험치로 쓰여, 보약이 됐어요. 살아보니 뭐든 헛된 것이 없어요. 어떤 가치든 내가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세상이 달라집니다.”

동진제약 이해균 회장

㈜동진제약, 미래지향적 성장 길… 뜻하지 않은 성장통을 만나다

동진제약을 설립하고 성장세를 이어가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지난해 성장통을 만났다. 인삼 재료를 원료화하는 데에서 점검 부족으로 불미스러운 고발을 당하고 말았다. 식약처에서 호출이 이어졌고, 기업 오너인 그는 검찰 조사로 불려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 가장 컸습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이해균 저 사람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렇게 돈 벌었냐’며 손가락질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고객들에 대한 죄책감도 컸습니다. 그 스트레스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 이상이었습니다. 평생을 신뢰와 호감으로 다져온 기업과 경영자 이미지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됐다는 생각에 나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6개월여를 두문불출, 텔레비전을 무음으로 해두고 화면만 멍하니 쳐다봤다.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눈이 나빠지고 근육도 빠져 몸무게가 82kg에서 63kg까지 떨어졌다. 당시 적을 두고 있던 여러 사회봉사 단체에 발길을 나서는 것이 죽기보다 힘들었다.

꼭 필요한 활동 외에는 거동을 많이 줄였다. 칩거하다 보니 우울증 증상까지 와 치료를 받았다. 나중에는 비관이 깊어 죽는 방법을 연구해보기까지 했다. 그가 생각해낸 죽는 방법은 50여 가지나 됐다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해 시도하려 했던 죽는 방법은 대둔산 산행이었다. 산을 올라가다 우연을 가장한 실족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가족, 부모, 사원들에게 충격과 사회적 파장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으로 그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한다.

이런 어두운 생각에 갇혀 있던 그가 밖에 나오게 된 계기는 의외의 이유였다. 그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긴 상태였다. 수요일이면 집 청소를 도와주는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유일하게 대면하는 타인이었다. 가족들은 집에 없고 그분을 대해야 하는 것이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한다.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저…, 아주머니, 제 방은 청소 안 해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초라하고 어두운 제 모습을 들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분이 오는 수요일이 제일 무서워서 몸서리쳤어요. 어느 날 딸이 찾아와 제게 애원했어요. ‘아빠! 제발 이러지 마세요. 어디든지 나가셔야 해요.’라고요.”

금산 제원면 천내 주민을 위한 호관원 나눔 기탁

비온 뒤, 땅은 더 굳어진다. 고난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다

올해 2월 23일 수요일이었다. 또 아주머니와 마주쳐야 하는 날이었다. 그는 그날 아주머니 오기 전에 가방을 싸 들고 현관을 나서버렸다. 찜질방을 가서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고 누웠다. 몸을 문지를 때마다 온몸이 고문하듯이 아파 왔다. 목욕탕을 나와 ‘다시 어디로 갈까?’라고 자신에게 물었다.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고, 그는 회사로 차를 몰았다.

“그날, 수요일 2월 23일이 동진제약 회장 이해균이 아닌, 그냥 사람 이해균으로 제가 재탄생하는 날이었습니다. 회사를 들어서니 직원들이 눈물을 훔치며 저를 둘러쌌습니다. 말없이 사옥 4층부터 1층까지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갑자기 들어서는 저를 본 직원들은 반가움에 펄쩍 뛰기도 하더군요.”

이 회장이 칩거로 공석일 때 다행히 그의 아내와 아들, ㈜동진제약 이동진 대표와 딸, 자연내림 호관원 이진솔 대표이사가 그 빈자리를 돌보고 있었다. 많은 지인들로부터 격려와 위로가 이어져 왔고 그는 점점 용기를 내 자신을 추스르고 귀환할 수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더군요, 내가 나쁘지 않은 사람인 것을요. 주변의 격려가 많은 힘이 됐어요. 아직 해결할 사안이 남아 있지만 자책감에 매몰되면 지는 것이고, 딛고 일어서면 이기는 것이겠죠.”

금산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 2천만 원 전달


지금은 ‘제2의 인생살이’ 중

그는 지금 자신의 삶이 제2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활력을 얻어 고사해왔던 모교 목원대 총동문회장직도 수락했다며 우스갯소리로 모교사랑을 드러냈고 주변인들에게 감사함도 표시했다. “목원대는 대단한 대학입니다. 저같이 훌륭한 사람도 삼수해야 들어갔으니까요. 하하!” 그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힘든 사태로 오히려 얻는 게 훨씬 많았다고 한다. 또한 따가운 볕에 서 있어서 그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주변인들도 새삼 돌아보였다 한다. 자신을 방치하고 돌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반성이 일었다.

“그 전에는 나를 먼저 사랑하지 않았어요. 부모, 자식, 형제, 회사, 사회, 단체 그 다음 순서에 ‘나’라는 사람이 있었죠. 이번 시련을 겪으며, 나를 진정으로 먼저 챙기고 사랑해야겠다, 내가 행복해야 주변도 행복하겠다고 절실히 느꼈어요.”

그가 칩거하며 회사를 비운 수개월 동안 빈자리를 메워온 아들, 딸이 10년은 성장한 것 같다며 자녀들에 대한 신임과 고마움도 표하며 말했다.

“고난으로 잃은 게 많을 것 같지만, 사실 얻는 게 더 많습니다.”

금산지역 이웃들에게 2억 원 상당 홍삼 제품 기부

나는 ‘박사’ 보다 한 수 위 ‘밥사’! 금산 천내마을의 큰아들

그는 고향인 금산 천내마을의 큰아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의 현 주소지는 충남 금산군 재원면 천래길… 그의 어머니의 거주지다. 금산군에 조금이나마 기업이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주소지를 옮기지 않는다. 그는 금산 중학교, 금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모님은 남다르신 분이었다. 그 시절 인삼 농사, 벼농사로 3남 1녀 자식 4남매를 다 대학 보냈다. 그중 맏이인 이 회장이 소위 말하는 가방끈은 제일 짧다. 아래 남동생은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고, 막내 남동생은 박사로 성균관대학교 교수다.

“제가 형제 중 가방끈은 제일 짧지만, 사람들은 제가 제일 낫다네요. 왜냐면 요즘은 ‘박사’ 보다 ‘밥사’가 최고랍니다. 제가 밥을 잘 삽니다. 저희 아버님을 닮았어요. 아버지가 밥을 잘 사시는 분이셨어요. 일행과 식사하시다가도 꼭 중간에 일어나셔서 밥값을 계산하고 오시는 분이셨어요. 매번 어렵다 하시면서도 돈을 내놓으셨죠.”

인터뷰 중에 벨이 울렸다. “다가오는 어버이날 고향 천내리 노인회 나들이에 회사 차량을 좀 지원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고향 어르신의 목소리였다. 이 회장은 흔쾌히 회사 버스를 내어주겠다며 다른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며 서글서글한 큰아들 목소리를 냈다.

호탕하게 마을 어른들의 이러저러한 부탁을 들어주는 이 회장이기에 고향 사람들은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이 회장에게 자주 호소한다. 얼마 전에는 오랜 난제에 봉착해 백년대계로 미뤄져 온 신촌길 비포장 도로 2차선 확·포장사업을 이 회장이 자비로 지원했다.

신촌리 도로포장공사 기부


“행운의 백 불, 선행 많이 하시는 회장님 같은 분이 받아야죠.”

이 회장 폰으로 보내온 문자에, 시원하게 포장된 고향 도로 사진이 여러 장이다. 마을 사람들은 감사패, 공적패를 만들어 주겠다며 거듭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이 회장은 마냥 행복한 함박웃음으로 사진을 들여다본다.

“제가 어르신께 베풀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요. 솔직히 주는 마음이 더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갑을 뒤적거려 지폐 한 장을 내보이며 또 흐뭇한 웃음을 만들어 냈다.

고향 동네에서 마주친 한 아주머니가 이 회장을 막아서고 지갑을 뒤적거렸다. 평소 이 회장의 인정에 감사해 뭐라도 보답하고 싶었다며 백 달러 지폐를 내밀며 말했다 한다.

“이것은 행운의 백 불입니다. 선행 많이 하시는 회장님 같은 분이 행운을 받으셔야죠. 동생이 미국에서 보내왔는데 이 회장님께 이걸 드리고 싶어요. 동네 사람들이 이 회장님한테 맨날 부탁해 제가 미안하다고 그만하자 해요. 기부금 영수증도 안 받으시고 맨날 신세만 져서 죄송해요.”

이 회장은 몇 개월 힘들게 칩거할 때도 고향 마을 어른 전화만큼은 받아왔다. 그리고는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란 말을 매번 하고 있었다.

그는 최근 사회기여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로타리재단 모금 위원장 제안을 수락했다. 그와 두 자녀 또한 각계 각처에 기부, 봉사와 원조의 손길을 보태 현금 및 물품을 5억 이상 기부했다.

대전시에 홍삼 가공식품 1000박스 기탁


매사에 상상하고 시뮬레이션(simulation)하라… 배려하라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자신만의 사색도 깊어 보인다.

“제가 좋아하는 말들은 매사에 ‘상상하라’, ‘시뮬레이션하라’입니다. 어떤 제품을 기획할 때는 치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변수를 점검하고, 상상하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소지들을 미리 시험하고 걷어내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 회장은 어떤 날이면 아주 좋아하는 단어들을 백여 개를 나열해 본다. 하나씩 지우며 마지막에 갔더니 ‘배려’라는 단어만 남았다. 회사 사훈에 있는 여러 단어 중에서도 한 가지만 남기라면 그는 ‘배려’를 고를 것이라며 덧붙였다.

“우리 동진제약은 모든 사람을 아끼고 배려하며 건강기업으로 오래도록 함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바람으로 20여 년 이상 이끌어온 동진제약의 기업 이념은 정직과 신뢰다. 홍삼 건강식품과 인기상품 호관원, 호천원, 모모단 등 모든 제품은 안전성, 건전성, 완전성이 입증된 원료만을 엄선하여 청결 상태로 제조하며, 국내 및 해외 시장에도 수출한다. 특히 홍삼을 주축으로 한 전통 원료가 첨가된 각종 환 제품은 최상의 품질로 연구 제조 가공되고 있다고 회사는 자부하며 이 회장도 포부가 남다르다.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영리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는 것을 알지요. 동진제약은 사람들 건강에 도움 주는 일을 합니다. 이제는 120세 시대입니다. 건강은 삶의 질을 좌우하고 좋은 먹거리를 섭취하는 것이 절대적이죠. 우리 동진제약은 앞으로 꾸준히 양질의 기능성 식품을 개발해 국민 건강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지난 힘든 시기에 아들, 딸이 회사를 잘 꾸려준 믿음이 있기에 이 회장은 이제 이선으로 물러나도 큰 문제가 없겠다며 흐뭇해했다.

“다른 농사보다는 자식 농사는 괜찮게 지은 것 같습니다. 아들과 딸이 각자 사업에 적성을 보이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저보다 나아 믿음직합니다.

동진제약 이해균 회장

동진제약 이해균 회장은 스프링 같은 사람이었다. 아주 강한 스프링은 눌러도 잘 눌러지지도 않지만, 한번 눌리더라도 다시 튀어 오르는 용솟음은 더욱 세차다. 이 회장의 동진제약도 우여곡절을 탄력으로 극복하며 스프링처럼 튀어 오를 것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글로벌시장에서 건강수호기업으로 대활약하기를 기원해본다.

동진제약 사옥 기공식 축하테이프 컷팅

동진제약 이해균 회장

1983년 목원대 RCY 회장
1984년 목원대학교 써클연합회 부회장
1987년 서울올림픽조직위 청소년캠프 문화담당
1990년 거성기획 대표
1993년 금산인삼약초사 대표
1993년 한국유통 대표
현재 (주)동진제약 / 농업회사법인 (주)동진바이오 회장
현재 목원대학교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현재 목원대학교 장학재단 이사
현재 대전·세종·충남 RCY 총동문회장
현재 국제로타리3680지구 재단모금위원장
현재 호국보훈기념사업회 이사장
예정 대한민국아마추어골프협회장(6월 19일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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