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꽃카페’ 김성자 사장

“꽃은 사람의 마음을 대신 드러내주는 귀한 선물”

정여림 작가 승인 2022.06.03 16:30 의견 0
‘데이지꽃카페’ 김성자 사장

마음씨 곱고 인정 어린 꽃집 이모… ‘아름다운 대필’ 잊을 수 없는 손님

인근에 대학이 있는 관계로 꽃 카페에는 학생들이 커피를 마시러 많이 들른다. 학생들 사이에서 김 사장은 마음씨 곱고 인정 어린 이모다. 김 사장 식구는 어머니부터 온 가족이 남 주는 것,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가계에 오는 학생들이 남 같지 않다는 그는 수시로 인정 어린 말을 한다.

“학생들, 배고프면 얘기해. 내가 라면 끓여줄게.”

여대생에게는 장미 한 송이씩을 커피와 함께 준다. 생각지 않은 꽃 선물을 받아든 학생은 행복한 표정으로 활짝 핀다. ‘이래가지고 뭐 남아요?’라며 걱정해 주는 손님도 있다. 그러면 김 사장이 말한다.

“나중에 또 오시면 되죠.”

물론 꽃가게를 홍보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김 사장은 주는 마음이 더 행복하다며 이윤이 남지 않아도 “기쁜 마음만은 남잖아요.”라는 답이다. 인지상정이라 김 사장에게 서비스를 받아가는 손님들은 꼭 재방문하고 재주문으로 이어져 김 사장 가계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김 사장에게 잊히지 않는 손님에 대해 물으니 기억을 더듬었다.

“허름한 차림의 할아버지가 꽃바구니를 주문하러 오셨어요. 난생처음 꽃을 산다시며. 50년 같이 살아오신 할머니가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했어요. 할머니께 꽃과 편지를 전해주고 싶다며 저더러 편지를 대필해 달라시더군요. 가슴 아팠습니다. 꽃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대신 드러내 줍니다.”

김 사장은 서툰 할아버지를 대신해 편지를 정성껏 써드렸다. 아름다운 대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여보,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

사실 김 사장은 연애편지와 인연이 깊었다. 학교 다닐 때 문장력이 꽤 좋아 인정받았다. 글씨도 예쁘게 쓰니 선생님이 연애편지를 대필해 달라고까지 하기도 했다.


“맨날 꽃 보는데도 그리 예쁘냐?” 천상 꽃집 할 수밖에

20대부터 차에 꽃을 가득 실어 나르는 꽃집 주인을 보면 무척 부러웠다는 김 사장. 그는 30대에 꿈을 이뤄 종일 다양한 꽃과 산다. 수수하면서도 선명한 홍자색 데이지가 좋다며 꽃집 간판에도 내걸었다. 지금도 그는 시장에서 꽃을 떼올 때가 가장 행복하다.

“시장에서 보는 것보다 가게에 가져오면 꽃이 더 예뻐져요. 물에 세워놓으면 두, 세 시간 지나 물을 먹고 더 생생히 살아나요. 꽃은 물을 먹어야 예뻐요.”

꽃을 엄청 좋아하니, 사람들은 그더러 ‘맨날 꽃 보는데도 그리 예쁘냐? 당신은 천상 꽃집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꽃에 대해서만은 그는 프로다. 플로리스트 회원으로서 경험도 많고 꽃 이름을 그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드물다.


충남 서산 해미읍 출생인 그는 20대에 친오빠가 경기도에서 꽃 농원을 해, 일을 도우며 꽃과 첫 인연을 맺었다. 농원 일에 멈추지 않고, 인근 안산시청에서 주관하는 꽃꽂이 교실에 참여하면서부터 꽃과 더욱 가까워졌고, 대전의 한 플라워샵에 근무하게 됐다.

당시 사장님은 유명한 꽃꽂이 강사로 플라워 학원도 같이 운영해서 그곳에서 1년여 근무하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꽃바구니, 수반 꽃꽂이, 꽃다발 등 꽃을 이용하는 모든 공예에 자신 있다.

처음 대전 대흥동에서 처음 꽃집을 열었고, 목원대 앞으로 옮길 때에는 IMF를 맞았다. 지금은 용운동 대전대 앞에서 꽃과 커피를 함께 팔아 ‘데이지꽃카페’가 됐다. 꽃 농원을 하는 오빠는 지금도 관엽식물을 한 차씩 실어와 김 사장에게 물건을 대 준다. 그의 대전살이도 30년째 이어지는 중이다.


“누가 미운 짓을 해도, 저는 밉지가 않고 도리어 불쌍해요.”… 봉사로 행복

공부도 잘하고 의욕도 많았는데 집안 형편이 힘들어 욕심만큼 공부를 못할 형편이었다. 철없던 그는 공부시켜달라고 어머니를 졸랐다. 그런 그를 보며 어머니는 안타깝고 속상해 나중에 우시더라며 씁쓸한 과거를 떠올렸다. 김 사장의 인생사도 굴곡지고 고독했는지 그는 외로움을 탄다고 했다

“저는 가게에 사람 오는 게 너무 좋아요. 장미꽃 가시에 손이 찔리듯 사람들 말에 상처받기도 하지요. 하지만 누가 미운 짓을 해도, 저는 밉지가 않고 도리어 불쌍한 생각이 들어요. 평소 착하다는 소리 듣고 사는데 그건 싫어요. 계속 착해야 될 것 같은 부담감이 생겨요. 하하.”


그는 착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용원동에 사장님같이 봉사 잘하는 사람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인터뷰를 하는 오전에도 가게 문을 닫아놓고 대사동 ‘복지만두레’ 행사를 위해 노인 이불을 사러 갔다 왔고 했다. 라이온스클럽 출신 여성단체 ‘목련클럽’의 회장을 맡아 돈 써야 하고 일해야 하는 궂은 일에도 나선다.

지역 방범대원을 자처했고, 지난 어버이날에는 노인들이 우울해한다는 얘기를 듣고 손을 걷어붙였다. 대전 중구 노인 복지관, 누리센터 노인들에게 카네이션 꽃바구니 만들기 수업을 해드렸다. 플로리스트로서 학교 진로체험 교육도 했다.


“사실 제 꿈 중 하나가 교사였어요. 교단에 서서 강의하면 꿈만 같아요. 봉사도 하고 선생님도 되는 이날은 제 생애 최고의 날이었어요.”

죽을 때까지 꽃집 할 것… 고객에게 데이지 꽃처럼 다가가 희망, 평화 바이러스 나누길

코로나가 터지고 ‘데이지꽃카페’도 한 3년 적자로 힘들었다. 주변에 문 닫는 꽃집도 많았지만 다행히 김 사장은 버틸 수 있었다. 남편이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 생활은 이어나갔으나 가게 세가 밀리기도 했다. 정부 지원금도 두어 번 받았지만 서류작업이 잘 안 돼 놓친 지원도 있다.

지난 4월부터는 화환 꽃다발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

“코로나 경기 체감을 제일 먼저 탔던 게 꽃집이고, 풀리는 것도 꽃집이죠. 최근에는 각종 단체 회장. 이·취임식이 많아져 주문이 많아졌어요.”

김 사장이 사회활동과 봉사를 많이 해 지역에 알려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꽃집을 이용해 준다며 감사하다. 죽을 때까지 꽃집을 할 것 같다는 김 사장은 향후 사정으로 꽃집을 옮길 계획이다. 대전 유성구나 서구로 가고 싶다는 김 사장. 지금은 가게 위치가 후미져 친구들이 잘 찾지 않는데 입지가 좋은 자리로 옮기면 많은 친구들이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끝으로 선물 받은 꽃다발을 집에서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팁을 달라고 요청해 보았다.

꽃병 물에 집안에 살균, 표백제로 쓰는 액체를 한 방울을 ‘톡’ 떨어뜨려서 꽃을 꽂아보라고, 그러면 오래 갈 거라고 알려줬다.


데이지의 꽃말은 ‘희망’과 ‘평화’다. 이 꽃말처럼 데이지꽃카페 김 사장님은 넉넉하고 넓은 인정으로 고객들에게 희망과 평화 바이러스를 아낌없이 나누고 있었다.

데이지꽃카페: 대전 동구 용운동 183-9(대전대 정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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