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큐피동’에서는 잠시 멈추고, 이 시간을 즐기세요!” 대전 문지동, 프랑스 레스토랑

손희동 오너 셰프 (36세)

정여림 작가 승인 2022.07.12 15:19 의견 0
‘르큐피동’ 손희동 오너 셰프

레스토랑 메뉴는 장·단편소설로 나뉜다?

르큐피동의 ‘단편소설’에는 문어감자, 채끝스테이크, 이베리코 스테이크, 오일 토마토, 파스타가 있고, ‘장편소설’에는 코스1과 코스2가 있다. 레스토랑 메뉴에 웬 단편, 장편소설 이야기인가?

손 오너 셰프는 자신의 손으로 빚어지는 메뉴에 대해 ‘장·단편소설론’을 펼쳤다.

르큐피동 매장

“감자탕집에서는 밥만 먹고 나오지만, 레스토랑에서는 메뉴 외에 분위기와 만족스런 시간까지 손님께 제공해야 합니다. 특히 코스요리는, 고객들의 소중한 시간에 스토리를 만들어줘야 하지요. 레스토랑에 오시는 손님들은 기대치가 있고, 원하는 서비스가 있죠.”

그의 ‘메뉴 장편소설론’을 참고해본다. 코스요리에 총 일곱 가지 메뉴가 제공된다면, 다섯 번째로 나오는 메인, 스테이크(쇠고기 또는 돼지고기·닭고기)가 서빙되기 전의 애피타이저는 메인요리보다 두드러지면 안 된다. 주인공이 돋보이도록 애피타이저는 분위기와 입맛을 예비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역할, 주변 인물 역할까지만 맡아야 한다.

그럼, 코스요리가 아닌 단품 메뉴를 선택하면 어떠해야 할까? 코스요리가 긴 대하·장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도입, 전개, 발단, 절정, 결말의 긴 흐름으로, 서서히 풍미의 절정으로 치달아 달콤한 케이크와 커피로 차분히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면, 단품 메뉴는 이와 다르다.

임팩트 있는 주인공 1인과 한두 명의 조연이 등장해 단선적인, 담백한 맛을 제공한다. 짧지만 선명한 울림을 주는 단편소설처럼. 손 대표가 제안한 레스토랑 메뉴에 대한 소설론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고객을 만족시키려 고민하고 연구한 자취가 짐작되는 기발한 논리다. 그럼 그의 장편소설 메뉴인 코스1을 읽어본다.

‘르큐피동’ 손희동 오너 셰프

르큐피동 ‘코스1’로 누리는 즐거운 시간

단새우연어

첫 번째로 테이블에 올려진 요리는 ‘단새우 연어’였다. 소금 설탕에 절인 연어·새우요리인데 북유럽의 염장저장법에서 유래한 조리법이라 했다. 달짝지근하고 쫀득한 젤리 같은 느낌의 연어, 새우는 처음이다. 혀가 헷갈려 할 정도다. ‘이게 새우, 연어 맞아요?’라고.

저민 하몽과 참외피클

두 번째로 나온 접시. 저민 하몽(돼지 넓적다리 부분을 소금에 절여 만든 생햄)과 곁들인 참외피클인데 파슬리, 마늘, 빵가루가 흩뿌려져 있다. 접시 위에 올려진 선명한 주황 꽃잎과 초록 이파리가 싱그럽게도 입맛을 돋운다.

문어 감자요리

세 번째. 문어 감자요리. 데친 후 버터에 구운 문어, 통째 구워진 수미감자가 노란 소스와 같이 하얀 접시에 앉았다. 단품 메뉴 중 이 집의 가장 인기 메뉴다. 탱글탱글하고 야들야들한 문어의 질감이 입안을 즐겁게 만들었고, 수미감자의 진한 향도 여운이 오래 간다.

화이트와인으로 요리한 광어

네 번째. 해산물 재료를 많이 쓴다는 이 집은 생선요리가 특히 신선하다. 화이트와인과 산미 재료로 요리된 광어는 기름과 액체를 융화한 소스에 젖어있다. 담백하고 두툼한 광어살은 비린 맛 없이 담백한 맛을 낸다.

채끝스테이크 감자퓨레

다섯째. 대망의 주인공 등장. 애피타이저들의 열연으로 감미에 더욱 예민해진 혀로 맛보는 채끝스테이크 감자 퓨레. 쇠고기 육수에 레드와인 소스가 쓰였다. 단백질인 고기에 탄수화물인 감자 퓨레로 밸런스가 잡혔다. 스테이크가 부드럽고 육즙이 혀에 스민다. 메인답게 뱃속이 든든해진다.

레몬무스와 누가글라세

여섯 번째. 레몬무스와 누가(엿) 글라세(얼리다) 케이크이다. 부드럽고 달달한 케이크는 기쁜 일이 없어도 언제나 행복감을 주는 마법의 요물이다.

일곱 번째. 커피타임. 저녁 시간 카페인을 꺼리는 고객을 위해 디카페인도 준비하는 센스가 있다. 입안을 개운하게 하는 확실한 마침표다. 긴 장편소설의 스토리가 하나의 스크린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에 커피는 딱이다.

※ 르큐피동 코스요리는 이틀 전 예약이 필수다.

프랑스 요리학교 거쳐 호주로 유학… 서울 레스토랑 경험 쌓아, 대전에서 오픈

그는 프랑스 파리 인터내셔널 요리학원 본사 르꼬르동블루에서 1년 과정을 마치고 2년여의 실습도 마쳤다. 프랑스 리용의 레스토랑에서는 감자 까는 것부터 시작해 다양한 요리의 견습을 했다. 2013년에 돌아와 서울의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1년, 호주에서 스페인·유럽 요리도 배웠다.

지난 2019년 11월에 대전 유성구 전민동에 ‘르큐피동’을 코로나와 함께 오픈했다. 레스토랑 이름은 유학 시절 친구들이 ‘희동’이라는 그의 이름과 큐피동이라는 발음이 비슷하다며 지어준 이름을 사용했다. 영어의 큐피드(사랑의 신)가 불어로는 큐피동이다. 지난 4월 좀 더 여건이 좋은 지금의 문지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그는 주로 노은동 수산물유통센터에서 식재료를 구입하는데, 신선도를 유지한 좋은 재료를 구하려 최대한 노력하며, 제철의 신선 재료에 따라 코스 구성을 달리한다.

“자금이 충분치 않은 상태로, 제 생각보다 더 일찍 개업하게 됐어요. 그러니 인테리어도 최대한 심플하게 해야 했고, 처음에 간판도 못 달고 영업했어요. 시작은 미미하고 부족하지만 지금, 발전해 나간다는 게 중요하죠”.

‘르큐피동’ 손희동 오너 셰프

레스토랑에서는 와인을 주문해야 할까?

르큐피동의 입구, 문을 열면 즐비해 있는 와인이 먼저 눈에 띈다.

“유럽에서는 고급일수록 메뉴의 소스가 점점 간소해지고 모던(modern)해지고 있어요. 더 심플해지고 덩어리 요리가 주를 이뤄요. 국물에 익숙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음식 넘김이 퍽퍽할 수 있죠. 와인을 함께 마시면 풍미와 맛을 더하기도 하지만, 음식을 더 부드럽게 넘길 수 있어요. 피클을 찾는 이유도 같을 수 있어요.”

양식을 먹을 때 와인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콤비라는 설명이다. “그럼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얄팍한 상식을 대입해 육류에는 레드와인, 생선요리에는 화이트와인을 주문하는 거죠?” 다르게 시키면 왠지 무식하게 보일 거라며 우스개로 물었다.

“고정된 건 없습니다. 고객의 취향대로 선택하면 되죠. 화이트와인은 주로 시원하게 마시고 싶을 때 원하죠. 어디까지나 입맛은 고객마다 천차만별이시니까요. 드시기 편하게 선택하면 됩니다. 포크로 먹어도 되고, 스푼으로 먹어도 되는데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식사 예절만 있으면 되는 것이죠.”

‘르큐피동’ 손희동 오너 셰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제길 걷는다… ‘시간 여유’ 지닌 사람이 성공한 것이다.

요리 외에 프랑스에서 배워온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그의 표현은 겸손했고 담담했다. 모든 프랑스인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들은 대체로 우리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여유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너 돈 얼마 버니? 아파트 시세가 어때?’라며 현실적인 생활에 쫓기고 코앞의 일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꿈이 뭐냐? 오늘 기분은 어떠냐? 어떤 미래를 살고 싶냐?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물었다.

“‘빨리 주세요, 코스 메뉴를 한 번에 주세요.’라는 말씀을 간혹 하시는 고객이 있으신데 안타까워요. 코스는 여유입니다. 시간을 좀 즐기시면 좋겠어요.”

그에게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저는 남과 비교하지 않아요. 그냥 묵묵히 제 길만 가는 거죠. 프랑스 요리에 제 방식으로 재창조, 변형해보고 저만의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 제 자신도 퇴화될 텐데 체력적으로도 가장 왕성한 지금 이 시기에 다양한 아이템을 개발해놓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주방에서 조금 실수했다 싶어도 손님이 ‘맛있다’ 하기도 하고, 완벽하게 만들어 냈는데 남길 때도 있다. 손님이 가신 후의 테이블로 매일 매일 성적표를 받는 느낌이다. 손 셰프는 바쁜 와중에도 손님의 반응을 살핀다. 음식을 남기는 경우는 꼭 분석해 본다. ‘성공하고 싶으시죠?’라고 물었다.

“성공은 돈이 아니라고 봅니다. 주방에서 일할 텐데 명품 옷 사면 뭐해요. 다만 저는 여유시간을 사고 싶죠. 돈보다 귀한 게 시간입니다. 능력도 없이, 시간만 많아도 안 되니, 능력과 여유의 밸런스, 그게 성공요소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일만 해 힘들지만, 언젠가 그 밸런스가 만들어지리라 믿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먹는 음식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데 손 대표는 동의했다. 맛있는 음식의 첫 번째 조건을 갖추는 건 고객의 몫이지만, 그 두 번째 부차적인 ‘환경’은 만들고 싶다 했다. 훌륭한 음식, 우아한 분위기, 멋진 음악, 정결한 플레이팅, 친절한 서빙까지……. 소중한 시간을 사고 싶으신 그대, 르큐피동의 이 열정 있는 셰프에게서 사지 않겠는가?

르큐피동: 대전 유성구 문지로315번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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