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덕유당 덧재한과 양미순 대표, “코로나 시대, 제대로 된 음식이 대안”

‘덧재유과’ 만들기 19년… 한옥에서 전통 후식 체험마당까지 열어

정여림 기자 승인 2022.09.06 14:00 의견 0
덕유당 덧재한과 양미순 대표

“우리 한식은 과학입니다. 유과를 만들려면 쌀가루를 계절별 15일~30일 정도 발효해야 합니다. 발효한 쌀가루로 모양을 잡아 기름에 튀기면 아무런 첨가물이 없어도 바삭하게 부풀어 오르며 튀겨집니다. 저는 유과를 만들 때마다 조상들이 고안한 발효음식의 과학성에 감탄합니다.”

추석이다.

이맘때면 친지나 은혜로운 이에게 어떤 선물로 보답할까 고심한다. ‘명절 선물’ 하면 떠오르는 항목 중에 달콤하고 바삭한 유과(油果)가 빠지지 않는다. 발효과학, 느림의 미학으로 빚어내는 우리의 고급 과자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느림의 식문화는 점점 보기 드물어진다. 끼니가 되면 주방을 서성거리기보다는, 휴대폰의 배달앱을 열고 퀵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많아진다. 소량으로 손질된 식재료를 양념과 한꺼번에 포장해놓은 밀키트(Meal Kit)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이러한 속도의 시대, 간편식의 대세를 거슬러 가는 한 사람이 있다. 느리지만 제대로 된 우리의 맛, 우리 전통 후식을 연구하고, 제조해 많은 이들에게 우리 것의 소중함과 전통의 맛을 보급하고 싶은 사람. 추석으로 더 분주해진 경북 예천군 ‘덕유당’의 양미순 대표를 방문했다.

덕유당 덧재한과 양미순 대표

“바이러스가 난무하는 시대의 대안식품… 전통발효음식”

봄이면 진달래 화전과 꿀물에 송홧가루를 풀은 송화밀수(松花蜜水), 여름은 막걸리를 넣어 부풀게 찐 술떡인 증편과 오미자화채와 연차(蓮茶), 가을에는 도라지 정과와 당근·무정과, 유자화채, 겨울은 유과(油果)와 식혜, 수정과 등등…….

계절별 한식 디저트에는 어떤 게 있을까? 덕유당 양 대표는 망설임 없이 추천하고 싶은 우리 음료와 후식을 술술 소개했다.

“우리 한식은 과학입니다. 유과를 만들려면 쌀가루를 계절별 15일~30일 정도 발효해야 합니다. 발효한 쌀가루로 모양을 잡아 기름에 튀기면 아무런 첨가물이 없어도 바삭하게 부풀어 오르며 튀겨집니다. 저는 유과를 만들 때마다 조상들이 고안한 발효음식의 과학성에 감탄합니다. 유과의 잡내가 중화되도록 단백질 성분 콩가루를 넣는 조상들의 지혜도 대단합니다.”

그는 농업기술교류센터의 각종 교육을 듣고, 농업진흥청의 자료나 책자를 수시로 찾아보며 우리 음식을 연구해 왔다.

“육포에 참기름을 바르는 것은 동맥경화의 위험을 중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코로나19 등 바이러스성 질병이 창궐하는 것은 인스턴트 음식, 반조리식품을 많이 먹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 땅에서 난 제철 재료와 음식으로 제대로 해 먹는 게 필요합니다.”

대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남편과 농촌에서의 새 삶을 구상하며 경북 예천, 남편의 고향으로 귀농했다. 우연히 한식을 배우게 됐고, 2003년도에 덕유당 덧재 한과 사업부터 시작했다.

덕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덕유당’, 생산지 마을 이름을 딴 상표 ‘덧재한과’ 유과는 전통을 고수하여 쌀가루 발효과정을 거치며 수제로 콩기름에 일일이 튀겨낸다.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드니 그 맛도 강하지 않고 은근하며 구수한 옛날 그 맛이 난다는 평이다.

“한과 사업은 추석, 설 명절에 일 년 수요가 몰려있습니다. 그 두어 달 매출이 1억 5천여만 원에 이릅니다. 전통적 제조법과 그 상품성을 인정해 줘 이룬 결과입니다. 성수기에는 지역 주민들이 덕유당에서 제법 큰 임금을 벌고 있습니다.”

전통 후식 테이블세팅·스타일링 접목해 한국적 맛(味)과 미(美) 체험 열어… 고객 반응 뜨거워

제조한 덕유당 유과는 군청이 운영하는 농산물 장터에서 팔고, 예천장터에서도 팔았다. 출향인들이 제품을 많이 찾아주었으며, 현재는 인터넷 판매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일 년에 두어 달 바짝 한과의 수요가 있다 보니 매출이 느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두어 달에 번 돈으로 일 년을 견뎌야 했다. 비수기를 이용해 할 수 있는 사업의 필요성으로 고민하고 찾던 중, 전통 후식 체험 수업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혼자 체험 스타일링을 고안해 고객을 모으니 ‘올드(Old)’하다는 평으로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전문적인 필요성을 느낀 그는 2016년에 서울 한국식문화디자인협회에 매주 다니며 테이블세팅·스타일링을 배웠다. 한식 스타일링을 배우러 갔지만 한식은 수업에 없어 난감했다. 주로 서양적 식탁 문화를 배워 서양식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해 체험을 열었다.

“너무 예쁘기는 한데… 우리 것의 정체성이 좀 더 많이 담겼으면 좋겠어요.”

체험인의 그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다시 고민을 거듭하다 서양의 화려함과 동양의 단아함을 적당히 콜라보(Collaboration)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현재 그의 강의는 SNS에 공지를 내면 순식간에 모집 마감이 된다.

그의 SNS에는 눈이 호강하리만치 화려하고도 다채롭게 차려진 전통 후식 상 차림새가 소개된다. 동양과 서양이 교묘히 절충된 그의 상차림 모양새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데, 외국 손님도 이를 체험하고자 찾아오기도 한다. 그는 최근 다양한 기관·단체의 요청이 있으면 전통 후식 관련 강의도 한다고 소개했다.

“코로나로 거리 두기를 예견해서였을까, 조선 시대에는 ‘독상 문화’가 있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져 소반을 이용해 독상 체험을 열고 그에 따른 소반 스타일링도 보여준다. 저는 이 일이 좋아서 하고 어떤 사명감이 샘솟기도 합니다.”

덕유당 덧재한과 양미순 대표

친정 어머니의 손맛 잊을 수 없어… “정감 있는 우리 음식 만들고 보여주고 싶다”

그는 충남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출생이다. 부모가 부농이었던지라 그는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결혼해서 살면서는 자기도 모르게 옛날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자신이 만들고 있더라며 회고했다.

“저는 7남매 중 막내인데 지금 제가 한식을 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해주신 코다리찜, 홍어찜을 잊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잔치 때 유과도 직접 만드셨습니다. 방바닥에 유과를 만들어 널어놓았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봄에는 쑥을 쪄 절구에 개떡을 치시고, 인절미도 만드셨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쓰시던 절구를 덕유당에 가져와 모셔두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라도 전통 음식문화를 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다. 사람들이 건강하고 질병 없이 살려면 좋은 음식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굳게 가졌다. 제대로 된 음식이 대안이라는 소신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한식 문화를 알리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것의 소중함을 보는 눈이 생긴다며 말했다.

“처음 덕유당에서 체험 수업을 열 때는 상차림을 예쁘게만 보이려 했는데, 이제는 정이 담겨있는 음식, 정감 있는 모습을 연출하려는 욕심이 생깁니다.”

“멋들어진 한옥 ‘덕유당’지어 즐기며 우리 음식 하고 싶었다”

“농촌진흥청에서 한과를 배우고, 덕유당 유과를 생산할 때는 가건물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허름한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멋진 한옥을 짓고 그곳에서 즐기며 제대로 일하고 싶었습니다.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가며 한옥을 짓기 위한 자금을 준비했습니다. 남편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당신이 일하고 싶은 한옥을 짓자’며 지원해주었습니다.”

그는 경북 예천의 산 중턱에 멋들어진 덕유당 한옥을 지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체험자들은 양 대표가 연출해 놓은 덕유당 한옥의 단아함과 고즈넉함을 즐기는 동시에, 집안에 연출된 동서양을 접목한 고전 가구들의 우아한 자태에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의 남편은 귀농한 이후 축산업을 하고 있다. 그들이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생각지 않은 사업상 악재로 초반에 마음고생도 심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 목이 빳빳이 높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한꺼번에 몰려 왔습니다. 몸도 안 좋아지고 사업도 힘들어져 있는데, 어느 스님이 저더러 ‘양 대표, 좀 내려 앉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로소 제 자신이 겸손해져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추석을 목전에 두고 있어 유과를 만드느라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작업이 힘들지는 않냐는 인사를 건넸다.

“시간 나면 남편과 승마를 두 시간씩 하는데, 하체 근력 단련에는 최고입니다. 그 덕을 보고 있는지 아직 건강에는 별 문제 없어 손수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은 과감히 시도했고, 매사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기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누구든지 열정을 쏟고 싶은 한가지 소명을 만나면 저렇듯 한 생을 신바람 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 구수하고 달콤한 덕유당 덧재유과를 한 입 하며 고운 처마선의 덕유당을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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