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림의 인생 Rebooting] 이재오 이장, “누구나 와서 살고 싶은 ‘숫골’ 만들고 싶다”

패션·조경사업 거쳐 이제 푸른 숲, 예스러운 고향 만드는 이장

정여림 작가 승인 2022.09.08 14:11 의견 0
숫골 이재오 이장


마을을 내 집 앞마당처럼 다듬는다… 나는 숫골 이장

이재오 이장(만71세)이 사는 마을은 충남 논산시 상월면에 위치한 주곡(酒谷)마을인데 예부터 ‘숫골’이라 칭해왔다. 전라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했으며, 동 주막, 서 주막이 있어 과객이 들리는 주막이 있던 터다. 숫골이라는 이름은 술골이 변형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그는 말했다.

“숫골에서 태어났으니 숫골에서 생을 마감하려 한다. 여기 선산이 있고, 나도 여기 묻힐 것이다. 늘 동고동락하는 주민들이 내 가족만큼 소중하다. 내가 조금만 수고하면 마을이 살기 좋게 되고 아름다워지니 기쁘지 않나.”

숫골 마을


숫골마을 이재오 이장은 객지에서 패션사업 등을 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2017년도부터 고향 에 정착하게 됐다. 숫골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해 돕다 우연히 이장까지 맡게 됐는데 마을은 충헌사, 백일헌 종택 등 역사문화유적지가 많아 문화재 마을로 불리며 관광차도 제법 드나든다.

이장을 맡은 그는 마을 환경·경관 가꾸기에 특히 정성을 들였다. 관공서나 단체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교육도 부지런히 들으러 다니며 마을을 변화시켜 왔는데, 그가 동분서주한 덕택에 사업 초창기에는 마을 지원금이 백만 원 남짓이었는데 올해는 2억 원까지 확보했다.

“열심히 뛰어다니다 이런저런 사업 지원금을 받게 됐다. 그냥 된 것이 아니고 부지런히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의지를 보여야 되는 일이다. 산림청 지원으로 숫골 마을 숲길, 사색 둘레길도 조성했다. 주민들이 모두 화합하니 이룰 수 있었던 일이다.”

숫골 마을 둘레길


숫골 마을 주민들은 다들 고령이다. 그와 6년 전, 같이 마을 사업을 시작한 주민은 70대였는데 다들 80대가 됐다. 처음, 그가 마을 사업을 벌이자 낯설어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정부지원 ‘마을만들기사업’이 뭔지도 모르던 초창기였다. 옛날, 새마을사업 추진 때 사적인 이익을 노리는 일부 이장들을 봐온 사람들은 불신의 시선을 보내오기도 했다.

“제가 조경 사업체를 가지고 있으니 ‘보조금으로 자기 사업 하는가’라며 처음에는 경계하는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마을 사업에 제 사업체는 일절 참여 앉고 진심으로 마을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점차 신뢰를 보였다. 사업에 참여 않던 분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참여해 주셨다. 1, 2년이 지나며 마을이 아름답게 변해가는 모습에 굉장히 보람 있다.”

마을 자랑을 하고 있는 이재오 이장


고향 생활… “너무너무 행복해 잠이 안 와”

마을의 수로였던 곳을 메꿔, 소공원을 만들었다. 멋진 소나무가 자태를 드러내고 철 따라 연산홍, 꽃잔디, 백일홍이 만발한다. 방죽을 개량해 만든 생태공원 연못에는 연꽃이 곱게도 잎을 열었다. 하나하나 마을이 변해가는 모습에 그는 행복하다.

“너무너무 행복해 잠이 안 온다. 지금 고향 생활에 100% 만족한다.”

매월 첫째 주 월요일은 이장, 노인회장. 부녀회장, 여러 총무. 청년회, 반장이 참여하는 숫골 임원 회의를 개최하는데 좌장이 이장이다. 임원 회의에서는 마을의 안건을 토론하고, 행사 평가 및 설계가 이루어진다.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하고 토론하는 장인데 이 이장은 주축이 된다.

최근에는 말복을 대비한 보양식 행사를 열었다. 동네 사람들이 노인회관에 모여 삼계탕을 해 나눠 먹었는데, 부녀회가 주도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숫골 마을 둘레길


제대 후, 맞춤복으로 사업 시작… 조경사업까지 한 시대를 지나왔다

20대, 군 제대할 무렵,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대전 역전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야, 너 여기 어쩐 일이냐? 나 저기 의상실에서 일하는데 들어가 볼래?”

처음 방문한 낯선 공간의 그 의상실이 그의 첫 사업이 됐다.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그는 재단도, 의상도 몰랐지만, 공주· 부여 등지로 의상실 매장을 보러 다녔다. 마침 부여에 적당한 점포가 있어 부모님의 도움으로 가게를 열었다. 친구가 미싱사, 재단사를 소개해 줘 일류로 채용했다.

일류기술자에 당시로써는 획기적이고 화려한 인테리어로 의상실은 문을 열자마자 성황을 이뤘다. 의상실은 고객이었던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는 인연까지 이어주었다.

숫골 마을 둘레길


“그 시절 저는 사장으로서, 서울에서 좋은 원단을 구해다 주는 것이 일이었다. 색다르고 희소성 있는 원단을 구해 옷을 만들게 했다. 다른 가계와 차별화를 두고, 고급화 전략을 폈다. 그러니 부가가치가 몇 배나 높아졌다. 3, 4년 하다 보니 맞춤복의 시대가 가고, 점점 기성복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느끼고 의상실을 넘겼다.”

그는 인천으로 가 기성복 대리점 계약을 하고 십여 명이 넘는 직원과 경리를 채용했다. 매출이 크게 성장하며 그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하지만 인생에는 늘 예상치 않은 복병은 있는 법. 대리점이 잘 되자 인근에 경쟁 점포가 생기려 했고 그것을 막기 위해 그는 빚을 내서 무리하게 매장을 확장했다.

그러나, 투자 대비 수익이 그만큼 따라 주지 않았고 그는 결국 부도를 만나고 말았는데, 그의 나이 삼십 중반 때였다. 패션사업 정리 후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종교에 몰입하며 교회에서 건축위원장으로 일했는데 그 계기로 소나무 조경에 관심이 생겼다. 전국을 다니며 좋은 소나무를 구하러 다니며 매매사업을 했고 지금도 공주시에 조경사업체를 두고 있다.

숫골 마을 둘레길


좋은 이웃이 들어와 고향의 공백을 메워줬으면…

“마을 노인들이 일 년에 서너 분 돌아가시는데, 그 공백이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으로 채워졌으면 한다. 시골을 빠져나가기만 하지 들어오지 않아 걱정이다. 젊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생기를 주고 같이 어울리면 좋겠다.”

숫골 마을은 현재 주민등록상 100여 가구로 통계되지만 47여 가구가 실거주한다며 이장으로서 소회를 밝혔다.

“주민들은 정말 찌들어 못살던 시절을 보낸 분들이다. 어머니도 그랬지만 허리가 구십 도로 휘어지도록 일했고 배를 곯았던 세대다. 이제라도 이분들의 삶을 힐링시켜드린다는 마음으로 마을을 가꾼다. 더불어 고향을 떠났던 2세, 3세들이 고향에 돌아오고 싶도록 마을을 돌본다.”

객지에 나가 있는 숫골 마을 젊은이들에게 펜션 제공


도시 사람들은 시골인 친척 집에 가 하룻밤 자기가 그렇다는 말을 할 때가 많다. 어른도 불편하지만, 아이들은 특히, 화장실 문화가 누추하다거나 벌레가 많다고 꺼린다. 그도 그런 점을 익히 알고 방법을 찾고 싶다고 했다.

“‘고향 가면 머물 데가 없습니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동네에 빈집들을 수리해 귀촌 여건을 조성해주려 한다. 이장으로서 귀촌하는 사람이 좋은 이웃이 될지 검증하는 것도 필요하다. 돈 있는 사람들이 와서 놀다만 가면 주민이 될 수 없다. 정말로 좋은 이웃이 들어오면 좋겠다.”

이재오 이장이 가꾼 돌담


숫골 주민은 거의 80대가 넘어 마을은 고령화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이 이장은 도시에서는 70대 노인이라 하겠지만 고향인 숫골에서는 중년이다. 그의 하루는 분주해 잠시라도 손이 놀 사이가 없다. 마을 구석구석 골목에 눈뜨면 자라나는 풀도 매야 하고, 폭우 뒤, 마을 둘레길에 어지러이 떨어진 나뭇가지도 치워야 한다. 하루를 분주히 일하니 밥맛도 좋고 잠도 잘 잔다.

이 이장의 안내를 받아 동네를 한 바퀴 산책했다. 숫골의 골목, 논두렁, 정자… 어느 한 모퉁이도 널브러진 데 없이 단정하고 정결하게 손질돼 있었다. 바지런한 이장과 주민의 손길이 구석구석 지나간 것이 느껴졌다. 조성된 둘레길의 소담함과 소나무군락이 자아내는 우아한 자태 또한 멋스러워 독자들이 시간을 내어 즐겨보길 추천한다.

숫골 마을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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