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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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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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가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강을 처음 보것네
―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다. 사랑이야기쯤이야 친구 것이기도 내 것이 될 수 있겠으나 작가에게 있어 가을 햇볕과 강 즉 불과 물의 근원적 이미지는 서러움으로 한 맺힌 정서다.
타다가 지다가 결국 바다에 이르러 소멸할 생, 그 허망함으로 인해 가을 강에 타는 울음이야말로 더욱 미칠 노릇 아니겠는가.
박재삼(1933~1997)
<춘향이 마음>, <천년의 바람>,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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