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영의 여행이야기] 남설악 최고의 단풍 명소, 흘림골과 주전골에서 가을을 맞이하다

소천 정무영 승인 2022.11.08 15:17 의견 0

남설악은 설악산 국립공원의 남쪽으로 대승령, 귀때기청봉,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설악산 서북 능선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오색을 이어주는 고갯길 한계령을 넘어 동해를 바라보며 약 2km 내려가다 보면 남설악 최고의 단풍 명소인 흘림골과 주전골을 만난다. 한계령 아래 흘림골에서 등선대를 거처 주전골을 지나 오색약수에 이르는 흘림골과 주전골 계곡은 내설악 백담사계곡, 외설악 천불동계곡과 함께 설악산 3대 단풍 명소로 알려져 있다.

흘림골은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 지구의 천상의 화원 곰배령을 품고 있는 점봉산 자락에 있는 계곡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계곡이 길고 숲이 깊어서 항상 날씨가 흐린 듯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번에 재개방되는 흘림골코스는 흘림골탐방지원센터에서 여심폭포 등선대 등선폭포 십이폭포를 거쳐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에 이르는 3.5km의 거리로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흘림골은 1970~80년대 신혼여행의 일번지이자 수학여행의 명소였다고 한다. 빼어난 산세,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폭포를 구경하고 오색약수 체험과 온천을 즐기는 인기관광코스였으나 무분별한 훼손으로 1985년 흘림골 자연휴식년제를 선언했고, 국립공원공단은 폐쇄 기간 탐방로를 정비하고 안전 터널, 낙석 방지망 등을 설치했다. 그 후 20년 만에 열린 흘림골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옛 모습을 회복하여 신혼부부 대신 등산객들의 단풍 명소로 다시 알려졌지만 11년 뒤인 2015년 8월에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17톤 중량의 바위가 떨어져 등산객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다시 탐방로는 폐쇄되었고, 국립공원공단은 위험 구간에 우회로를 만들고 안전 터널, 낙석방지망 등을 곳곳에 설치한 후 7년만인 올해 9월 8일 재개방 하였다. 사고 발생 전 가장 붐빌 때는 하루 1만 명 이상이 찾았는데 재개방하면서부터 하루 5000명으로 탐방객 인원을 제한하는 탐방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설악산 단풍소식이 들려오는 10월 연휴 첫날 아직 단풍철이 이른 듯하지만 7년 만의 개방 소식에 흘림골을 찾아왔다. 단풍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는 초입은 나무 계단을 곳곳에 설치해 걷기 편했으며 20분쯤 걸으니 높은 기암절벽을 타고 20m 높이에서 떨어지는 여심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흘림골 초입에 있는 여심폭포는 한때 폭포수를 떠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알려지면서 신혼부부의 필수 방문 코스였으며, 신혼부부가 이 폭포 앞에서 아들 낳기를 빌었다고 한다. 2015년 탐방로 폐쇄 전까지 여심폭포는 독특한 모양 때문에 ‘여성의 깊은 곳을 연상케 한다’는 민망한 안내문이 있었다 하는데, 새 안내판에는 ‘바위와 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여심폭포라고 한다’고 바뀌어 있다.

여심폭포를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등선대 입구까지 300m에 이르는 구간은 깔딱고개라 부를 정도로 매우 가파르다. 등선대 입구에서 등선대로 오르는 구간이 혼잡하다. 오르는 등산객들과 내려오시는 분들이 한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을 양보하며 신선이 날아올랐다는 등선대로 올라선다. 등선대 암봉으로 이어지는 철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이고 기암절벽으로 무장한 칠형제봉이 나란하고, 찬란한 풍광이 눈이 부시게 반겨준다. 멀리 구름을 이고 있는 대청봉, 그 왼쪽으로 중청 앞으로 끝청이 또렷하고,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있는 한계령과 서북능선 귀떼기청봉과 대승령, 안산까지 내려다보이고, 점봉산 앞으로 양양 송전해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맑은 하늘과 눈앞으로 펼쳐진 설악능선의 마루금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지고 겹쳐지며 동해까지 달려 내려가는 비경에 탐방객 대부분이 하산을 잊은 듯 7년 만에 열린 비경을 눈에 담느라 분주하다. 아쉬움으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등선대에서 내려와 등선폭포로 향하는 길은 듬성듬성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길게 떨어지는 등선폭포를 지나 용소폭포로 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이고, 등선대처럼 입이 쩍 벌어지는 장관은 없어도 기암과 깊은 계곡, 이름 없는 폭포들이 이어진다. 잠시 오르막을 올라 십이폭전망대에 올라서 뒤를 돌아보면 깜짝 놀랄 기암봉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이제 갓 물들어가는 단풍과 어우러져 동양화의 한 폭이다. 전망대를 내려서면 탐방로와 나란히 이어지며 세찬 물소리를 내는 십이폭포와 부서지는 물방울들이 명불허전 설악의 단풍 명소답다.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감탄하기를 여러 번, 흘림골과 주전골이 만나는 용소폭포 삼거리를 지나고 잠시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 쪽으로 올라 이무기의 전설이 있는 옥빛 용소폭포를 만난다.

여기부터는 주전골이다. 주전골은 승려를 가장한 도둑 무리가 위조 엽전을 만들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주전바위가 마치 엽전을 시루떡처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용소폭포에서 오색약수까지 3.2km에 이르는 탐방로는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져 있고, 남녀노소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데크길이다. 탐방로는 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길을 오가며 이어진다. 계곡 좌우로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 병풍처럼 이어져 있는데, 마치 계곡이 오랜 세월 동안 거친 암반을 깎아내며 물이 흘러내린 듯 계곡 암반과 기암절벽이 이어진 모습이 독특하다. 거대한 암석이 차례차례 포개지며 그 사이로 물줄기를 쏟아내는 풍경도 압권이다. 계곡 사이로 우뚝 솟은 독주암, 넓은 소를 이루는 선녀탕 등 주전골의 비경이 차례로 이어지며 성국사에 이른다. 성국사는 오색약수라는 이름을 짓게 한 오색석사다. 다섯 가지 빛깔의 꽃이 피어나는 나무는 없지만, 신라 시대의 삼층석탑과 돌사자, 돌계단이 되어버린 옛 석물 등 옛 사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성국사를 지나 주전골을 빠져나오면 철분이 함유되어 있어 쌉싸래한 맛이 독특한 오색약수를 맛볼 수 있다. 오색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흘림골과 주전골 가을맞이를 마무리한다.

흘림골과 주전골을 즐기는 코스는 흘림골 입구에서 등선대까지는 오르막길, 등선대에서 용소폭포까지는 내리막길, 용소폭포에서 오색약수까지는 평탄한 길이다. 흘림골에서 등선대와 용소폭포를 거쳐 주전골까지 완주하는 코스는 총 6.6km로 네다섯 시간 정도 소요된다. 체력이 허락한다면 흘림골과 주전골을 동시에 즐기는 완주 코스를 적극 추천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흘림골과 주전골을 따로 가도 된다. 흘림골은 흘림골탐방지원센터에서 등선대까지 왕복 2.4km로 약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정도면 다녀올 수 있고, 주전골은 오색약수에서 용소폭포까지 왕복 6.4km로 약 두 시간 반 정도에 즐길 수 있다.

■ 추천코스

○ 흘림골 주전골 코스(6.6km, 4~5시간)

흘림골탐방지원센터 → 여심폭포 → 등선대 → 용소폭포 → 독주암 → 오색약수 → 오색탐방지원센터

○ 흘림골 코스(2.4km, 2시간 30분)

흘림골탐방지원센터 → 여심폭포 → 등선대삼거리 → 등선대 왕복

○ 주전골 코스(6.4km, 2시간 30분)

오색탐방지원센터 → 오색약수 → 성국사 → 선녀탕 → 독주암 → 용소폭포 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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