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들의 노조위원장, ‘바른 먹거리 전도사’ 사장님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가족같이 따듯한 회사… 바른 먹거리 제공해 소비자 권리 지켜주고 싶다

정여림 작가 승인 2022.12.08 15:42 | 최종 수정 2022.12.28 13:55 의견 0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40대 초에 만났던 위기가 없었다면, 나는 잘난 척하며 다른 사람 우습게 알고 어리석게 살지 않았을까 싶다. 수많은 고난을 걸어왔기에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의미를 찾으며 살게 된 것 같다.”

살다 보면 사람들은 크고 작은 위기 앞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신 사장의 회고를 듣다 보니 ‘위기’라는 상황은 어쩌면 흔쾌히 가슴 열어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싶다. 그의 말속에 위기 이면에 선명히 숨어 있는 ‘기회’라는 밝은 빛의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문어발식 사업의 확장보다는 ‘바른 먹거리’를 제공해 소비자 권리를 지켜주고 싶다는 신 사장. 그는 진정성 있는 식품 연구와 올곧은 기업 운영 신조, 한결같은 사회공헌 활동으로 지역의 진정한 맏며느리를 넘어 ‘종부’ 역할을 해왔다. 또한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자의 모습과 올바른 먹거리를 향한 오랜 연구자의 기질도 가지고 있었다.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경실련 수상

(주)장충동왕족발과 신신자 사장

경남 거창 출신. 결혼 후 평탄한 생활을 겪다 40대 초반에 사업상 큰 위기를 맞았다. 궁여지책으로 돌파구를 찾게 됐다. 동생이 해오던 장충동왕족발 체인점을 보아왔기에 그도 부산시 동래구에 내려가 이 체인점을 열었다. ‘고객 최우선주의’라는 기치를 걸어 특유의 섬세함과 배려로 이 체인점은 가성비 높고 질 좋은 제품으로 전국 1등 매장으로 자리매김한다. 체인점을 연 지 5~6년 즈음, 그녀 나이 48세에 어려운 처지에 놓인 본사를 인수하는 기염을 토한다. 일개 체인점주였던 그가 본사를 인수해 세간에 큰 화재가 됐다.

대전 은행동에서 처음 시작된 (주)장충동왕족발은 창업 37주년이 됐으며, 2001년 신 사장이 인수한 이후 꾸준한 도약으로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현재 이 회사는 전국을 아우르는 물류 네트워크와 180여 개의 전국 체인점을 보유한 동종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특유의 담백한 제품력으로 믿고 찾는 브랜드 파워와 유명세를 떨치고 있으며, 유사 상표까지 등장할 만큼 인기다.

(주)장충동왕족발은 체인점과 직원, 사회와 상생하는 착한 기업으로도 이름 높다. 매출 수익의 30% 이상을 직원들의 인센티브로 지원하며, 수익의 10%는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신 사장의 의지는 꾸준하다. 매년 지역의 각개 각처로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이 기업의 선행 소식은 멈추지 않아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Ⅰ. 위기는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1. 신 사장의 인생은 사십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유복했던 일상에 찾아온 위기에서 장충동왕족발과 만나다

결혼하고는 삶이 순조로웠다. 대전의 노른자위 은행동에 건물을 소유하고 임대료를 받으며 신혼시기를 유복하게 지냈다. 대전 중구 은행동에서 ‘해밀’이라는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나름 성공하여 감사한 인연도 만나 입점해 있던 건물을 매입하는 운도 따라줬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나 했는데 40대 초에 인생의 위기를 만났다.

부도가 나 모든 재산이 압류당해 수습하는 과정이 지치고 힘들었다. 우리 건물의 임대 세입자들에게 “나 아직 젊고, 꼭 재기할 것이니 여러분들에게 피해를 절대 주지 않겠다.”고 진심으로 협조를 구하니 고맙게도 세입자들이 믿고 기다려 주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고 대학생이던 시절이라 애들 교육은 어떻게 하든 시켜야 했다.

이를 극복해 보자 호구지책으로 발버둥 치는 과정의 선택이 오히려 패착으로 이어져 세금이 가중돼 빚이 더 늘어났다. 그때 깨달았다. ‘얕은 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하면 안 된다.’는 것. 그 교훈은 사업을 하는 내내 나의 평생 지침이 돼 항상 바른길을 걸으려 했다.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2. 장충동왕족발 동래 체인점 인기, 대기인원은 옆 다방에서 차 마시며 기다리게 안내했다… 고객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통했다

저는 회사경영 보다 장사가 맞는 것 같다. 장사,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좋은 물건 싸게 판다는 간단한 원리다. 가성비 좋고 품질 좋고 친절하면 된다. 너무 간단하다. 기본에 충실하고 고객 감동만 되면 무조건 되게 돼 있다.

사업 위기에서 재기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준비했다. 남동생이 장충동왕족발 은행점을 하고 있어 그것이 인연이 되었다. 1997년도 IMF 오기 직전, 그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던 시기다. 내가 42세 무렵 족발 골목이 밀집돼 있던 부산 동래구에 내려가 체인점을 시작했는데, 내 가게는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가게가 인기를 끌자 대기인원이 생겼다. 나는 가게 앞에서 기다리는 고객들을 줄 세우지 않았다.

가게 옆에 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으로 대기 고객을 안내했다. “차를 마시고 계시다가 매장 좌석이 비면 저희가 다시 안내하겠다.”고 했다. 내 가게를 찾은 고객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찻값은 당연히 내가 냈다. 손님을 가게 앞에서 서서 기다리게 하는 것은 고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요즘은 맛집으로 이름난 곳에는 대부분 손님이 줄서서 기다리는 상황이 생기는데, 고객에 대한 세세한 배려가 없어 보여 안타깝다.

3. 본사 인수 초기, 정신적 압박 심해 동분서주 견문 넓히려 애썼다

동래 체인점이 대성공을 거두던 차에 본사가 세무조사를 받게 되면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마침 압류됐던 건물도 해제돼 자금이 마련돼 2001년 본사를 인수하게 됐다. 본사 인수 초기에는 자금도 어렵고 경험도 많지 않아 정신적 압박을 굉장히 많이 받고 힘들었다. 그래서 이를 돌파하려면 사업가적 견문을 보다 넓히고, 여러 경험을 할 수밖에 없겠다고 느꼈다. 동래 체인점을 성공시켰지만, 그것은 1개 매장일 뿐이었다. 여러 책임이 따르는 기업을 성공시키는데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때 본사는 100여 개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에 따른 직원들의 존재도 내 어깨를 무겁게 했다.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Ⅱ. 신신자, 내 인생에 특별한 순간 둘

1. ‘더불어 사는 사회’와 그 가치를 깨닫다

일본행 산업시찰단 합류… 평소 좋아하던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 문학관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의 가치, 깨달음 얻어 오늘까지 이어지다

장충동왕족발 본사를 인수한 2001년도. 내 인생에서 나는 그해에 가장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회사를 인수하고 그해 3월, 대전 산업시찰단의 일본행에 나는 합류했다. 여러 곳을 쫓아다니며 정보를 접하고 배우려 나는 동분서주하던 시절이었다.

시찰단 일정 중 하루 전체는 골프 일정이 있었지만 나는 골프를 칠 줄 모르니 혼자 남아 일본의 어디서 하루를 보낼까 고민하던 중 삿뽀로의 ‘미우라 아야꼬 문학관’이 1시간여만 이동하면 갈 수 있다고 하기에 골랐다.

평소 미우라 아야꼬 소설을 좋아해서다. 그때 그곳을 방문한 걸 나는 지금도 너무나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인생에는 사람이 한 번씩 변화되는 계기나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그 문학관에서 나는 내 가치관이 한순간에 바뀌는 ‘찬스’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미우라 아야꼬는 초등 교사였는데 폐결핵에 걸려 교사를 그만두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됐다. 그러던 차에 너무 무료해 어떤 사람과 펜팔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녀는 상대가 당연히 여성인줄 알았다. 어느 날 그녀를 찾아온 상대는 남자였고 둘은 운명처럼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 결혼으로 삶의 의욕이 생겼고 둘은 생계를 위해 조그마한 잡화점을 열었다. 두 사람의 생활비만 충당하면 되니 둘은 욕심 부리지 않고 좋은 제품을 싸게 팔았다.

누차 말하지만, 여기에 장사의 만고의 진리가 있다. 장사의 원리다. 이들의 장사가 아주 잘됐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우리 가게가 장사가 너무 잘되니 인근의 다른 가게가 피해를 본다. 그들은 자식이 있으니 교육도 시켜야 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우리, 가게를 조금 줄이면 어떨까?” 그리하여 둘은 다른 상인들을 배려해 장사품목을 줄이고 영업시간도 줄였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 없이, 오로지 한 가지 브랜드… 정직한 외길

나는 미우라 아야꼬가 동종업계 사람들을 배려하는 그 대목에 주목했다.

‘더불어 사는 사회’, 그 가치를 깨달았다. 이후 미우라 아야꼬는 영업시간을 줄여 시간이 남아도니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그 책이 그 유명한 소설 ‘빙점’이다. 나는 지금도 대학에서 일본학 공부를 하고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이 무척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부터 내 사업가적 신조가 생겼다. ‘다른 기업이 먼저 개발해 유통시키는 제품을 내 회사에서 그대로 모방하지 않겠다.’ 다양한 아이템을 만들고 사업화할 수 있지만, 먼저 개발한 기업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 없이 우리 회사는 한 가지, 고유브랜드만으로 정직하게, 외길로 지금까지 왔다.

나는 회사를 크게 확장하고 싶은 욕심은 없다. 고객들에게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욕만 있을 뿐이다. 몸에 해로운 지방을 빼고,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은 그런 식품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주)장충동왕족발

2. ‘바른 먹거리의 길을 걷겠다!’ 소비자 권리를 지키는 사업가

매출 욕심보다 올바른 먹거리에 욕심을 내는 나는 달갑지 않은 사장, “사장님이 떠나야 회사를 키운다?”

보통 기업의 덕목이라 하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제품에 이것저것 첨가물을 집어넣어 맛있게 만들고 매출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제품에 식품 첨가물을 자꾸 빼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했다.

사실, 내가 계속 바른 먹거리를 주장하니까 직원들도 “사장님이 떠나야 회사를 키운다.”라는 농담을 한다. 욕심내서 회사를 키우려면 바른 먹거리와는 멀어진다. 요즘 사람들 대다수가 미각중독이 된 상태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면 중독이 돼 다시는 심심한 음식을 먹기 싫어하는 미각중독에 걸려있다.

나는 내 사업이 있으니 주로 식품관련 책을 두루 섭렵해 왔는데, 2002년도에는 존 로빈스의‘음식혁명’이라는 책을 접하며 ‘바른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이 책이 나로 하여금 바른 먹거리에 눈뜨게 했다.

식품 전문가 안병수 작가의 저서 ‘호르몬과 맛있는 것들의 비밀’은 바른 먹거리를 분별하는 시금석이 돼 줬다. 그래서 그의 책 3,000권을 구매해 회사 체인점, 직원과 지인들에게 돌렸으며 2008년도에는 이 작가와 연결돼 우리 회사에 초빙 강연도 자주 열고 있다.

(주)장충동왕족발


“석유에서 추출하는 화학 원료 빙초산, 제품에서 빼는 데 5년 걸렸다.” ‘건강한’ 식품을 섭취하고 싶은 고객의 권리가 우선

제품에서 빙초산을 빼는 데 5년이 걸렸다. 석유가 원료인 화학재료 빙초산은 산도 99%가 넘지만 우리 회사는 소비자 건강을 위해 이를 현미식초로 바꿨다. 현미식초는 산도가 10%에도 못 미치다 보니 연구자들이 배합 비율 맞추기가 난해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나는 직원들을 독려했다. “우리는 해내야 한다. 하자, 하자! 수출하려면 빙초산을 빼내야 한다.” 사업을 하는 과정 과정이 매번 배움의 과정이고 도전의 연속이더라.

바른 먹거리를 항상 연구하다 보니 누가 좋은 비법이 있더라고 전하면 나는 장소를 불문하고 쫓아가 만나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 산 속에 숨어 지내는 지리산 도사들도 찾아가 친해지게 되더라.

언제나 건강한 식품을 섭취하고 싶은 고객의 권리가 우선이다. 나의 진심이 통해서 우리 회사가 이렇게 건재하고, 동종업계 1위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바른 먹거리의 가치를 한눈에 알려주는 ‘바른 먹거리 종합 타운’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직원 어린이집을 내년부터 개원하는데 이곳에서 직원 자녀들에게도 바른 먹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좋은 먹거리로 우리나라 보험수가를 낮추고 싶고, 좋은 인재도 키우고 싶다.

(주)장충동왕족발


회사 매출 수익의 10%는 기부한다는 그의 신념도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불 나고 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어. 이런 계기로 오히려 사업이 피는 계기가 되리라 봐….”

인터뷰 중 걸려온 전화에 그는 진심의 위로를 보이고 있었다. 업계 동료가 사업체에 화재를 당해 그는 십시일반 모금하는데 앞장섰다. 위로를 건네는 신 회장의 목소리에는 의협심이 가득해 보였고 어려움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품 넓은 인정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처음에 나를 무척 오해하더라. 누가 어렵다고 하면 흘려듣지 못하고 도우려 하니….

지금까지 매출 수익의 10%를 사회에 기부하고 있는데, 내 뇌도 그것에 중독돼 나를 즐겁게 하고 그런 일들을 계속 이어지게 한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 워낙 밥 잘 사고 술 잘사는 사람으로도 소문나 있다. 모든 선행에는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Ⅲ. 남 다른 회사, 남 다른 사장님

사장실에서의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생산 공장 투어를 시작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본사에 위치한 생산 공장에서는 직원들이 마침 김장을 하는 날이라 여러 작업자가 모여 새빨간 김치 양념을 배추에 버무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회사는 김장철이면 전 직원 185명 전원의 김장을 해주고 된장 담는 철이면 된장도 담가준다. 2주 동안 생산라인을 가동해가며 직원들이 직접 회사에서 김장을 하는데, 신 사장은 “직원들이 바쁘니 김장할 시간이 없어 회사에서 20년 전부터 김장을 해준다.”고 했다. 회사는 해마다 회사 직원들은 물론, 주변의 차상위계층에게도 김장김치를 제공하는 선행을 꾸준히 이어왔다.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농식품기업상 수상


1. “직원들이 없으면 회사도 없다. 나 혼자 그 일 다 할 거야?” 사장님은 우리들의 노조위원장! 화기애애한 생산 현장

“아, 오늘 김장 버무리는 날이네요. 맛있게 하세요. 퇴직한 직원들이 김장 도와주러 오겠다며 전화 왔던데, 얘기 못 들었어요?”

“네, 다음 주에 시간 된다 해서 오시라 했어요.”

위생을 위한 모자와 장화, 가운까지 철저하게 차려입고 생산라인을 점검하던 신 사장은 생산 공정마다 지나치며 만나는 직원들에게 친근한 목소리로 관심을 표했다. 퇴직한 직원까지 관계를 꾸준히 이어온다는 이 회사는 직원들끼리도 화기애애하다. “직원들이 없으면 회사도 없다.나 혼자 그 일 다 할 거야?”라며 직원들을 귀히 여긴다. 한편에서 만난 남자 작업직원에게도 신 사장이 먼저 인사한다.

“○○, 김장 해다주면 마누라한테 사랑받겠네?”

입사 15년, 30년으로 회사에서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직원들이 기자에게 사장님을 소개했다.

“저희 사장님은 여러 방면에서 멋쟁이세요. 직원들을 끔찍이도 생각해주시고요….”

”사장님이 여자라서 여자 마음을 잘 이해해 주세요. 사장님을 30년 겪었는데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항상 처음 뵌 그 모습 그대로 따듯하시고 변함이 없으세요.”

“○○아! 너 오랜만이네. 요즘 점심 때 너 못 만났지, 수고해.”

(주)장충동왕족발 김장

이 회사는 발달장애를 가진 근로자를 채용해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는데 신 사장의 설명이 있었다.

“장애인 네 명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회사에 들어와 계속 근무 중인데, 돈 벌어 집도 사고 사회적응을 잘하고 있다. 그들은 수시로 내가 챙긴다. 내가 나이 70인데, 살아보니 내가 좋은 씨앗을 뿌리면 그 결실이 모두 다시 나한테 돌아오더라.”

신 사장은 요즘 현대인들은 과다한 인스턴트식품에 노출돼 감정의 기복이 크다며 직원들을 위한 좋은 먹거리 교육을 자주 연다.

“우리 직원들은 좋은 먹거리 교육을 자주 받아보니 스스로 좋은 먹거리를 찾아 먹게 된다. 먹는 것이 내 뇌와 몸을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자연식 바른 먹거리를 먹으려 노력한다. 그러니 회사에서도 서로서로 부드럽게 대하고 관계도 따뜻해 회사 분위기가 정겨운 면이 있다.”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연탄나르기 봉사


2. “사람이 먹는 음식, 반도체보다 더 우위 아니에요?” 철저한 위생관리와 품질관리

생산 현장에는 내부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치인 항온항습기가 작업장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공장 내부에 제품을 삶는 솥단지가 70여 개인데 그곳에서 김이 나오면 공장 내부에 응결수가 맺혀 미생물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 김을 외부로 빼내는 시스템을 작동하고 있는데 공장의 지붕으로는 김이 무럭무럭 올라와 하늘을 오르고 있었다.

“원래 반도체공장에 설치되는 장치인데 나는 반도체보다 사람이 먹는 우리 제품이 더 위라 생각해 설치했다. 반도체보다 우리 제품이 우위 아닌가?”

족발과 곁들여 필수적으로 제공되는 동치미 공장의 숙성고에는 무 150톤 분량이 동치미로 담가져 저장되는데, 1년 365일 일정한 온도 조절로 유지돼 선입선출로 출고된다.

공장은 원재료 생산에서 소비자 섭취까지 위해요소 혼입 및 오염을 방지하는 위생관리 시스템인 HACCP인증을 받았다. 제품을 위생적으로 생산하고 완비된 콜드체인시스템을 통하여 판매점에 공급된다.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3. 새벽 공부하는 식품기능사 수험생 사장

아침 5시에 기상해 두 시간 공부한다. 잡기에 능하지 않고 취미가 공부하는 것뿐이다. 요즘에는 식품기능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제법 먹었는데, 요즘은 아침 공부에 지장이 있어 줄이고 있다. 사람들 만나서 정보 듣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 지루할 틈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사치 안 하지 골프 안 치지, 무슨 재미로 사냐고 말한다.

(주)장충동왕족발 신신자 대표

체력관리는 틈만 나면 걷는 것으로 하고 있다. 바쁘게 일해도 틈새 시간을 이용해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대접하고 싶은 분을 맞는다.

나는 내 삶을 내가 스스로 선택해 살아왔고 스스로 그 몫을 지탱해 왔다고 생각한다. 원래 70 넘어 일 안 하려 했는데 공장을 대전으로 옮겨야 하는 숙제가 남아 이렇게 머무르고 있다.

신 사장은 경남 거창 출생, ROTC 10기생인 남편을 만나고 연애하다 결혼했다. 7남매 중 장녀로 자랐는데, 작고한 그의 남편도 7남매 중 장남이어서 그는 맏며느리이며 종부였다. 구순의 친정어머니는 지금까지 건재하다.

(주)장충동왕족발에서 운영하는 직원 자녀 유치원(내년 3월 개원 예정)

인터뷰 중 여성 기업인들이 신 사장의 경영철학을 듣고 싶다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중이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신 사장은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며, 다만 아담한 방이 일이 잘되는데 내 공간이 좀 커 방문하시는 분한테 민망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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