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도덕경: 교육의 기본

김형태 박사 승인 2023.01.09 16:30 의견 0

고려대 홍일식 총장은 1학년 전체 교양과목으로 <명심보감>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인간의 기본 생활 덕목으로 명심보감의 계선편(継善篇)에서 염의편(廉義篇)까지 23개 편을 바로 알고 실천하면 군자의 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교육과정도 <동몽선습>, <격몽요결>, <명심보감>, <소학>, <대학>으로 이루어졌기에 국민(인간) 기초교육으로 명심보감만 한 것도 없다. 나도 한남대학교 총장 재직 때 기초교양과목으로 ‘잠언과 채근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노자의 도덕경’ 같은 과목을 개설하여 동·서양의 교양론을 포괄적으로 비교 강의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특히 요즈음 인간으로서의 기본소양이 부족한 젊은이들을 볼 때, 지식과 기능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될 기본소양을 어디서든 가르쳐주어야 할 것으로 본다. 하버드 대학의 Faust 총장도 “교육은 인간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수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고 조선 시대 교육과정도 전공과목으로 文·史·哲, 교양과목으로 詩·書·畵를 가르쳐왔다.

많은 사람이 자주 인용하는 노자의 <도덕경> 제8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다)’는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본인의 좌우명으로 자주 언급했기에 인구에 회자 되는 구절이 되었다.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모든 생활에 이로움(利)을 주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즐겨 처한다. 그런 까닭에 물은 거의 도(道)에 가깝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땅을 선택해야 하며, 마음은 생각이 깊어야 하고, 사귀는 벗은 어진 사람을 골라야 하며, 말은 믿음성이 있어야 좋고, 정치는 잘 다스려져야 좋으며, 일의 처리는 능숙해야 좋고, 행동은 때와 곳에 알맞아야 좋으며, 그렇게 해야만 다툼이 없게 된다. 그런 까닭에 잘못됨이 없게 된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여기서 강조점은 여하튼 다투지 않는 것이 최상의 선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국회의 모습을 볼 때 국회의원 교양 교육으로 노자의 <도덕경>을 가르쳐야 할 것 같다. 국회가 토의(討議)의 장이 아니라 숙론(熟論)의 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 같다.

최재천 교수의 말을 빌리면 熟論(discussion)은 말(言)을 둥글게(侖) 만드는 것으로서 bottom-up(아래에서 위로 통합하는 것) 식이요, 討議(debate)는 말(言)로서 옳고 그름(義)을 따지는 것으로서 top-down(위에서 아래로 명하는 것) 식이라 했다. ‘숙론’은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여 각각의 모난 의견들을 모아 둥글게 다듬어가는 것이요, ‘토의’는 공격하고 비난해 징벌하여 쪼개지고 분열되게 만드는 것이다. 조선 시대부터 편 가르기는 있어 왔다. ‘東人이냐, 西人이냐?’, ‘左人이냐, 右人이냐?’ 따지면서 내 편과 네 편을 갈라서 극렬히 대립하고 죽고 죽였다. 요즘엔 ‘진보냐, 보수냐?’로 갈라져서 나라가 두 동강 날 지경에 이르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표어를 대한민국 국회의 회훈(會訓)으로 정했으면 좋겠다. 난 총장 재직 때 “高樹靡陰, 獨木不林(위로만 크는 나무는 그늘을 만들지 못하고,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後漢書)”를 회의실 표어로 게시했었다. 굳이 편을 나누려면 ‘상식의 편’에 서는 것이 좋다.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다를 수 있다.”는 상식 또한 지켜가야 한다. “어느 편이냐?”고 묻는 말에는 배제와 차별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소리장도(笑裏藏刀) 상대방을 베거나 찌르려는 자세다. 그러나 어느 편에 서려고 하지 말고 상식(common sense)의 편에 서도록 하자. ‘나’의 영역을 조정하고 ‘너’의 영역도 다듬어서 ‘우리’의 영역을 넓혀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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