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구술자서전 출판 기념식’ 개최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 전환 계기 마련’ 평가

김경희 작가 승인 2023.01.11 16:40 의견 0
홍양희 회장과 김경희 작가

(사)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사실모)은 존엄사라는 인식을 상식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당기는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모임의 홍양희 공동대표는 오래전 시민운동을 통해서 연명치료 거부 운동을 전개해 왔다.

2016년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고 2018년 실행이 되면서 사실모도 그 맥을 같이 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스스로 죽음의 의향을 미리 결정하고 채비를 한 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여정에 길잡이가 되어주는 ‘웰다잉’의 가교다.

출판기념회

죽음은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되고 인생 최악의 순간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자는 의식이 확산될 때도 다들 주저했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견고해서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화두가 되었다.

2009년 세브란스 병원 김 할머니 사건 이후로 우리는 존엄사라는 화두를 숙제로 부여받았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철저히 무시된 처참하기까지 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80대의 구술자

사실모에서는 19세부터 대상자를 받고 있지만 아직은 노년층을 중심으로 의향서가 작성되고 있다. 상담사들은 어르신들을 상대로 의향서 작성을 위한 상담을 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채록하게 되었다. 이야기 속에 쏟아진 수많은 인생사들을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구술자와 구술작가

사실모는 2019년부터 매년 그 사연들을 모아 자서전을 발간했다. 2019년 40인의 생애구술사 <감사의 꽃으로 피어난 내 인생>으로 시작해 2020년 <뒷모습이 아름다움 사람들>과 지난해 <세월이 쌓이니 인생이더라> 발간에 이어 올해는 <모든 삶은 경이롭다>라는 네 번째 구술자서전을 출간했다.

구술자의 소감 발표

2022년 12월 9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보문동 법인 교육장에서 ‘모든 삶은 경이롭다’라는 타이틀로 4번째 출판기념식을 가졌다.

이번 제4집 <30인의 생애구술자서전>에는 각양각색의 인생들, 월남한 여인의 운명, 시각장애인의 삶, 파독광부의 애환, 마도로스가 부르는 질곡의 인생사 등 30인 30색의 인생사가 263페이지 안에 담겼다.

사실모의 홍양희 회장

이번 네 번째 구술자서전에 실린 총 30여 편의 이야기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김모 씨는 인터뷰에서 “평범한 인생을 이렇게 글로 엮어놓으니 지난날들이 새삼 다시 떠오릅니다.”라며 “제 자식들이 시간이 흐르면 이 책을 통해 저를 기억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작업에 참여한 한 구술작가는 “저를 낳아 키워주신 친정어머니의 자서전을 쓰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같은 여자의 눈으로 살펴보니 지난 시절 어머니의 삶은 무척 힘겨운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의연한 모습을 뵈니 매사에 엄살을 부리는 제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좀 더 일찍 자서전을 써드렸다면 좋았을 텐데 요즘 부쩍 기억을 잃어 가시는 모습이 많이 아쉽습니다.”라며 어머니의 삶에 너무 늦게 귀 기울이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자서전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은 아직도 낯설다.

80년 세월을 어르신 혼자 기억해내는 건 힘들다. 누군가 추억의 단추를 눌러주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마중물이 되어 옹달샘에 물이 고이듯 지난 기억과 추억의 물이 차오르게 된다.

관련해 한 구술자는 “나의 인생을 독백이 아닌 방백으로 풀어내는 시간이 부끄럽지 않고 행복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후련하고 내 인생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이가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감사합니다.”라며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자리가 마냥 감사하고 따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상담후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중

한 구술작가는 이와 관련해 “간간이 눈을 지그시 감고 과거를 회상하시는 어르신의 날숨과 호흡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가져오는 울림에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사람의 노인이 죽는다는 것은 도서관 한 채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주는 힘을 의미합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근 현대사의 무대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역사가 기억해주지 않았던 무명인의 인생을 기록하는 (사)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4년 전 시작돼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사실모의 구술자서전 출판과 기념식 행사는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사실모의 도전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며 2023년 사실모의 다섯 번째 구술자서전에는 어떤 추억들이 화석처럼 견고한 성으로 쌓일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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