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삼영기계(주) 한국현 사장―인력난에 시달리는 제조업, 3D프린팅으로 혁신하다

과학기술인이 제조업계 경영자로 거듭나 종횡무진 펼치는 활약상

정여림 작가 승인 2023.02.07 15:07 | 최종 수정 2023.02.07 15:09 의견 0
삼영기계(주) 한국현 사장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 선정기업인 충남 공주의 삼영기계(주) 한국현 사장. KAIST에서 로봇과 인공지능 분야 박사 학위 취득 후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을 거쳐 2013년에는 삼영기계를 설립한 선친의 꿈인 ‘삼영기계를 100년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이 기업에 입사했다.

그는 삼영기계에서 국내 최초로 3D프린팅 융·복합 기술 및 하이브리드 주조공정을 개발해 주조업계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해 왔다. 과학기술인 출신 그의 창의성과 열정적 리더십은 특유의 빛을 발해 지난해에는 ‘한국공학한림원’ 선정 한국산업기술 성과 19선에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삼영기계가 그 이름을 올렸다. 위기를 맞은 제조업계에 혁신적이고 젊은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 사장을 만나봤다.

삼영기계에서 생산 중인 철도용 엔진 파워어샘블리 유닛에 대해 설명중인 한국현 사장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삼영기계(주)는 1975년 한금태 대표가 창업해 선박, 철도 등 국가 기간산업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건재해온 부품기업이다. 최근 삼영기계(주)는 국내 최초로 ‘바인더 분사방식 샌드3D프린터’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중속 엔진 핵심 부품설계 및 제조에 3D프린팅 기술을 접목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성과 뒤에는 강소기업 2세대로 가업을 이어 기업을 혁신하며 제조업계에 신기술의 물꼬를 대고 있는 한국현 사장이 있었다.

◆ 3D프린팅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

3차원의 데이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이 기술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3D프린팅은 원재료를 매우 얇게 한 층씩 쌓아 올려 제품의 형상을 제조하는 원리다.

삼영기계가 국내 최초로 출시한 바인더 분사 방식 샌드3D프린터

스마트제조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이 기술은 자동화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복잡한 형상을 갖는 제품의 제조공정을 디지털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다. 3D프린팅이 가능한 소재도 플라스틱, 금속, 모래, 세라믹, 석고, 콘크리트, 고무, 탄소, 나무, 바이오 소재, 식용재료까지 확장돼, 자동차, 기계, 조선, 철도, 발전, 방산, 우주항공, 제조산업을 포함, 건축, 게임, 콘텐츠, 조형물, 문화예술, 문화재, 화장품, 바이오, 푸드, 패션 등으로 그 적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이 기술은 현재 다양한 산업에서 사례발굴과 적용, 검증 단계를 지나 양산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 우리가 3D프린팅 기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한 형상의 제품모델을 디지털 3D모델로 변경만 하면, 동일한 설비·제조공정에서 자유롭게 생산할 수 있는 유연생산이 가능하다. 복잡한 목·금형작업의 틀 제작 없이 3D프린팅만으로 형상의 제한이나 한계 없이 제작할 수 있는 그야말로 혁신 기술이다. 제품의 일체화 및 경량화로 부가가치를 극대화 시키며, 부자재 등의 쓰레기 배출이 매우 적어 친환경성 또한 크게 늘인다.

3D프린팅 기술의 중요성을 설명중인 한국현 사장

초기 투자비용 및 제작 시간이 크게 필요 없고, 기존 제조 방식으로는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제품 형상을 아무런 제약 없이 만들어 낼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다품종 및 개인 맞춤형 생산 대응에 현존하는 제조 기술 중 최적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또, 3D프린팅은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1년간 집계한 연평균 시장의 성장률을 보면 24.9%로 매우 높다. 향후 2030년 시장 규모는 150조 원으로 예상된다.

◆ 전 세계적인 성장세를 타고 있는 기술인데 현재 국내 3D프린팅 산업의 현실은?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3D프린팅 산업이지만, 국내 성장은 더디다. 소품종 대량 생산 위주의 양산(量産) 중심 국내 제조산업의 특성상, 국내 제조업계에서는 3D프린팅으로 시제품 개발에 국한해 양산품 생산으로 연결은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또한, 제조업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기반기술 역량과 부가가치창출 역량 부족도 느린 성장세의 원인이다. 제품의 설계단계에 혁신기술인 3D프린팅이 반영돼야 이 기술의 강점이 극대화되는데, 3D프린팅이 고난도 기술영역이라, 국내에서 기본 설계 진행에는 아직 드물게 적용돼 안타깝다.

샌드3D프린팅 몰드로 제작한 제품 사례

양산(量産)품 생산에 3D프린팅 기술을 적용하려면, 공정기술 솔루션을 개발해야 하는데 관련 핵심 장비와 소재, 소프트웨어 등을 아직은 주로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쉽지 않다. 국내 3D프린팅 산업은 소재대응의 한계, 출력속도 및 크기의 한계, 고비용으로 인한 생산원가 상승 문제, 양산공정기술 개발·투자 부재 등으로 3D프린팅 산업 발전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점차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솔루션이 증가하고 있어 근시일 내에 3D프린팅 산업이 제조업의 한 축이 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측가능하다.

◆ 정부가 지정한 6대 뿌리 기술에 3D프린팅 기술도 추가됐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최근 정부는 ‘뿌리 4.0 경쟁력 강화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며 기존의 6대 뿌리기술에 3D프린팅 기술 등을 추가해 14대 뿌리기술로 확장했는데 이 기술의 다양한 활용이 필요하다. 제조업에서 최종제품을 3D프린팅할 수도 있지만, 최종제품 제작 과정 중에도 3D프린팅을 활용하는 ‘간접 3D프린팅’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직접 3D프린팅’ 방식의 문제점인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종제품 크기나 생산속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비용 또한 크게 낮추며 기존 공정과의 하이브리드 접근을 통해 그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도 있다.

삼영기계의 샌드3D프린팅 몰드를 이용하여 제작한 예술품 콘크리트 조형물

한국현 사장은 누구?

1. 대학시절 로봇사업가를 꿈꿨다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 그의 인생 목표는 로봇사업가였다. 대학 4학년 때 로봇 동아리를 만들고 ‘세계로봇축구대회’에 참여했는데 이 계기로 짧은 시간에 폭발적이고 압축적인 로봇연구에 몰입하고 학습하며 시행착오 또한 한없이 겪었다. 그러한 ‘맨땅에 헤딩’한 시간과 노력이 지금까지도 자신이 성장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며 회상했다. 로봇은 모든 기술의 총집합체라고 설명하는 그는 대학원에서는 최초로 인터넷 기반 퍼스널 로봇 개념을 만들고 연구개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삼영기계의 샌드3D프린팅 몰드를 이용하여 제작한 금속 스마트 노드가 적용된 광교백화점의 비정형 파사드 외관 야경

2. S기업에 입사 국내·외로 활약하던 과학기술인… 실리콘밸리 주재원 시절

삼성전자 근무 중 미국의 MIT 미디어랩에 파견근무를 갔다. 처음, 보스턴에 가서 MIT 미디어랩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을 보고 좀 의아했다. MIT라면 정말 수준 높고, 대단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프로젝트들을 둘러보니 대학생 수준이면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기술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었다. 고민 끝에 MIT 미디어랩을 조금 더 이해해 보기로 결심하고, 30여 개 연구실을 일일이 돌아보며 2주 넘게 교수와 연구원들을 만났다.

이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결과물을 보고 수준이 낮다며 비아냥거리던 내가 얼마나 근시안적이었는지 부끄러웠다. 그곳은 기술을 개발하는 공간이 아니라, 변화되는 세상의 패러다임을 연구하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일이 주안점이었다. 도출된 개념을 설명하면 대중이 막연해하니 그 개념을 이해하도록 간략한 제품으로 만들어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 그들의 기술만 파악하려 했는데 그 결과물의 ‘개념’을 읽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그동안 페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서 눈에 보이는 그들의 기술만 따라잡으려 해,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삼영기계의 샌드3D프린팅 몰드와 금속주조품 실사례 전시물

미국 실리콘벨리에는 5년 주재원으로 나가 건물 리스 계약부터 인재 채용, 전략 수립 등 연구센터 설립 작업을 했다. 2년쯤 되니 100여 명 규모로 인재 확보도 되고 조직이 잘 돌아가 어느새 자신이 시어머니 역할 말고는 할 일이 없음을 느꼈다. 3년여 자립조직을 만들고 국내 복귀를 계획하다 방향을 바꿨다.

항상 ‘나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하는 성격인데 그때 마침 아버지께서 미국에 오셔서 “삼영기계를 100년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말씀하셔서 고심 끝에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부친의 기업을 잘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회사에 참여하게 됐다.

삼영기계의 샌드3D프린팅 몰드로 생산 중인 중속엔진 실린더 헤드 부품

3. 100년 기업 꿈꾸며 삼영기계(주) 중소기업 사장 되다

2013년 삼영기업에 입사하고 접한 전공 분야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엔진부품 설계와 절삭가공, 주조기술은 낯설었다. 조직별로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열어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회사… 주조공장 몇 년 더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주조공장 직원들의 거침없는 우려 섞인 질문에 당황했다.

주조 일은 3D업종으로 작업환경이 거칠어 꺼리는 직업이라 공장에 젊은 사람이 없었다. 심각성을 체감하고 그때부터 고민했다. 회사 설립 이후 40여 년간 선박 및 철도용 엔진 부품만 생산했는데 그 뛰어난 기술력으로 삼영기계는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이었다. 오랜 기간 숙련된 기술과 경험의 결과로 핵심 노하우는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공정인 주조공장의 인력난이 심각했다. 주조공정의 몰드 조립작업은 사람의 수작업이 많이도 들어갔다.

삼영기계의 샌드3D프린팅 몰드로 제작한 창의 디자인 금속 조형물

3D프린팅 융합 양산기술 개발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시작했다.”

삼영기계 합류 후 ‘삼영 비전 TF’를 추진하면서 주조공장 인력난은 샌드3D프린팅 기술로 해결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내부 임직원들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마침 아버지와 함께한 출장길에서 CNN 방송에서 3D프린팅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선친께 기회다 싶어 설명을 드렸고 동의를 얻어 3D프린터를 구입했다. 장비뿐만 아니라 부수적 시설도 필요했다. 큰 투자비로 2014년도 초에 3D프린터는 설치했는데 “이제 뭐 할까요?”라고 직원들이 물었다. 해당 3D프린터가 상용화된 지 몇 년이 채 안 됐고 관련 선도업체가 없다보니 따로 참고할 자료도 없어 난감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시작했다.

불철주야 시행착오 끝에 금속 제품을 만들기 위한 거푸집을 샌드3D프린팅으로 만들어 복잡한 조립을 거치지 않고 일체화시켰다. 이 기술을 대입하니 일손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품질은 높이면서 제조원가도 낮출 수 있었다.

샌드3D프린터 출력물 사례

3D프린팅으로 장비비지니스, AS비지니스 진출… 뿌리산업인 제조공장의 인력난 해소의 가능성 보다

관련해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 R&D 비용을 따려 심사에 임했다. 3D프린팅 사업을 소개하면 심사위원이 “내가 이쪽 전문가로 잘 아는데 ‘상용화’ 말도 안 된다. 중소기업에서 이 비싼 기계를 산 것이 가슴 아프다.”며 아예 무시했다. 국내 최초로 도입한 샌드3D프린팅 방식이라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뒷다리 잡는 격이었다. 굴하지 않고 방법을 찾고 관련 기관을 설득하며 연구개발을 지속하여 설계와 프린팅을 거치며 테스트한 결과 성공 횟수가 올라갔다.

주변에서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졌다. 2년 정도 지나니 ‘이 길이 맞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고 양산과정에 3D프린팅을 점점 더 많이 도입하게 됐다. 양산 적용이 가능한 독자 국산 장비개발을 시작했고 정부 R&D 과제의 정부지원금을 활용했다. “전자회사 근무하던 사람이 3D프린터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겁니까?” 심사위원의 말에 또 다른 벽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다.

3D프린팅으로 장비비즈니스, AS비즈니스의 새로운 사업이 생겼다. 3D프린팅이 우리나라 뿌리산업인 제조공장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봤다. 이후 3D프린팅을 주변에도 확산시키고 싶어 2018년부터 주조공학회에 참여, 10회 연속으로 기술 강연을 했다. 첫 회는 가능성에 대한 의심들이 많았는데 성공 케이스를 반복적으로 보이니 조금씩 받아들였고 코로나 시국에 해외 근로자들이 못 들어오는 인력난이 극에 달하자, 인력난 해결의 실마리로 보고 그때부터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다.

2019년부터 주조공학회 이사, 올해는 부회장이 됐다. 향후 우리나라 주조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일어날 것이고 3D프린팅이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현재 10년째 3D프린팅을 적용·개발하고 있는데 이 기술이 주조산업을 포함한 뿌리산업의 유일한 돌파구라 생각한다.

프린팅 중인 샌드3D프린터 BR-S1100

◆ 기업인으로 바쁜 일정 중에도 과학기술인의 입장에서 지난 1월 <세상을 바꿀 미래기술 12가지>를 발간했는데?

비전문가라도 최첨단 기술과 미래트렌드, 변화하는 다양한 현대사회의 기술을 이해하기 쉽고, 읽기 쉽게 썼다.

세상을 바꿀미래기술 12가지 - 한국현 지음

대중이 이 책으로 기술의 변화와 세상의 발전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통찰할 수 있었으면 한다. 디지털 전환이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인공지능, 서비스로봇, 웨어러블, 메타버스에 대해서 안내하고 4차 산업 혁명과 스마트제조, 3D프린팅, 디지털 트윈 등에 대해서도 설명한 책이라 많은 독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또한 지구를 살리기 위한 탄소 중립과 재생에너지, 탄소 포집·활용·저장, 전기차, UAM 등에 대한 안내, 차세대 컴퓨팅 기술인 양자컴퓨터 이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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