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연속인 사람이 있다. 음성 선플란트 치과의 선지웅 원장. 곱슬거리는 파마머리에 아이돌 같은 외모지만 수더분한 말투는 두려움의 대상인 치과 의사라는 경계의 빗장을 바로 풀어버린다.
서울내기 치과의사가 음성이라는 소도시에 자리를 잡은 지 10년차가 됐다. 군복무로 공중보건의사 하기에 충청도가 좋다고 동기들 20명이 지원, 본인만 합격을 하면서 충청도와 연을 맺었다. 평소 친척들 성대모사를 잘하고 학교에서도 동아리 연합회장을 하면서 나름 무대체질이었는데 공중보건의사 활동하면서도 특유의 너스레가 시골에서 통했다. 시골 어르신들과 여행도 다니며 무늬는 서울내기, 속은 정겨운 치과 삼촌이었다.
충북괴산에서 첫 출발. 멀끔하게 생긴 하얀 얼굴의 서울내기가 가운입고 왔다 갔다 하니 사람들 눈에 띄는 건 당연지사였다. 지금도 은인으로 지내는 올갱이 집 사장님. 아버지 드린다고 올갱이 사러 갔다가 효자소리 들으면서 사장님 눈에 잘 보이는 바람에 사장님이 직접 임상 상대가 되셨다. 뭐든 경험 많은 게 최고라시며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주셨다. 주변 사람을 소개해주시고 28살에 첫 발을 디뎌 42살이 된 지금까지 소중한 인연이다.
■ 음성 롯데리아, 선플란트 치과의 효시
2013년 33살에 선치과를 개업, 올해가 만 10년이 되었다. 서울근교에 개업하라는 유혹도 많았지만 충청도의 매력에 빠진 후라 괴산에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인연은 따로 있었다. 괴산에 롯데리아가 없어서 음성 롯데리아에 왔다가 음성에서 치과 삼촌으로 10년차가 되었다. 인연은 참으로 모호하여 롯데리아가 지금의 선플란트 치과의 효시가 되었다. 치과 병원 건물 1층에 롯데리아가 들어서 있다. 임플란트 시술에 자신이 있어 선 치과에서 선플란트 치과로 병원명을 바꿨다. 소도시라는 여건상 환자 층은 50대 이상 60대가 가장 높은 빈도를 이룬다. 동네 어르신들과도 환자가 아닌 이웃으로 수다를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 치과의 두려움 깨부수기는 병원 식구들의 솔선수범부터
환자들은 다들 치과를 무서워한다. 선플란트의 직원들은 서로 임상에 도전한다. 직접 환자가 되어보고 진료의 방법을 경험하면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같이 테스트에 참여한다. 선원장도 예외일 수 없다. 그도 진료대에 누워 환자의 두려움을 직접 경험하고 통증도 같이 느껴본다. 여섯 명의 직원들이 환자를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효부상을 받은 10년차 실장의 친화력도 병원을 찾는 이들에게 정겨운 코드다. 무통마취기를 사용하면서 환자들에게 통증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준다. 마취가 끝난 후 환자들의
“마취 언제해요?”
라는 물음만으로도 무통마취기는 효자 노릇을 야무지게 하면서 환자들의 두려움을 희석시켜준다. 보통 치과에서 10초 만에 할 마취를 1, 2분 정도 시간을 쓰는 성의를 들여야 하지만 환자의 통증을 떠안고 나누려는 선플란트 치과의 서비스를 환자들이 먼저 알고 있다.
■ 지금의 선플란트 치과는 물길환자들 덕분
선 원장은 맛집과 좋은 병원은 맥락이 같다고 생각한다. 칼국수 맛집도 싸고 맛있고 가격 좋고 청결하면 주차장은 꽉 찬다. 병원이라고 식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객이 우선이다. 선 원장도 합리적인 비용, 덜 아픈 진료, 잘 된 치료를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고객 감동의 AS까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찐 의사로 10년 차가 되었다.
치과의사의 황금기인 40대. 임상 경험도 다수,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 수렴, 이론과 실제 진료를 통한 노하우들이 응축된 시기다. 40대 초반인 선 원장의 든든한 무기가 아닐 수 없다.
10년간 환자수가 두세 배 늘면서 선 원장은 피곤해졌지만 음성의 치과 삼촌으로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간간이 낯선 청년이 진료실을 들어올 때 차트를 보면서 놀라곤 한다.
유치 발치하던 꼬마가 어른이 돼서 병원을 찾은 것이다. 10년이 넘었고 다시 병원을 찾아준 그 청년은 선 원장의 책임감을 배가 시켜 놓았다.
미스터 트롯 방송 이후 “임영웅 닮았다.”는 칭찬을 곧잘 듣고 있다. 그만큼 어르신들이 선 원장을 아끼고 좋아한다는 반증이다.
10년 전 선원장이 33살 청년일 때, 치과 삼촌으로 사춘기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데스크에서 선생님이
“너도 우리 원장님 보러 왔구나. 어디가 아프니?”
물으면 그냥 웃던 여학생들이 30대 아기 엄마가 되었다. 그 시간 속에서 인심을 잃지 않았고 병원의 성장 동력이 된 물길환자들이 감사하다. 물길환자는 물을 길어다주는 환자라는 말로 환자를 모시고 오는 환자들이다.
10년째 같이 일하는 분들부터 모든 병원 식구들이 환자들에게도 친절한 직원으로 인정 받고 있어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물길환자 뿐 아니라 물길직원들 덕분이다.
그 또한 개업하기 전 임플란트를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몇 년 간 주말마다 16시간씩 세미나를 들었고, 전국구 임플란트 고수 원장님들과 억지 인연이라도 만들어서 무작정 쫓아가서 그분들의 손동작 하나하나 다 똑같이 익히려고 노력했다. 낮에는 바지주머니에 니들홀더(실 꿰매는 도구)를 넣어두고 수시로 만지작거렸고, 밤에는 자기 전까지 수술동영상을 보며 머릿속으로 따라하며 잠들었다. 그 결과 개업과 동시에 이미 임플란트에 익숙해진 상태로 자신 있게 수술할 수 있었다. 그도 물길환자, 물길직원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닥터의 역량을 준비하고 개업을 했다.
■ 외고 출신 선원장의 비장의 무기, 언어 장벽을 무너뜨린 절반의 진료
선 원장은 외고 출신이다. 외고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일어와 영어는 기본이다. 소도시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근로자로 일하는 지역이다. 그들이 치과를 찾을 때는 선원장의 외국어 구사 능력이 솜씨 좋은 진료만큼이나 큰 몫을 한다. 이국땅에서 언어가 통하는 의사를 만나는 행운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전달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나면서 이미 절반의 진료가 시작되는 것이다. 누구나 서울로 대도시로 모여드는 때, 소도시를 10년째 굳건하게 지키며 지역 주민들과 이웃이 된 선 원장. 실력 있고 친절한 동네 치과 삼촌으로 소멸돼 가는 지역의 한 축을 받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가 심는 단단한 임플란트와 결을 같이한다. 그가 환자의 치아를 견고하게 심듯 소도시의 일꾼으로도 실력과 재능을 깊이 뿌리내릴 것이다. 그 믿음은 어둠이 내려앉은 음성시내를 환하게 비추는 ‘선플란트 치과’의 불빛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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