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영의 여행이야기] 민족의 영산, 백두대간의 허리 태백산 눈꽃산행

소천 정무영 승인 2023.02.09 15:50 의견 0

해마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다짐, 새로운 출발을 할 때면 기도하듯 찾아가는 곳, 오늘은 설 연휴중 하루를 빌려 태백산 천제단을 찾아간다. 테백산은 해마다 새해맞이 일출산행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운을 받기 위한 단체산행지로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으며, 이맘때쯤 열리는 “태백산 눈축제”가 눈꽃열차 운행과 더불어 눈꽃산행을 유혹하는 곳이다. 올 때마다 많은 눈과 거센 바람이 맞아주며 춥다는 느낌이 선명하다. 일출산행을 할 때면 밤늦게 출발해 새벽 서너 시에 도착하여 해장국 한 그릇으로 허기를 채우고 눈 내리는 산을 오르기를 여러 번이지만 태백산 정상에서 일출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혹독한 추위에 눈바람 맞으며 기원제를 지내고 도망치듯 정상아래 망경사로 내려가 눈보라를 피했던 기억이 먼저 난다. 유일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임도길(2.3km)을 따라 잘 다져진 눈길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며 가파르게 한시간정도 오르면 땀이 날 때쯤 유일사 입구 쉼터에 오르고 여기서 가쁜 숨을 돌리고 왼쪽 산길로 올라서면 여기부터 본격적인 산행이라 할 수 있다.

장군봉까지는 1.4km이고 천제단까지는 300여 미터를 더 가야한다. 유일사 쉼터에서 장군봉아래 주목군락지 까지 가는 1km남짓의 오름길이 상습정체 구간이라 언덕을 넘어 불어오는 살을 에는 바람과 추위를 잘 대비해야 하는 곳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추위와 바람을 견디고 올라온 노력을 보상하듯 백두대간의 조망이 열리고, 주목과 고사목이 눈꽃과 어우러진 멋진 세상을 보여준다. 여기저기 감탄사와 카메라 소리가 요란하다. 올해는 눈이 많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서 천 년, 죽어서도 천 년을 서있다는 주목과 고사목의 자태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평균 2, 300년 된 주목나무 3,8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어 눈을 맞고 바람을 따라 휘어진 모습으로 서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멀리 함백산과 만항재도 조망되고, 하얀 눈을 지고 서있는 소백산도 흐릿하게 보여준다. 예로부터 ‘바람의 산’이라 하면 칼바람으로 유명한 곳이 소백산인데 태백산도 바람하면 못지않은 듯하다. 산 이름에 백(白, 흰 백)자가 들어가는 산은 크고 밝게 빛나는 산이라 하여 ‘하늘의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그 이외의 산에서는 천신이 아니라 ‘산신’에게 제를 지냈다한다. 태백산이 백두산, 소백산과 같이 그 중에 하나인 것이다.

드디어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1,567m)에 올라서면 천제단 중 장군단이 서있고 바람이 격하게 맞이한다. 오늘도 예상대로 바람의 여신은 설 명절도 쉬지 않고 바람을 보내고 있다. 사방으로 백두대간의 산들이 내려다보이고 마음이 뻥 뚫리듯 시원하다. 장군봉 정상석 앞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천왕단으로 달려간다. 천왕단을 앞에 두고 상고대가 없는 아쉬움을 달래주듯 한 무더기의 결빙 상고대가 주렁주렁 보석인 듯 반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바람에 흔들리며 찰랑찰랑 부딪히는 소리도 청아하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천제단 천왕단에 오른다. 장군단보다 훨씬 큰 규모의 천왕단 안에는 ‘한배검’이라고 붉은색으로 쓰인 비석이 서있다. 비석 앞으로 저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정성을 담은 과일, 과자, 생수 등을 올리고 있다. ‘한배검’은 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 한다. 천왕단을 둘러보고 정성스레 합장으로 소원을 빌고 정상을 둘러본다. 늘 바람과 강추위에 떠밀리듯 내려갔는데 오늘은 조금 여유를 부려본다. 천왕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태백산이라 한자로 크게 쓰인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남기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 멀리 함백산, 소백산을 바라보는 사람들 이 모습들이 아름답다. 참 좋다. 하늘과 하나 되어 통하는 느낌이다. 한해의 평안과 안녕을 소망해 본다.

문수봉으로 가는 길이 상고대가 피는 날이면 천상의 눈꽃길이라 하는데 오늘은 바로 당골로 하산로를 정하고 망경사로 내려서자 하산길이 가파르지만 좌우로 빛나는 눈꽃과 앞으로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조망이 환상적이다. 하얀 눈 속에 천제단을 등지고 서있는 망경사도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보인다. 망경사 매점에서 파는 3천 원짜리 컵라면은 추운날씨에 외면하기 힘든 메뉴다. 김이 하얗게 올라오는 컵라면을 들고 들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바람을 피하며, 넘실넘실 이어지는 산그리메에 반해 잠시 추위를 잊고 백두대간과 눈 산의 정취에 취해본다.

여기서부터 당골광장까지는 숲속 눈길을 여유롭게 내려가면 된다. 눈이 예년에 비해서 적긴 하지만 소문난 눈산 답게 양탄자 같은 눈길이 계속 이어져 하산길이 편안하다. 해마다 다른 주제로 조각되는 눈조각이 올해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눈축제 눈조각’이 궁금하여 발걸음이 빨라진다. 당골에 다다르니 눈축제장이 중장비와 눈조각하는 청년들로 분주하다. 올해 눈축제는 ‘이상한 동화나라, 태백마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아직 준비 중이라 눈조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이미 완성된 토끼와 미키마우스 그리고 아기공룡 둘리와 호박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축제장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해인가, 태백산 하산 길에 눈축제장에서 아이처럼 즐거워했던 기억이나 빙그레 웃어본다. 30년째 열리는 ‘태백산 눈축제’는 멋진 눈꽃산행 등반대회도 열리고, 산행을 하지 않아도 눈조각 구경과 이글루 카페, 눈사람 만들기, 전통 팽이치기, 전통 연날리기, 한방차 체험 등이 재미를 더하며 가까이 ‘태백산 석탄박물관’도 볼 수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찾아와 한겨울의 정취를 느껴 볼만하다.

태백산국립공원

태백산은 1989년 5월 13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6년 우리나라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전체면적은 70.052㎢이며 천제단(天祭壇: 중요민속자료 228)이 있는 영봉(1,560m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봉(1,567m 장군단) 동쪽에 문수봉(1,517m), 영봉과 문수봉 사이의 부쇠봉(1,546m 하단)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비교적 산세가 완만해 경관이 빼어나지는 않지만 웅장하고 장중한 맛이 느껴지는 산이다. 산 정상에는 예로부터 수천 년간 제천의식을 지내던 천제단이 있어 매년 개천절에 태백제를 열고 천제를 지낸다. 설악산·오대산·함백산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영산’, 백두대간의 허리로 불린다. 산 정상부의 고산식물과 주목 군락, 6월 초순에 피는 철쭉이 유명하며, 태백산 일출 역시 장관으로 손꼽히고 망경사(望鏡寺) 입구에 있는 용정(龍井)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는 샘물로서 천제의 제사용 물로 쓰인다. 가까이에는 낙동강의 발원지인 함백산 황지(黃池)와 한강의 발원지인 대덕산(1,307m) 검룡소(儉龍沼)가 있으며 야생화 군락지로 금대봉 대덕산과 만항재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인 백천계곡이 산과 함께 태백산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다.

■ 추천 등산 코스

유일사 코스(8km, 4시간 소요)
☞ 유일사탐방지원센터 → 유일사 → 장군봉 → 천제단 → 원점회귀

백단사 코스(8km, 4시간 소요)
☞ 백단사탐방지원센터 → 반재 → 망경사 → 천제단 → 원점회귀

유일사~당골 코스(8.4km, 4시간 30분 소요)
☞ 유일사탐방지원센터 → 유일사 → 장군봉 → 천제단 → 망경사 → 반재 → 당골탐방지원센터

유일사~문수봉~당골 코스(11km, 6시간 소요)
☞ 유일사탐방지원센터 → 유일사 → 장군봉 → 천제단 → 문수봉 → 소문수봉 → 당골탐방지원센터

사길령~당골 코스 (9.1km, 5시간 소요)
☞ 화방재 → 사길령 → 유일사쉼터 → 장군봉 → 천제단 → 망경사 → 반재 → 당골탐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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