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칼럼] 세상이 공정하다는 꿈 깨야

이창기 교수 승인 2023.03.09 16:23 의견 0

요즘 인공지능의 챗봇 경쟁이 치열하다. 그 가운데 언어모델인 ‘GPT-4’ 연내출시 가능성이 커지며 가장 인간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테크업계 관계자들은 “GPT-4는 사용자의 의도를 추론하는데 훨씬 뛰어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생성 AI 서비스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감을 촉발시키고 있다. 반면에 비판의 관점에서 AI가 마치 사람처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피상적으로 베낄 뿐 근본적으로 인간과 같은 사고방식을 갖기 어렵다고 본다. 더구나 AI를 학습시키는 데이터에 인간의 편견과 오류가 담겨있어 AI의 결과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때는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AI 판사시대의 도래를 꿈꾸기도 했었다. 그런데 판결의 선례들이 편견과 오류를 담고 있다면 AI 역시 편견과 오류를 반복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꿈꾸고 정치인들이 공정을 부르짖지만 헛된 꿈이요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지상에서는 공정을 기대하기 힘들고 천상에서나 공정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이 꿈꾸는 사회는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길’ 바란다. 그런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다. 누구는 부잣집에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니 말이다. 그 불공평은 과정과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현대정의론의 대가인 마이클 센델은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하지 않던가? 대부분의 경쟁을 위한 시험이 가장 공정한 잣대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출발부터 특별과외를 받을 기회가 주어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경쟁은 해보나 마나이다. 그나마 필자가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카투사선발시험은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게 아니라 세 등급으로 나누어 그 등급 중에서 선발한다. 다시 말해서 780점대, 800점대, 900점대로 나누어 그 중에서 일정한 점수가 되면 무작위로 선발하는 것이다. 왜냐면 군대도 작은 사회이기 때문에 모두 머리가 좋은 사람만 필요한 게 아니고 몸으로 때워야 하는 운전병이나 취사병은 780점대면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다. 제법 공정을 염두에 둔 장치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이 선발방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무작위로 선발된 것에 대해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스카이대학 선발도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기보다는 일정한 수능점수를 확보한 응시자 중 희망하는 학과를 무작위로 배정하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과열된 입시경쟁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어떤 장치를 세밀하게 설계해도 인간들은 그 결과가 공정하거나 정의롭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면 나에게 유리해야 그 제도를 공정하다고 여기는 이기적 속성 때문이다. 심지어 편견과 불합리로 가득한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기준만이 합리적이라고 착각하는 존재다. 오래된 여론조사이지만 1987년에 중국 남경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개인 보다는 공익이 우선’한다는 여론이 10%, ‘타인이나 공공의 손해가 있어도 자기이익이 우선’ 1%, ‘속으로는 자기이익이 우선, 겉으로는 남의 이익을 고려’ 한다는 여론이 89%였다.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이 조사를 대입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모르면 몰라도 1:10:89, 남이야 손해를 보건 말건 내 이익이 우선인 젊은이가 10%쯤 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 사회로 치닫는 상황에서 공정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나의 이익을 먼저 내어놓기 싫으면 말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불공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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