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영의 여행이야기] 조망 맛집―함양 백운산 지리마루금을 바라보다

소천 정무영 승인 2023.03.10 15:24 의견 0

‘흰구름산’이라고 불리는 백운산은 같은 이름이 전국적으로 무려 30여 곳이나 된다. 그중 해발 1,000m가 넘는 산으로는 정선 백운산(1,426m), 원주 백운산(1,087.1m), 무주 백운산(1,123m), 광양 백운산(1,217.8m) 등이 있다. 이중 함양 백운산(1,279m)은 정선 백운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백운이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산이 바로 함양 백운산(1,279m) 이다. 높이도 준봉인데다 산정에서의 조망도 으뜸이다. 남도의 내로라하는 명산들이 동서남북 어떤 방향에서든 거침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남쪽 스카이라인의 지리산 파노라마는 그리움의 경지를 넘어 차라리 연민이다. 반야봉의 자태는 너무 뚜렷해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북쪽 끝에는 넉넉한 덕유산이 태평스레 앉아 있고 그 너머에 황석, 거망, 월봉산이 줄기를 뻗대고 있다. 금원산, 기백산도 가까이 보이고 동북 방향 멀리로는 가야산, 황매산도 가물거린다.

북서쪽은 전북 장수군 장계면, 남서쪽은 장수군 번암면, 북서와 동쪽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 남으로는 백전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정에 눈과 구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북으로는 육십령(六十嶺 734m)을 거쳐 남덕유산과 이어지고, 남으로는 팔랑치(八良峙 513m)를 거쳐 지리산과 분리되나, 서쪽의 장안산(長安山 1,237m)과는 연속된다. 북쪽의 민주지산(珉周之山, 1,242m), 덕유산(德裕山, 1,614m), 남덕유산(南德裕山1,507m)과 남쪽의 지리산 등과 함께 소백산맥을 이루고 있다.

남쪽 사면은 함양군 백전면으로 남강(南江)의 지류인 위천(渭川)으로 모이고, 백운리에서 함양읍까지의 위천 양안(兩岸)에는 하안단구가 발달해 있다. 백운산에서 육십령까지 소백산맥의 주능선이 남북방향으로 연속되고 있어서 북쪽은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으로 나누어진다. 동쪽 사면은 함양군 서상면으로 남강의 지류인 남계천(濫溪川)으로 모이고, 서쪽 사면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蓼川)으로 모여 소백산맥이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 된다. 남계천의 양안에는 안의까지 하안단구가 발달해 있다. 안의에서 송계까지의 남계천은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어울려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는데 일명 화림동(花林洞)이라고 한다. 이 계곡에는 유서 깊은 정자들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운동을 일으킨 박명부(朴明榑)가 머물렀던 농월정(弄月亭)과 전시서(全時敍)가 머물렀던 거연정(居然亭) 등이 있다.

봄이 되면 벚꽃 축제가 열리는데 백전면 벚꽃 50리 길은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재일 거류민단장 박병헌이 1970년대에 기증하였으며, 경상남도 함양군은 기증받은 수백 그루의 벚나무를 수동면에서 백전면까지 20여km에 걸쳐 심었다. 벚나무가 50여 년 동안 자라서 50리에 달하는 장관을 연출하게 되었으며, 매년 봄이 되면 수많은 관광객과 지역민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봄철 백운산에서 남동쪽 괘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뒤덮는 철쭉 군락은 일명 ‘대방철쭉’이라는 이름으로 함양팔경에 든다. 함양군 군꽃(郡花)이 철쭉이다. 이외에도 여름철에는 큰골의 용소폭포 일원은 짙은 녹음 아래 더위를 잊게 하는 장소로 인기 있다. 가을에는 온 산을 울긋불긋 수놓는 단풍 군락이 볼 만하다. 겨울철에는 온 산을 백설의 세계로 만드는 설경도 일품이다.

무룡고개에서 장안산에 올랐다 내려와 다시 영취산을 시작으로 백두대간길을 따라 함양 백운산까지 다녀올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무룡고개에 도착하니 지난밤 눈이 내려 있어서 무리한 거리를 포기하고 백운산 원점회귀 코스를 타기로 하고 함양 백운산 남쪽마을 대방마을로 달려간다. 다행히 산 아래 마을은 눈길은 아니라 편안하게 등산을 시작한다. 아마도 이번 겨울 마지막 눈 산행일 듯하다. 백운교를 출발하여 임도길을 따라 오르면 제일의 명당으로 치는 터에 자리 잡았다는 고찰 묵계암(默溪庵)을 먼저 만난다. “백운산 푸른 하늘 물소리 고요하고 흰 구름 한가롭게 태고의 신비로움 가득히 머금은 맑은 바람 향기로운 산사의 풍경소리 달은 밝고 밝아 푸른 산 비추이네.” 묵계암 이정석에 새겨진 시구에 잠시 숨을 돌린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6~700m를 더 오르면 신라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수도했었다는 상연대(上蓮臺)에 오른다. 상연대 돌담에 기대어 눈을 들어 바라보면 지리연봉 마루금이 넋을 빼앗아간다. 넘실넘실 운해위로 두둥실 떠있는 지리 주능선의 모습이 경이롭다. 한참을 바라보다 가파른 길을 오르면 바로 끝봉을 지나 중봉에 다다른다. 여기는 아직도 한겨울 눈 세상이다. 생각보다 깊이 쌓여진 눈길을 따라 오르면 바로 정상이다. 동서남북 어느 곳을 바라봐도 시원하다. 온 세상을 다 내려다보는 듯,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듯 세상이 내려다보인다. 백운의 진가를 보여준다. 지리 능선을 감탄하며 간식을 먹고 서래봉 용소 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서래봉 가는 길은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듯 눈길이 더 깊다. 서래봉 못미처 용소쪽으로 발길을 내려딛는다. 험한 눈길이 조금은 무섭기도 하지만 지리연봉과 함께하는 올해 마지막 눈길이라 발걸음은 가볍다. 눈이 아직도 많지만 봄이 가까이 온 듯 얼음은 녹아 용소의 물내림은 장쾌하다. 용소를 내려와 백운암을 지나고 석장승을 지나면서부터는 하산길이 착하다. 기분 좋게 콧노래 부르며 백운교로 돌아와 멋진 백운산 눈 산행을 마무리 한다.

최치원 어머니의 기도처 - 상연대

상연대는 신라 말 경애왕 1년(924년)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의 어머니가 기도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 고운의 어머니가 관음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기도처 이름을 ‘상연’이라 불렀다는 설이 전해진다. 상연대는 창건 후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선문(實相禪門)의 마지막 보루로 이곳에서는 역대 고승들이 수도 정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웅전을 대신하는 원통보전(圓通寶殿) 앞마당에서는 남쪽 V자로 패어 나간 미끼골 사이로 지리산 능선이 조망된다. 산책과 등산을 겸하며 여름에는 피서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백운산 가을 단풍의 절경을 완상할 수 있는 곳이다. 원통보전 왼쪽에 상연대 현판이 붙은 요사채가 있다. 요사채 앞 계단 아래에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석간수인 관음약수가 있다.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로 전통 사찰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농일치에 의한 선농불교를 제창한 곳 - 화과원

화과원(華果院)은 백용성(白龍城·1864~1940) 조사가 선농일치(禪農一致)에 의한 선농불교를 제창한 곳이다. 그는 3·1운동 때에는 33인의 민족대표로 기미독립선언서에 불교계를 대표해 한용운 선생과 함께 서명했다. 화과원 설립은 3·1운동으로 인해 3년간의 옥살이를 한 다음 일제의 수탈이 극심하던 1925년 대각교를 창설하면서부터다. 용성 조사는 무엇보다 승가 본연의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특히 사원 경제의 자립을 꾀하면서 스님들 스스로가 농사를 지으며 수행해야 한다는 뜻에서 1927년 백운산 후미진 산속에다 유실수를 심고 텃밭을 일구며 손수 호미를 들었다. 그는 또 화엄경 80권을 한글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식과 염불을 우리말로 집전하는 등 일찍부터 불교에 개혁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만주 용정에도 같은 이름의 화과원을 설립했다. 선사는 이곳을 거점으로 독립군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용성 조사는 16세 때 해인사로 출가했다. 선사의 법명은 진종(震鍾)이고, 용성은 법호(法號)다. 선사는 76세 때 입적했는데 금색 사리 1과(果)가 나왔다고 한다. 그의 사리탑은 해인사 용탑선원 옆에 서 있다.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는 용성 조사의 생가인 죽림정사가 있다. 화과원에는 현재 법당과 선방 외에 9개소에 달하는 건물터 석축들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당시 심었던 배나무, 밤나무, 감나무 등이 남아 있다(도기념물 제2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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