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윤승원 고백 수필] “백혈병 아내가 살아났습니다.”

― 아내의 투병 일기 고백서
― 신비의 명약 <불로유(不老乳)>에 대한 확고한 믿음

윤승원 수필문학인 승인 2023.03.10 15:30 의견 0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한 가정의 아내가 몸이 아프면 남편의 생활은 어떨까요? 아내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온종일 누워있으면 남편의 심정은 어떨까요? 아내가 무엇을 먹기만 하면 토하고 몸이 자꾸 야위어간다면 남편의 심정은 어떨까요?

아내가 신경이 예민해져서 신경질을 자주 낸다면 남편은 어떻게 대해주어야 할까요? 기운이 없어 저녁 반찬거리 사러 인근 마트에도 가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아내 대신 시장에 가서 달걀이며 두부, 콩나물을 사 오면서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루 이틀도 아닙니다. 이런 생활을 한두 해 해온 것이 아닙니다. 대학병원에 다년간 다니면서 정밀 검진과 지속적인 치료에도 희망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그린 아내 모습

날로 쇠약해지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남편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절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부터 아내의 얼굴에 생기(生氣)가 돌았습니다. 이른 새벽에 어딘가를 다녀온다고 했습니다. 먼 거리를 가는 듯했습니다.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한 두 주일 지난 뒤, 또 어딘가를 다녀온다고 했습니다. 역시 먼 거리인 듯했습니다.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밤낮없이 유튜브 강의를 들었습니다. 각종 의학상식, 각종 건강정보를 남편에게도 보내주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직접 제조하여 수시로 먹었습니다. 집안엔 온통 아내가 만든 흰 액체의 페트병과 우유병이 늘어만 갔습니다. <불로유(不老乳)>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이른바 ‘신비의 명약 불로유’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백혈병 전 단계라는 난치병도 꼭 나을 것이란 확신과 의지력이었습니다.

집안 곳곳에서 보이는 불가사의한 액체 <불로유(不老乳)>… 아내가 제조한 것들이다.

이렇게 정체 모를 흰 액체를 복용한 지 얼마나 됐을까요. 아내의 얼굴에 화기(和氣)가 돌았습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씩씩한 걸음으로 시장에 가서 먹을거리도 사 왔습니다.

부모님 산소 성묘도 다녀왔습니다. 선산에서 흙을 퍼다가 옥상에 각종 채소도 가꾸었습니다. 옥상에 심은 상추, 고추, 토마토를 큰아들에게도 보냈습니다. 이제 좀 사람 사는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福緣善慶(복연선경)’이라, 복(福)은 착한 일에서 오는 것이니, 착한 일을 하면 경사(慶事)가 온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요.

대학병원 검진 결과, 정상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담당 주치의도 ‘기적 같은 일’에 놀라워했습니다. 누구 덕인가요? 누구 덕분에 아내의 얼굴에 생기가 돋는 것일까요?

아내는 밤새워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무슨 글을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글을 쓰는 아내의 모습이 자못 진지했습니다. 평생 볼펜 한번 잡을 일이 없었던 아내가 글을 써서 다듬고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간증’이라고 했습니다.

‘간증’이라니, ‘간증’의 뜻을 아내가 제대로 알고 말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국어사전 풀이에 의하면 간증이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법률)예전에, 남의 범죄에 관련된 증인’을 뜻합니다.

아내는 아무런 종교도 없습니다. 선량하게 살아온 가정주부가 법적으로도 잘못을 고백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내가 무슨 까닭으로 ‘간증’을 한다는 말인가요.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누구 앞에서 죄를 고백하듯 ‘간증’한단 말인가요.

귀여운 초등학생 손자가 알면 펄쩍 뛸 일입니다. 사랑스러운 손자가 이런 사실을 알면 “할머니는 아무 죄 없어요. 정말 죄 없다니까요. 우리 가족을 사랑한 것이 죄인가요? 저를 애지중지 보살펴 주신 것이 죄인가요?”라면서 울먹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간증’이란 이름으로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잘 나오지 않는 볼펜으로 쓰고 지우고, 다듬고 다듬은 편지를 글씨가 예쁘지 않다고 남편인 제게 타이핑해 달라고 했습니다.

컴퓨터로 글을 쓸 줄 모르는 아내는 제게 타이핑을 부탁하면서 몹시 미안한 표정이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게 부부지간이지만 아내도 자존심 상하는 일은 한 번도 남편에게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

부끄러워하는 아내의 표정을 읽은 저는 아무 말 없이 타이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놀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내의 진솔한 문장력입니다. 문단 경력 33년인 저의 안목으로는 예사 문장력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아무리 밤새워 다듬었다고 하지만,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한평생 살림만 하고 살아온 아내에게 이런 잠재된 문장력이 있는지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또 하나 놀란 것은 남편이 그동안 정확히 모르고 있었던 아내의 병명과 자가 치료 방법입니다. 아내의 편지를 타이핑해 주니 인쇄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2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 쌓인 프린터를 작동시켰습니다.

인쇄가 잘 될지 걱정했는데 선명하게 술술 잘도 나왔습니다. 이것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프린터에서 나온 선명한 편지를 보고는 아내도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남편에게 수줍은 표정으로 ‘고마워요!’라는 말,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은 아마도 시집온 이후 처음 듣는 말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아내는 오늘(2023. 2. 1.) 아침, 이 편지를 가지고 원거리 출타했습니다. 어디에 갔는지 저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놀라운 치유법을 제시해 주신 신인(神人)에게 ‘결과 보고’하러 간 것이 아닌지 생각됩니다. 그분의 신통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간증’, 아니 ‘투병 일기 고백서’는 아들, 며느리, 손자도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아내의 편지를 간단한 소감과 함께 가족 채팅방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2023년 2월 1일

남편 윤승원 소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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