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식 칼럼] 왜 이렇게 우리는 바쁘게 살아야 하는가

윤소식 치안감 승인 2023.11.07 16:11 의견 0

경찰청 교통국장으로 있을 때 지하철로 출근을 했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 출근에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람들이 기차를 환승하기 위해 뛰거나 빠른 걸음으로 간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덩달아서 뛰거나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간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을 따라 뛰거나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게 된다.

특히, 지하철역 전자안내판에 표시되는 지하철 도착시간을 보면 기차를 타려고 필사적으로 뛰던 기억이 난다. 5분 정도 기다리면 승차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지하철과 같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에서는 빨리 가다 보면 숨이 차오는 정도라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운전을 직업으로 하는 경우 위험이 수반되게 된다.

요즈음 배달 오토바이가 늘어나면서 시간이 돈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속도가 곧 돈이다. 따라서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자신의 생명은 물론 남의 생명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운전에만 전념한다.

그런 결과로 교차로 등에서 신호를 위반하는 일이 많고 인도 주행으로 인해 보행자에게 불편을 주고 심지어는 대형 교통사고로 인해 귀중한 목숨을 잃게 된다.

왜 이렇게 우리가 바쁘게 살아야 하는가. 아마도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맞추어 살아가면서 생긴 현상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것이 나타나 어제의 것은 구식이 되어 버린다. 오늘 유행하던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사라져 버린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더 좋은 것이 나오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게 되고 결국은 퇴출하게 된다.

청나라 말기 <아Q정전>으로 유명한 루쉰의 ‘조화석습(朝化夕拾)’이라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된다. 조화석습은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뜻이다.

아침에 피었다가 떨어진 꽃잎을 곧바로 쓸어내지 않고 해가 진 뒤에야 거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것이 시작되는 아침과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저녁 사이에 높인 찌꺼기를 두루 껴안아 하루의 값진 의미를 되짚어 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낙엽은 스스로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생명을 마감한다. 생을 마감하는 낙엽에 대해 누구도 진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길거리에 방치되어 바람에 날려 다니고 청소하시는 분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런 낙엽을 하루 종일 그대로 두고 해가 진 뒤에 쓸어내린다고 표현한 작가의 마음의 여유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찰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느끼게 된다.

지금과 같이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태에서 루신의 조화석습이 던지는 의미는 이 얼마나 멋이 있는가.

빠른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빠르게만 가려고 하면 멀리 가지 못한다. 너무 빠르다고 느낄 때 속도를 늦추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스스로 위치를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 유행하던 느림의 미학과 같이 시간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찌 보면 속도조절이 더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속도조절이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게 되면 오래 갈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간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면서 멀리 보고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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