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환의 골프이야기] 메이저 골프대회 우승 비결

육동환 편집위원 승인 2024.06.12 14:20 의견 0

골프 경기에서 압도적 성적 유지하는 실력자들 어떻게 가능했나 궁금하지만 핵심은 ‘더하기’보다 ‘덜어내기’… 절제와 단순함에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고 수준의 남녀 골프 리그에 초강력 지배자가 각각 등장했다. “비현실적”이라고 선수들은 입을 모은다. PGA 투어 스코티 셰플러는 다섯 대회 중 준우승 한 번 빼고 네 번을 우승했다.

LPGA 투어 넬리 코르다는 다섯 대회에 나가 몽땅 우승을 휩쓸었다. 일생에 한 번 우승해도 가문의 영광인데, 나갈 때마다 우승이라니. 게다가 그 기막힌 일이 양쪽에서 동시에 벌어진 것이다.

셰플러와 코르다의 경기는 대체로 엄청나게 짜릿하지는 않았다. 진기명기를 선보이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빈틈없이 착실했고 때론 단조로웠다. 실수가 자주 나오지 않고, 나와도 큰 무리 없이 만회했다. 일단 앞서나가면 좀처럼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4시간 넘도록 매번 다른 위치와 상황에서 수십 번 스윙하며 집중력과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그 어려운 일을 두 사람은 너무나 쉬워 보이도록 해냈다.

경기 끝난 후 어떻게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가. 질문이 쏟아져도 두 사람은 “눈앞의 샷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같은 밋밋한 답변을 했다. 뻔한 얘기로만 여겼는데, 매주 우승 기록이 쌓여가니 곱씹어보게 됐다. 두 선수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건 ‘단순함’이었다. “목요일(1라운드)에 일요일(4라운드)을 생각하지 않는다.”(셰플러) “명예의 전당은 한 번도 목표로 삼아본 적이 없다.”(코르다)

우수한 선수에서 압도적 선수로 발전하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코르다의 코치는 “단순함을 더한 것이 전부다. 더 효율적이고 정확해졌다.”고 했다. “배를 떠올려 보자. 코르다는 필요 없는 건 무엇이든 배에서 던져 버렸다. 그 배는 지금 순항 중이다.” 코르다나 셰플러나 전에는 타고난 승리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코르다는 건강 문제, 셰플러는 퍼팅 난조를 겪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과도한 생각과 목표를 덜어내고 에너지를 집중하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코르다는 캐디와 코치, 트레이너, 에이전트, 가족 등이 각자 역할을 하는 시스템 안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해왔다. “매일 루틴을 지키는 것이 정신 건강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소문난 연습 벌레 셰플러 역시 “인내심을 갖고 멀리 내다보지 않는 방식으로 모든 대회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가 마스터스 우승 후 그린 재킷 차림으로 동네 작은 바를 찾아 단 20분간 머물렀던 사실은 화제가 됐다. 코르다 역시 동료와 햄버거, 감자튀김을 먹으며 우승을 잠시 자축했을 뿐이다.

스포츠 기자들은 ‘잘하는 사람(팀)은 왜 잘하는지, 못하는 사람(팀)은 왜 못하는지’ 분석을 주로 한다. 지금껏 수많은 선수와 감독에게 승리 비결을 숱하게 물었어도 속 시원히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은 적은 거의 없었다. 상상도 못 할 만큼 선진적인 방식으로 훈련하거나, 매우 특이한 건강식이라도 먹는 게 아닌지 ‘추궁’해봐도 대체로 답변은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곰곰이 돌아본다.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나. 비범한 결과를 내는 인물이 반드시 일반인과 대단히 다른 뭔가를 하고 있을까. 탁월함의 조건은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가?’에 있을 때도 많았다.

선수는 지켜야 할 것을 구분하는 판단력, 버려야 할 것을 포기하는 용기,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정신력을 갖출 때 단순함의 경지에 이른다. 단순하면 강하다. 단순해야 더 강해진다.

지난 19일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SK텔레콤 오픈(총상금 13억 원) 최종 라운드가 제주 핀크스 골프코스에서 열린 19일은 최경주의 54번째 생일이었다. 5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했지만 최경주는 이날 버디 2개, 보기 5개로 3타를 잃었다. 최종 합계 3언더파 281타. 3라운드까지 7타 뒤처졌던 박상현(41)이 따라붙어 동타를 만들어 연장전에 돌입하였다.

18번 홀에서 다시 열린 연장 1차전. 최경주가 친 세컨드샷이 그린 옆 개울로 날아갔다. 다들 ‘끝났네’ 생각했다. 그런데 탄성이 터졌다. 개울 중앙 작은 섬 잔디 위에 공이 떨어져 한 번만 살짝 튀고 안착한 것. 행운이었다. “완도다, 완도!”란 감탄사가 나왔다. 최경주는 전남 완도 출신이다. 최경주는 그 작은 섬 위에 올라가 59도 웨지를 잡고 굴리는 샷을 했다. 이 샷이 홀 가까이 멈추면서 극적으로 파를 기록하여 승부를 연장 2차전으로 끌고 갔다.

2차전 티샷을 하기 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정말 우승하고 싶다’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 순간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간절함으로 온몸을 다 꼬아서” 티샷을 했다. 공이 전보다 50야드쯤 더 나갔다. 우드 대신 5번 아이언으로 세컨드샷을 할 수 있었다. 이 샷을 그린에 올리면서 최경주는 파를 기록했다. 보기에 그친 박상현을 꺾었다. 최경주는 “손으로 (공을) 놓아도 그렇게 놓을 수 없었다.”며 “그 작은 아일랜드에 잔디를 심어 공이 딱 거기 있었는데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로써 그는 KPGA 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19년 만에 새로 썼다. 종전 기록은 최상호(69)가 2005년 매경오픈에서 작성한 50세 4개월 25일이었다. KPGA 투어 우승은 통산 17번째. 11년 7개월 만이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선 2002~2011년 통산 8승을 거뒀다. 2020년부터는 만 50세 이상이 참가하는 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뛰며 2021년 한 차례 우승했다. 최경주는 올해 27회를 맞은 SK텔레콤 오픈에 22번째 출전해 4번째 우승(2003·2005·2008·2024)을 거뒀다. 매번 다른 코스에서 트로피를 들었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탱크’ 최경주는 아들 뻘 후배들과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됐다. 최경주는 드라이버 비거리가 후배들보다 열세였지만 평소 꾸준한 연습을 통한 정교함과 신앙적 간절한 기도로 이뤄진 결과로 평상시 루틴대로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필드에서 좋은 점수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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