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풍경] 서구 둔산동 ‘맛청’ 남수봉 대표의 ‘일수불퇴’ 인생 스토리~♬

민순혜 기자 승인 2020.03.16 16:13 의견 0


남수봉 대표는 서구 둔산동 퓨전 일식·한식 ‘맛청’을 운영하면서, (사)대한가수협회 대전지회 소속된 가수이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리연구가로 ‘맛청’에서 바쁘게 보내고, 밤에는 트로트 가수로 크고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열정적인 노래로써 관객의 흥을 돋우며 엔도르핀을 듬뿍 선사한다. 그가 장기인 탬버린을 신들린 듯 흔들며 노래할 때 객석은 열광한다.

남 대표는 민요 명창이셨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세 살 적부터 노래를 뛰어나게 잘했다. 남 대표의 고향인 김천시 지좌동 가연마을(배다리)에서는 매년 1~2회씩 농악대가 마을을 돌면서 그해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가 있었다. 남 대표는 어릴 때 농악대의 리더가 하는 것을 유심히 보다가 냄비뚜껑을 들고 두드리면서 노래를 중얼중얼하며 그 뒤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렇듯 남다른 끼가 있어서일까. 남 대표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동네 명가수라는 닉네임을 달고 동네의 각종 쇼와 각설이패 등 노래와 음악이 있는 곳에는 빠뜨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노래를 배우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음악적 기량을 쌓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당연하다. 남 대표는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동네 콩쿠르에 참가하여 입상도 하고, 동네 어르신들의 칭찬과 박수를 받으며 어릴 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더니 남 대표가 초등학교 2학년 말에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나오면서 갖은 고생을 하였다. 그때 쌀밥을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을 보낸 탓에 지금도 쌀밥을 좋아한다고 하니 말이다. 남 대표는 부친을 도와서 생업에 종사하면서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장사를 직접 어린 몸으로 감당해내면서 사업적 수완을 익힌 것 같다.

 


그렇듯 남 대표는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험과 역량을 쌓은 덕인지 지금은 유명 맛집 ‘맛청’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자신의 재능도 기량을 쌓아 어엿한 기성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남 대표는 ‘맛청’에서 보면 유명 요리연구가 같고, 신들린 것처럼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을 보면 전업 가수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 대표는 대전JC특우회장과 대전지구회장, 그리고 대전둔산로타리클럽 회장과 지구임원을 십여 번 역임했고, (사)대전팝스오케스트라의 후원회장으로 일하며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으며 지금은 대전광역시 소상공인포럼 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그중 보람됐던 일 중 하나가 둔산로타리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에 많은 봉사 활동을 펼친 것이다. 구봉산 밑에 있는 ‘노인복지시설’에 어르신 환자들의 생활에 필요한 사물함 등을 지원했으며 송년회 때 둔산로타리 회원 부부들과 함께 타 밴드 그룹도 초청하여 어르신들을 위해 연주하고, 선물과 다과를 나누어드렸던 일은 어르신과 회원 모두 하나가 된 것을 느꼈던 감명 깊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실은 그때 남 대표는 가수의 꿈을 다짐했다. 진짜 가수가 되어 여생 동안 틈틈이 노래 봉사를 하면서 보람된 인생을 살고 싶다고. 그 후 바로 2006년 3월 경 한밭대학교 평생교육원 ‘노래지도자 과정’에 등록하고, 지도 강사 김정호 선생님께 노래를 배웠다. 그 당시 김정호 선생님께 기념 음반 내는 것을 제안을 받았지만 망설이다가 2018년 김정호 선생님께 ‘일수불퇴’ 곡을 받았다. 그 후 설운도 작사, 작곡 ‘대전역’, ‘친구야’ 두 곡을 더해서 3곡을 기성곡과 같이 지난 2019년 음반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드디어 가수의 꿈을 이룬 것이다. 남 대표는 일석이조의 인생을 사는 셈이다.

남수봉 대표는 여생을 일하는 틈틈이 동네 소외된 이웃과, 노인종합복지관 등을 찾아 그의 재능을 기부하고 그들과 애환을 나누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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