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조선 7대왕 ‘세조’

김형태 박사 승인 2020.03.17 14:29 의견 0

조선조 제1대 태조(이성계), 3대 태종(이방원), 7대 세조(이유)는 모두 정변(쿠데타)으로 등극한 왕들이다. 특히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서 1428년(세종 10년)엔 진평대군(晉平大君), 1432년엔 함평대군(咸平大君)에 책봉되었다가 그 해 7월 진양대군(晉陽大君)으로 다시 1445년에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책봉됐다. 어릴 때부터 자질이 영특, 영민하여 학문이 뛰어났고 친형 문종과는 달리 무예도 능하고 성품도 호방하였다. 문종이 죽고 그 아들(단종)이 즉위하자, 삼촌인 그는 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다가 1453년 10월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뒤 1455년 음력 6월 단종을 강압하여 왕위를 찬탈해 제7대 왕 세조가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39세였다.

세조는 즉위한 뒤, 단종(조카)을 상왕에 앉히고, 권력을 쥔 그 다음해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이른바 사육신(死六臣)으로 불리는 집현전 학사 출신 관료들이 단종 복위사건을 계획한 것이 발각되자 그들을 모두 죽이고 단종을 노산군으로 감봉해 영월에 유폐시켰다. 그리고 1457년 9월 자신의 동생 금성대군이 영남의 유생들과 다시 한 번 단종의 복위 사건을 일으키자 그를 사사시키고 단종도 관원을 시켜 사사시켰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왕자들 간의 싸움, 그의 선대를 살펴보자. ‘2차 왕자의 난’(방간의 난)으로 세자 책봉에 들어선 세종의 아버지 태종(정안대군/방원)도 왕위에 오르면서 왕권 안정과 개혁으로 조선의 기초를 닦았고 태종 또한 다음 왕위 계승에서 첫째 양녕대군, 둘째 효령대군을 넘어 셋째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양위하면서 “천하의 모든 악명은 이 애비가 다 짊어지고 갈 것이니 주상은 만세에 성군(聖君)의 이름으로 남도록 하라.”고 말해 길게 내다 본 역사적 행간을 남겼다. 세종의 아들인 세조 또한 정변(쿠데타)으로 즉위하여 세조 특유의 왕권 안정이라는 전제 정치를 통해 조선 성리학자들의 왕도정치 개념과는 거리가 먼 무단 강권 정치를 하였지만 즉위 후, 역대 어느 왕들보다 문화 중흥 통치와 훈민정음의 확산, 외교와 국방 그리고 사회 경제적 면에서는 많은 치적을 남겼고 불교의 진흥과 출간 사업에도 진력했다. 세조는 유교가 통치에 필요한 실천 윤리라면 불교는 왕실의 안녕과 미래를 보장하는 종교적 신앙으로서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세조는 불교가 갖고 있는 호국정신에 근거한 국가민족의식의 고양을 통해 국방력과 집권 체제의 강화를 도모하려고 했다. 그러나 말년에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과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그가 죽인 주위 사람들의 원귀가 꿈속에 나타나 편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야사(野史)로 전해오고 있다. 또 지독한 피부병을 치료하려고 전국 유명한 온천을 찾아 떠돌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번은 악몽을 꾸며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은 채 신음소리를 내다가 왕비가 잠을 깨우니 일어나 “음, 업(業)이로구나. 업이야.” 하면서 “방금 단종의 모친인 현덕왕후의 혼백이 나타나 내 몸에 침을 뱉었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꿈에 현덕왕후가 침을 뱉은 자리마다 종기가 돋아났고 이 종기가 차츰 온몸으로 퍼지더니 고름이 나는 등 점점 악화되었고 명의와 신약 모두 효험이 없었다. 세조는 중전에게 “백약이 무효하니 내 아무래도 대찰을 찾아 부처님께 기도를 드려야겠소.”라고 청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문수도량인 오대산 상원사가 적합할 듯하옵니다.” 그래서 세조는 오대산을 찾아 월정사에서 참배를 마치고 상원사로 가던 중 주위를 물러가게 한 후 혼자서 심산의 산간벽수에서 목욕을 하였다. 그때 숲속에서 놀고 있는 동자승 하나가 눈에 보였다. 그래서 “이리 와서 내 등 좀 밀어주지 않으련?” 하자 동자승이 내려와 등을 다 밀고 나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대는 어디 가서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자, 동자승도 “대왕도 어디 가서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마시오.”라고 말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죄를 지으면 남이 징계하기에 앞서 자신이 스스로 고소하고 고발하여 발 뻗고 편히 잘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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