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시인과 함께하는 그림책 산책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 『난 무서운 늑대라구!』

이해완 시인 승인 2020.03.17 14:39 | 최종 수정 2020.03.17 14:55 의견 0

이번 호에는 새 학기를 맞아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그림책을 준비했습니다.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는 우연히 책을 한 권 주워 지식인 행세를 하다 망신당한 거위 이야기이고, 『난 무서운 늑대라구!』는 독서를 통해 지식인으로 변모해 가는 떠돌이 늑대 이야기입니다.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글 그림 : 로저 뒤봐젱

옮김 : 서애경

출판사 : 시공주니어

 

보고 싶은 책이 있어 도서관에 갔다. 밤 8시였는데, 학생들과 몇몇 어른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골라 의자에 앉는데, 앞자리에 모자지간인 듯한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는 왜소하고 앳된 얼굴이 초등학생이 분명해 보였다.

‘방학인데도 도서관에 와서 이렇게 책을 읽다니 어지간히도 독서를 좋아하는군.’ 속으로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요즘 즐겨 읽는 책이 사마천의 ‘사기’인데 한참을 읽다 눈이 침침해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때 앞좌석에 앉은 모자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책을 읽으면서 자주 아이를 바라보곤 했는데, 그 눈빛은 독서를 하고 있는 어린 자식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어쩐지 잘하고 있나 감시하는 시험감독관의 그것이었다.

아이가 어떻게 하고 있나 유심히 봤더니, 아이는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사전을 앞에 두고 베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모자에게 가졌던 좋은 감정은 싹 사라지고 불쌍하고 짠해 보였다.

‘참 무식한 엄마도 다 있구나!’ 저렇게 하면 아이가 공부 잘해서 명문대에 합격할 거라 믿는 걸까?

엄마가 잠시 자리를 뜨자 그제야 자유를 찾은 듯 목을 돌리고 어깨를 주물러댄다. 그러다 엄마가 제자리로 돌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빳빳하게 군기가 든 사병처럼 허리를 곧추세우고 다시 필기를 시작했다. 이런 공부법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방법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에는 이 엄마만큼 어리석은 암거위 피튜니아가 등장한다.

어느 날 우연히 주운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면서 자신이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맹추 피튜니아가 책을 끼고 다니자 농장의 동물들도 문제가 생기면 피튜니아에게 자문을 구한다. 피튜니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이렇다. 말 스트로가 앓는 소리로 “피튜니아야, 난 정말 죽을 것 같아. 넌 똑똑하니까 틀림없이 이 끔찍한 고통을 멎게 해줄 수 있을 거야.”하고 호소하자, 기꺼이 도와주겠다며 자신의 입을 크게 벌리더니 “나를 보렴, 이빨이 있니? 틀림없이 없지. 그래서 나는 치통도 생기지 않는단다. 내가 네 치통을 금세 멎게 해줄게. 그 이빨을 다 뽑아 버리면 되거든. 몽땅 말이야.” 스트로는 이빨이 뽑힐까 봐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더는 이빨이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어느 날, 목장 동물 친구들이 웬 상자 하나를 둘러싸고 있다가 피튜니아를 보고 뭐라고 적혀져 있는지 물어본다. 상자에는 ‘취급 주의. 위험, 폭죽’이라고 씌어있다.

피튜니아는 긴 목을 빼고 “기꺼이 도와줄게. 응, 어디 보자ㆍㆍㆍ, 음, 사탕. 사탕이라고 적혀 있어.”하고 말한다. 그러자 여러분이 상상한 대로 농장의 동물들이 서로 먼저 먹으려고 포장을 뜯어대는 통에 상자가 폭발하고 농장은 삽시간에 부상 병동이 되고 만다. 이게 다 헛똑똑이 피튜니아 때문이다.

폭죽이 터지는 바람에 책장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책에 자기가 전혀 읽을 수 없는 말이 쓰여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지혜는 날개 밑에 지니고 다닐 수는 없는 거야. 지혜는 머리와 마음속에 넣어야 해. 지혜로워지려면 읽는 법을 배워야 해.” 그리고는 당장 실천에 들어간다.

무엇보다 기특한 것은 피튜니아가 지혜로워지면 친구들을 도와서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생각이다.

 

 

『난 무서운 늑대라구!』

글 : 베키 블룸

그림 : 비에

출판사 : 고슴도치

이 책은 독서는 왜 해야 하는가. 지식을 쌓기 위해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는가. 독서를 통해 어떻게 지성인이 되는가. 지식인을 대하는 이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등을 담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책이 무슨 대단한 이론서나 되는 줄 알고 미리 도망갈 생각을 하는 독자도 있겠다. 하지만 안심해도 된다. 아주 짧고 재미있는 그림책이니까.

그림책을 볼 때는 모든 면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이 책의 앞 면지부터 보자. 마을 골목으로 떠돌이 늑대가 가느다란 막대기에 빨간 보자기를 어깨에 걸치고 등장한다. 골목과 이 층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있지만, 늑대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안 보는 것이 아니다. 교묘하게 예의 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뢰배와 맞닥뜨렸을 때 일반인들이 보여주는 흔한 대응방식이다. 괜히 눈이라도 마주쳤다가 재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배도 고프고 돈도 거의 떨어져 가는 늑대가 어디 먹을 게 없나 생각하다가 떠올린 곳이 농장이다. 늑대가 울타리 뒤에 숨어서 농장 안을 훔쳐보니까 돼지와 오리, 젖소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책을 읽고 있다. 늑대는 으르렁거리며 아우- 우우우우! 소리치며 뛰쳐 들어간다. 닭과 토끼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는데 오리와 돼지와 젖소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은 이들은 책을 읽지 않은 닭이나 토끼와는 달리 차분하게 대처한다. 거기다 한술 더 떠 “왜 이렇게 시끄러워, 책을 읽을 수가 없잖아.” 하고 젖소가 투덜대기까지 한다. 오리는 옆에서 “내버려 둬. 저러다 말겠지, 뭐.” 하고 만다.

늑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야, 너희들. 뭐가 잘못된 거 아냐? 난 무시무시한 늑대라구!”하니까 돼지가 “알아, 그러니까 다른 데 가서 무섭게 굴어, 우리는 교양 있는 동물들이야. 책 읽는데 방해하지 말고 그만 가 줘.” 하며 등을 떠민다.

그때부터 늑대는 교양 있는 동물이 되려고 노력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1학년 1반에서 일등을 하고, 도서관에 가서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해서 돼지와 오리와 젖소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만, 아직도 멀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 늑대는 포기하지 않고 책방으로 간다. 주머니를 뒤져 조금밖에 남지 않은 돈으로 난생처음 자기만의 책을 산다. 그리고 그 책을 밤낮으로 읽어댄다. 이 정도면 농장의 동물들도 칭찬할 거라는 확신이 들자 다시 찾아간다.

전에는 자신의 실력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 누가 듣든 말든 큰소리로 읽어댔는데, 이번에는 풀밭에 누워 쉰다. 그러고는 잠시 후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돼지와 오리, 젖소가 다가와 조용히 귀 기울여 듣는다. 게다가 더 읽어달라고 졸라대기까지 한다.

앞 면지에서는 늑대의 등장에 모두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뒷 면지에서는 상황이 역전되어, 마을 사람들도 늑대가 읽어주는 책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이 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장면은 늑대가 책을 읽고 교양을 쌓아가면서 변하는 행동이다.

처음에는 무작정 소리 지르며 쳐들어간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읽기를 뗀 다음에는 울타리를 뛰어 넘어간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많은 책을 섭렵한 다음에는 문을 밀고 들어간다. 마지막 제 돈을 주고 책을 사본 뒤에는 점잖게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간다.

그림책은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교훈을 주고자 할 때도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림으로 보여줄 뿐이다.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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