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이는 어디에?’

청주 카페 명월관 & 팔방미인 오민초 대표

김경희 작가 승인 2020.07.08 16:36 의견 0


명월관,

축음기의 간드러지는 파열음이 들려야 할 불빛 아래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자욱하다. 삼삼오오 모여 휴대폰 갤러리에 ‘명월관’을 담느라 손길이 바쁘다. 앳된 얼굴의 젊은 사장이 무릎이 드러난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고 분주하게 홀을 누빈다. 나비 같은 뒤태가, 고왔던 명월이가 환생 한 양 예쁘다. 중앙벽면을 다 차지한 자개장에 시선이 머문다. 십장생에 학이라도 날아와 앉을 자개장의 고혹적인 자태에 청춘들이 매료됐다. 연도를 알 수 없는, 할머니 댁 안방에 거들먹거리며 자리를 지켰던 자개장이 옆으로 누웠다. 소용가치가 끝난 자개장을 사장의 이모가 중고 샵에서 모셔왔다. 근사한 디스플레이로 진화되어 복고의 품격이 높아졌다. 한 귀퉁이 떼어 다른 방의 벽면을 또 디스플레이 했다.

거친 시멘트의 단층집 명월관은 중식당으로 당당했었다. 청주 성안길에 젊은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커지면서 퇴각일로에 들어설 즈음 임자의 눈에 뜨여 다시 태어났다. 왕서방과 명월이는 찾을 수 없지만 명월이를 닮은 예쁜 사장, 생기 가득한 젊은이들로 명월이 없는 명월관은 다시 숨을 쉬게 되었다.

그 자리의 역사를 자개문양으로 復權(복권)시키며 묘지화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그 앞에서 재잘대는 청년의 웃음으로 자개장은 장롱이 아닌 그 집의 ‘레트로’ 라는 위상으로 자리 잡았다. 잰 걸음으로 예쁘게 움직이는 사장도, 성안 길에 들러 명월관을 찾는 젊은이들도 다들 추억속의 명월이다. 그렇게 예쁘고 발랄하다.

명월관, 젊은 주인장 오민초 대표


코로나19로 힘을 잃은 성안길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명월이, 발사믹 소스에 절여져 적당히 힘을 뺀 대패삼겹살의 감칠맛, 곳곳에 놓여 진 거친 질감의 세련된 소품의 그 오랜 손자국이 그대로 묻어 향수로 남았다.

명월관 테이블마다 휴대폰 갤러리에 전시된 손 때 묻은 오래된 소품들이, 청년들 틈에 끼여 전혀 밀리지 않는다. 과거와 오늘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메뉴에도 그 둘이 공존한다. 젊은이의 혀끝을 사로잡고 기성세대의 입맛도 저버리지 않았다. 가족이 모여 명월관을 환생시켰기에 청춘도 기성세대도 다들 반긴다. 젊은 사장의 엄마는 그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식탁 레시피를 만들고 이모는 자개장, 조도 낮은 등, 탈색된 의자들로 복고의 향취를 청춘들에게 선물했다. 오래된 그 집이 성안길의 기록이며 역사다. 골목에도 역사가 있다. 포크레인으로 밀어 소리 없이 묻힐 그곳을 청춘의 성역으로 만들었다.

 

길 건너 쌍둥이 고택, 팔방미인


길 건너 한옥 집 팔망미인, 다른 듯 같은 집, 한옥을 개량하고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눈길만 사로잡은 것이 아니다. 입맛도 붙들었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처럼 다르지만 같다. 주인이 같은 집, 그래서 와본 집 같다. 그 집의 돌담도 콘크리트 숲에 갇힌 청춘들에게 또 숨통 한번 트여주었다.

시대극이라도 한 편 찍어야 할 것 같은 명월관과 팔방미인. 추억을 잃은 기성세대, 활력을 잃은 젊은 세대들에게 반짝이는 재미 하나 던져주는 명월관, 청춘들의 발길을 잡는 건 숨어 있는 명월이였다.

명월이는 과연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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