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완 시인의 그림책 산책] 『파리의 휴가』 & 『동강의 아이들』

이해완 시인 승인 2020.07.10 14:04 의견 0

이번 호에는 더위를 식혀줄 그림책을 준비했습니다. 『파리의 휴가』는 파리가 휴가를 떠났다가 봉변을 당한 이야기이고, 『동강의 아이들』은 동강의 비경을 아름답게 표현한 예술 작품 같은 그림책입니다.

 


『파리의 휴가』
글 그림 : 구스티
옮긴이 : 최윤정
출판사 : 바람의아이들

※ 이번 호에는 『파리의 휴가』라는 그림책을 독후편지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파리에게
파리야, 안녕?
올여름은 유난히 덥구나. 
나는 『파리의 휴가』라는 책을 읽고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이렇게 더운 날은 누구나 시원한 물에서 수영이나 했으면 싶을 거야. 그런데 모처럼의 휴가가 엉망이 되어서 속상하지?
네가 ‘가방이랑 선크림에다가 커다란 수건 그리고 물놀이 공까지’ 수영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준비할 때 네 마음이 얼마나 설레었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을 거야. 그렇지? 나도 여행을 떠날 때면 그렇거든.
그런데 네가 한 발 또 한 발 조심스레 발을 디디고 물에 들어가 기분 좋게 수영을 즐기려고 할 때 갑자기 닥친 불행 때문에 다시는 수영하러 가지 않겠다고 했지?
그렇지만 네게 닥친 불행은 네가 자초한 거야. 수영을 하러 갈 때는 잘 따져봐야 해. 제일 먼저 고려할 것은 안전이지. 그런데 너는 가장 중요한 그 안전을 무시했어. 하긴 뭐 ‘경고! 이곳에서 파리는 수영하지 마시오.’라는 표지를 붙여 놓지도 않았으니, 네가 알 턱이 없었겠지만 말이야.
네가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려고 할 때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고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천둥소리가 시작되자, 넌 폭풍이 올 것을 예상하고 “아이, 참, 왜 우산을 안 가져왔지?” 하고 속상해했지만 그건 네가 준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이제부터 네가 간 수영장이 어떤 곳인지 알려줄 테니까 잘 들어봐.
사실 검은 구름은 진짜 구름이 아니야. 사람의 그림자지. 정확하게 말하면 엉덩이가 변기 입구를 막았기 때문이지. 그리고 천둥소리가 나고 저기 높은 데서 축구장보다 더 큰 별똥돌이 떨어지고 파도가 쳤지? 그건 말이야, 사람이 일을 볼 때 생기는 현상이야. 맞아, 그곳은 화장실 변기통이야. 넌 수영장이라 착각한 거야. 아이가 “엄마, 엄마! 나, 다 했어!" 하고 외쳤을 때 너도 짐작했겠지만 말이야. 너 그 별똥돌에 맞았으면 지금쯤 천국에서 수영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회오리 파도 속을 두 날개를 저어 행글라이더처럼 빠져나올 때는 멋지더라.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
어쨌든 다음에는 그곳으로 수영하러 가지 마. 겉보기에는 수영하기 좋은 곳처럼 보이지만 너에게는 무시무시한 곳이야.
대신 내가 멋진 곳을 소개해 줄게. 이번에 우리 가족이 다녀온 강원도 동강을 추천하고 싶어. 정말 아름다운 곳이거든.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꼭 한번 가보렴.
그런데 조심할 게 있어. 너 배고프다고 남의 밥상에 함부로 올라가서 사람들이 젓가락도 들기 전에 덤벼들었다가는 파리채가 네 머리를 향해 날아들 거야. 명심해!
알았지?
그럼 무더운 여름 잘 보내기 바라.

 


『동강의 아이들』
글, 그림 : 김재홍
출판사 : 길벗어린이

올 한 해는 강원도로 향하는 발걸음이 잦다. 세 시간 이상을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지만 마음은 늘 즐겁기만 하다. 가는 길에 펼쳐지는 산과 들을 바라보면 마음속 켜켜이 쌓인 피로가 씻겨나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번 강의는 강원도 태백교육지원청의 요청으로 가게 되었는데, 늘 그렇듯이 강의를 맡은 남혜란 책임연구원을 태백교육도서관에 내려주고 곧장 태백 고생대자연사박물관으로 방향을 잡았다.
운전을 하며 가는데, 왼편으로 흐르는 냇물이 제법 요란했다. 잠시 차를 멈추고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해보니 황지천이었다. 문득 황지연못이 떠올라 가슴이 뛰었다.
젊은 날, 지금은 작고한 송수권 시인과 섬진강의 발원지를 찾아 전라북도 진안 산속을 헤매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 4대강만이라도 그 발원지를 찾아가 보리라 다짐했는데, 황지연못은 그중의 하나인 낙동강의 발원지였던 것이다.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고 곧바로 황지연못으로 향했다. 섬진강 발원지와는 달리 태백 시내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황지연못은 황지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커다란 비석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지·중지·하지로 이루어진 둘레 100m의 소(沼)에서 하루 5천 톤의 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게 신비롭기만 했다. 이 물은 황지천을 따라 시내를 흘러 구문소를 지난 뒤 경상남도·경상북도를 거쳐 부산광역시의 을숙도에서 남해로 흘러갈 터였다.
낙동강의 발원지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한강의 발원지도 가보고 싶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강의 발원지 또한 이곳 태백에 있기에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오랴 싶어 동행한 딸에게 의사를 물었더니 흔쾌히 승낙을 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검룡소 주차장 옆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산을 올랐다. 30분쯤 걸어 목적지인 검룡소에 도착했다. 맑은 물이 계곡 바위 위를 보기 좋게 흘러내린다.
어린 동자승 같은 맑은 물줄기들이 노래를 부르며 내려간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새로운 세상을 보러 가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때가 묻지 않아서 새 친구를 만나면 그 누구도 뿌리치지 않고 모두 손을 잡아준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더 큰 물줄기가 된다.
물줄기는 정선의 골지천을 지나면서 어린이가 소년이 되듯 훌쩍 성장하여 강이 된다. 조양강과 영월의 동강을 거쳐 단양·충주·여주로 흘러 경기도 양수리에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검룡소를 떠나올 때 티 없이 맑고 투명하던 어린 물줄기는 이제 도도한 강물이 되어 서해로 들어간다. 바다에 몸을 담그면 짠물의 통과의례를 호되게 치르겠지만, 금방 적응하고 모든 생명을 품을 것이다.
『동강의 아이들』은 어린 동생 순이와 오빠 동이가 깨와 콩을 팔러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엄마는 돌아올 때 순이의 색연필과 동이의 운동화를 사 온다고 했다.
동생 순이는 자꾸 엄마 마중을 가겠다고 졸라댄다. 그런 동생을 위해 꼬맹이 오빠 동이는 물수제비 뜨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바위를 보고 으악 소리 지르며 공룡이 나타났다고 도망친다. 이게 동생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꼬맹이 오빠의 작전일지 모른다.
사실 자연은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촛대바위, 코끼리바위, 남매바위니 하는 이름이 붙었다. 이는 바위가 가진 형태의 유사성에 상상력을 보태 명명된 것이다.
그런데 『동강의 아이들』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김재홍 작가는 단순히 유사성에 이름 붙여진 여타의 것들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예술적으로 형상화 시켰다.
동강 여기저기 널려있는 바위에서 큰새, 아기곰, 공룡, 엄마의 모습을 찾아내어 독자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 그림책을 만들어 내기까지 작가는 수없이 동강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홀연히 마음의 눈이 뜨여 자연 속에 숨어있는 상(象)을 건져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기회에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을 구해 읽고 아이들과 함께 강원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자연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 이해완 약력

- 시인

- 시집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선정되어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태학사 발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되어 『수묵담채』 고요아침 발간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들』 수록, 중앙일보 간

- 대전시민대 강사 역임

- 한국그림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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