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을 선물해준 소중한 나의 담임, 박정애 선생님

사랑은 깊어지고 감사하는 마음은 더욱 높아지는 신록의 계절 5월, 박정애 담임 선생님 사랑합니다.

김진각 일공공일안경 관평점 대 승인 2020.07.10 14:16 의견 0


제자를 아끼고 아낌없는 사랑을 실천한 신일고등학교 학창시절 박정애 담임 선생님, 선생님과의 소중한 만남과 기억이 있어 행복한 제자 김진각이 ‘스승의 날’을 맞아 천사 같은 고마운 우리 담임 박정애 선생님을 소개하려한다.

筆者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남면 어부동’에서 태어나 순수하고 꿈 많던 시골 소녀였다. 성인이 되어 일을 하면서도 문뜩 문뜩 학창시절 고마운 박정애 선생님이 생각난다. 매년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더욱 마음 깊이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이시대의 진정한 ‘스승’ 박정애 선생님이 그립다.

필자가 신일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된 일이다. 부친께서 고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로 대전 충남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담임이셨던 박정애 선생님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있는 필자를 충남대병원 응급실에 데려다 주셨다. 하지만 의사는 ‘가망이 없으니 편안하게 집으로 가서 臨終(임종)을 보라’고 말했다.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 속에 의사의 소견에 따라 충대병원을 나와 다시 모친(엄마), 필자, 박정애 선생님 셋이서 응급차에 올랐다. 아버지는 시골집 어부동으로 가는 도중 응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우리 세 사람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갔다.

아직도 부친과 이별하는 순간이 눈앞에 선하게 다가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고3 담임이셨던 박정애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필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상존해 있기 때문이다. 부친의 갑작스런 영면에 집안 사정은 참으로 살아가기가 팍팍한 상황이었다.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막내 남동생이 중학교 수업료를 내지 못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필자 또한 학생 신분이었기에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 무척이나 고민하며 힘들어하고 있을 때, 필자를 지켜보고 있었던 박정애 선생님은 “무슨 고민 있냐”고 물어왔다. 필자는 어디에도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어려운 속사정을. 박 선생님이라면 속 시원하게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고 모두 털어놨다. 속 시원하게 말은 했으나, 선생님께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남동생은 수업료를 내진 못했지만 꿋꿋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며칠이 지난 후 남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누나, 누가 내 수업료를 냈다”며 엄청 좋아하던 남동생의 환한 얼굴이 생각난다. 누가 선뜻 큰돈을 내 줄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큰아버지께서 우리 집안 형편을 알고 남동생 수업료를 대신 납부해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백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면서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이듬해 대기업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첫 월급을 타게 되면 부모님이나 존경하는 분께 선물(속옷)을 사주던 관행이 있었다.

드디어 첫 월급을 받은 날. 제일 먼저 엄마를 떠올렸지만, 엄마는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하며 항상 물심양면으로 필자를 살갑게 도와준 박정애 선생님을 먼저 찾았다. 제자와 스승에 불과했던 필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주신 박정애 담임 선생님을 먼저 찾아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내일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때 동생 수업료를 납부해준 큰아버지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고 찾아뵈려 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박정애 선생님은 필자의 손을 꼭 잡았다. “큰아버지는 다음에 찾아뵙고 인사드리면 안 되겠니?” 하시는 박정애 선생님.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힘들었던 시절 남동생의 수업료를 대신 내준 사람은 큰 아버지가 아닌 박정애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을…….

사실을 알게 된 후 선생님의 손을 잡고 눈물샘이 터져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담임선생께서도 아무런 말 없이 안아주던 따스한 마음이 아직도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처럼 남아있다. 직장에 합격했을 때도 담담하게 “열심히 잘 할 거야, ‘진각’이는….”하시며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던 고귀한 담임 선생님의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니 너무도 죄스러웠다. 동생 수업료뿐만 아니라 필자가 자취할 때에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천사 박정애 선생님.

 


필자는 선생님 덕분에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결혼 후에도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홧김에 집을 나와 막상 갈 곳이 없을 때, 친구한테는 왠지 감추고 싶어 박정애 선생님께 달려가게 된다. 그러면 언제나 환한 미소로 반겨주고 토닥토닥 다독여 주는 그런 다정한 엄마같이 따뜻한 분이셨다.

부친의 영면으로 갑자기 어려워진 환경에 힘들어 하던 필자에게 오랜 시간 동안 말없이 사랑을 주시고 희망의 등불이 되어준 나의 귀중한 박정애 담임 선생님.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환하게 웃고, 누군가 어려울 때 작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관심, 희망과 배려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필자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심어준 존경의 아이콘 박정애 선생님의 덕분이다.

1년 후면 정든 교정을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가신다고 한다. 학창시절 어렸던 소녀도 이제 50을 넘은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불러 주고 싶은 노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필자가 조용히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정애 선생님께 ‘스승의 은혜’ 노래를 바친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지금의 이 자리가 있기까지 가르침과 사랑을 주신 내 선생님, 참 귀한 내 삶의 스승,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런데도 필자는 그 고마운 선생님들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의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죄스럽고 머리가 숙연해진다.

제 삶에 있어서 박정애 선생님을 만난 것은 하늘이 준 소중한 인연이며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꼭 마음을 전하고 싶었었는데 지천명이 넘어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나의 담임 박정애 선생님 사랑합니다.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길 소망합니다.”

 

내일은 나와 선생님의 인생이 더 밝고 환하게 빛나리라.

 

김진각 대표

 

1. 대전신일여고 총동문회장
2. 유성구 관평동 주민자치위원
3. 대전광역시 고등학교 총동문회연합 회원
4. 제19기 민주평화통일 서구 자문위원
5. 대한 안경사협회 여성정책이사
7. 충남고등학교 운영위원 3년
6. 뉴스포털1 시민기자
7. 일공공일안경 대전 관평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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