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 작가의 여행이야기] 그대, 아루나찰라로 초대합니다. -3-

이연자 작가 승인 2020.10.13 13:48 의견 0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는 것은 없어질 수 없나니

진리를 보는 자들은 이 둘의 차이를 보도다.

세계만물에 펼쳐져 있는 그것은 파멸되지 않음을 알라.

그 누구도 불멸의 그것을 파멸시킬 수 없다.

― 바가바드 기타 2장에서

 

락슈와미게이트에서


9. 라마나스라맘에서의 일과

나는 이곳 아루나찰라에서 닷새를 머물고 마이소르로 가려했다. 여태까지 빡세게 살았으니, 이국의 열대기후에 몸도 녹이며 휴가를 가져보리라. 닷새 체류 중에도 2시간 버스를 타고 폰티첼리로 가서 벵골만(bay)을 바라보려 했다. 대서양도 태평양도 모두 보았으니 벵골만을 보아야하고, 뭄바이에서 아웃할 때는 마린드라이브로 가서 아라비아해(sea)를 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냐가 내내 이곳에 있으라고 말하자 나는 착한 학생처럼 그 말에 따른다.

랑골리


아루나찰라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 프라닥시나를 하는 것이다. 기리(山) 프라닥시나(Giri Pradakshna, 기리발람)는 아루나찰라 산의 외곽 14km를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을 뜻한다. 아쉬람 정문 오른쪽에서 오른돌이를 시작하는데 조금 걷다보면 시내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시골길이 나타난다. 걷는 동안 내내 보이는 아루나찰라산은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며 모습을 보이고, 마지막 부분은 엄청난 혼잡이 기다리는 다운타운이다. 나는 5시간에서 6시간이 걸린다. 호젓한 산속의 길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완전에 이르는 수행의 길이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락슈와미 게이트에서


나는 오전에 프라닥시나 하기, 오후 2시에 락슈와미 게이트로 가서 락슈와미와 암마가 자동차로 나가시는 것 뵙기, 4시에 그곳을 나와 프라닥시나 하기, 저녁 9시쯤 돌아와서 다나의 베란다에서 4시간 정도 아루나찰라 산을 바라보기, 마지막 3일 동안은 새벽 1시에 프라닥시나 하기로 정했다.3

 

랑골리

 


돈을 쓸 일이 길거리의 사두에게 적선하거나, 짜이를 마시거나 릭샤를 타거나 리스를 사는 일 뿐이었다. 나는 비싼 리스를 골라서 락슈와미 게이트에 걸면 마음이 기뻤다. 어느 느지막한 오후에 꽃장사가 팔지 못해 시든 꽃을 이고 왔다. 나는 이미 꽃을 바쳤지만, 약간 시든 하얀 꽃 리스를 사서 게이트 앞 땅에 그려진 만다라 문양(rangoli, 남부인도는 아침마다 하얀 돌가루로 문 앞에 그린다) 가운데 놓인 소똥 위에, 리스를 올려놓는 퍼포먼스를 했다. 놀란 다나가 소똥에서 리스를 집어 꽃장사에게 게이트에 걸어놓을 것을 부탁하고 우리는 떠났다. 나중에 들리는 바로는 꽃장사 여인이 문을 두드려 그 꽃이 암마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이 나와서 누가 꽃을 준거냐고 묻자 외국인 헌신자들이 코리안 여자가 주었다고 전했다나 어쨌다나….

 

랑골리


10. 아름다운 그대―다나(가르쳐 베풀다, 산스크리스트어)

다나는 나의 새끼과외선생이 된다. 그는 얼마나 명료한지 그리고 얼마나 간절히 고군분투 온몸으로 정진하였는지 바람결에도 툭 쓰러질 것 같다. 그는 박사과정 중에 돌연 조계종 스님이 되었다. 그는 한때 지성이 과하여 톡 쏘는 아름다움을 지녔으리라. 처음에 가볍게 여겨지던 아루나찰라가, 아쉬람이, 바가반이, 헌신이, 모든 개념들이 그의 설명과 비유를 통해서, 유리를 통해 비치는 가을 햇살만큼 명료해지고, 겁을 통과하는 윤회의 개념만큼 한없이 무량해졌다. 나도 선생이지만 그는 확실히 가르치는 재능이 있었다. 왜일까?

목숨 바쳐 거부하고 실험하고 도전하여 부서졌기에, 그의 표현은 간절하게 나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것이었다. 애매하거나(ambiguous) 에두른 표현은 없었다. 놀랄 만큼 지적인 비유가 그의 백짓장 같은 얼굴과 마른 몸을 통해서, 커다랗게 뜬 한없이 투명한 그의 눈빛을 통해서 내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예컨대 “아루나찰라에서 태어난 개들조차도, 길거리의 남루한 사두조차도 엄청난 축복에 의해서 이곳에 태어난 것이다.” 라는 설명을 들을 때 비로소, 이 거리가 진실로 그렇게 다르고 풍부하게 변형되어 내게 다가왔다. 정말이다.

 


그를 통해서 일견 느릿느릿 진행되며, 외부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이 평온하고, 때론 지루할 것 같은 하루하루가 사실은, 목숨 내걸고 결투하는 진검승부가 벌어지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며, 이곳 아루나찰라가 절박한 결투장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물에 잠긴 듯 잠잠하고 고요하여도 마음공부 그 상태가 온 천하 백일하에 드러나고 마는 곳.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기에 생존해탈자의 눈에 반사된 자신을 점검하며, 극락과 지옥을 번갈아 경험하는 곳.

 

아. 아루나찰라

그는 이곳에 왜 온 것일까? 자신이 걸었던 길과는 다른 방향인데, 부서져버린 몸을 구하려? 나는 그에게서 고결한 수행자와 고독한 선지자 두 가지를 보았다. 과연 그는 어느 곳에서 그의 지친 영혼을 누일 텐가?

 

11. 아름다운 그대―로터스

락슈와미 게이트 앞에 외국인 헌신자들이 장기적으로 하루 종일 붙어있다. 3년, 5년, 심지어 10년을 헌신자로서, 게이트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 락슈와미와 암마가 차로 프라닥시나를 돌기 위해 하루에 한 번 문밖으로 드나드는 것을 알현하기 위해서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눈을 감고 명상하면서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헌신자(devotee)의 의미를 처음 알았다. 그들의 진지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나는 새로운 신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제사 밀라레빠가 묘사한 스승과 제자의 의미가 온몸으로 다가오며 이해되었다. 저 문 안쪽에 계시는 생존해탈자들이신 그분들과 직접적인 통로는 감히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연결된 이 헌신자들에게 존중의 마음이 저절로 일었다. 이삼 일 지나니 헌신자들을 가로막는 게이트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이해되었다.

철문이 열리고 하루 한 번 그분들이 차량으로 프라닥시나를 떠나면, 그제사 헌신자들에게 브레이크 타임이 주어진다. 한 50여 분 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약간, 긴장을 풀며 담소하기도 한다. 우리도 그렇게 서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골목으로 들어온다. 다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로터스

 

첫날부터인가, 대회당에서 하얀 옷을 입고 명상에 잠겨있는 그를 보았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놀란다. 명상 중에 계속 그의 머릿속에서 ‘락슈와미’라는 소리가 들려서, 그것이 게스트하우스 이름인 것 같아서, 집을 찾으러 내려온 것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머물 집을 구하러 외진 골목까지 내려오다가 우리와 마주친 것이다. 그는 국내 빠탄잘리 요가의 대가 중 한 명으로 반드시 깨닫겠다는 결심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한다.

그는 상당히 고요해 보였고 말도 어눌하게 들렸는데 아마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언어를 잊은 것이리라. 우리 셋은 15루피짜리 도싸를 먹으러 갔다. 보통 싸구려 밥으로 때우는 장기체류 외국인들이 단골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나와 셋이 프라닥시나를 하기로 정했다. 철이 잔뜩 든 우리는 같이 프라닥시나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각자 걷는 것이다.

 

 

얼마나 경건한 자인지, 그의 표현들은 그대로 그의 수행의 결과물이다. 그는 아루나찰라에 들어오는 버스에서 산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의 심장으로 산이 들어왔다고 한다. 또한 프라닥시나를 할 때,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뗄 때마다, 그대로 연꽃이 되어 아루나찰라 산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런 고백을 들을 때, 그의 경건함과 고매한 수행의 자세가 눈물겹도록 고맙게 들렸다. 그들의 수행 덕에 이 지구가 정화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더군다나 다나의 이야기와 비교해볼 때 그 둘의 이야기는 놀랄 만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 역시 깨달음을 위하여, 이생에서 부처를 이루기 위하여 목숨 걸고 살아왔으리라. 살아온 길은 달랐어도,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잠시 만나 웃음 함께 나누며, 존재함으로 위안을 느낄 수 있음이여. 고독한 수행의 과정에서, 눈빛 한번으로, 손짓 한번으로, 혼자가 아님을, 외로운 섬이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 잠시 허락된 기쁨이리라.

우리는 서로 말하기가 허락될 때면, 잠시 동안이라도 열심히 웃고 떠들어댔다.

초심자의 유치찬란함과 재기발랄함에 빵빵하게 바람 든 나는 프라닥시나를 하면서 내게 떠오르고 지는 생각들을 그래 그냥 바라보리라(위파싸나라면). 내게 떠오르는 모든 인연들에게 줄 수 있는 온갖 축복들을 다 주리라! 작심했다. 내가 마치 소풍을 즐기듯 걸었다면,

아! 그대는 얼마나 경건하던지, 프라닥시나를 하는 이 몸이 더 이상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한 생에서 그만 그치고 말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고요하게 고백한다.

 

아름다운 그대여. 이 길에서 부디 성불하소서.

 

사라담마와 암마


참고 : 스리 락슈마나 스와미(1925~ )와 그의 법제자 사라담마(1959~ )는 현존하는 진인이다. 1949년 바가반의 친존에서 깨달은 락슈와미와 1978년 락슈마나 스와미의 친존에서 깨달은 사라담마에 관한 이야기는 데이비드 가드먼의 『No mind I am the Self(무심 나는 진아다)』에 나와 있다. 조계종 스님인 다나와의 첫 만남에서 락슈와미 게이트로 따라간 나는 생존해탈자로 불리는 두 분의 집 앞에서 각국의 헌신자들이 문 앞에 앉아서 명상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떠나는 날까지 그렇게 했다.

 

이연자

자서전전문 ‘추억의 뜰’ 수석작가

영문학박사

Setonhall univ.에서 다수의 연극제작

아동문학 번역(11권)

자기계발서 집필(8권)

어르신생애사 신문연재, 관세신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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