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칼럼] 인연 因緣

송은숙 승인 2020.11.09 16:50 의견 0

가을이 되니 주변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책장에 쌓여 있는 책들이 보인다. 우선 표지가 누런 것부터 무조건 찾아 내려놓는 순간 책 한권이 떨어졌다. 피천득 시인의 ‘인연’이다. 헉. 겉장을 펼치니 ‘09년 1월 16일 ○○재단 ○○회장님께서 주심’이란 나의 글귀가 보인다. 거부할 수가 없는 것. 우리에게 주는 선물, 불조(佛祖) 성현도 피하고자 했으나 피하지 못했던 인연에 대해 한동안 생각한다.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나 노래 가사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인연에 대한 고찰이 참 많이도 있다. 지은이가 만났던 ‘아사코’와의 만남과 헤어짐에 얽힌 추억을 소재로 인연因緣이란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 주는 작품이다.

뺨에 입을 맞추고 반지와 동화책을 선물로 주고받은 첫 번째의 만남, 신발장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의아해 하는 아사코의 태도를 보여주는 두 번째 만남, 그리고 시들어가는 백합 같은 아사코와 악수도 없이 절만 하고 헤어지는 세 번째 만남,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는 끝 부분은 아사코에 대한 그리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점강적인 의미 전개가 곧 이 작품의 제목인 ‘因緣’과 맞닿아 있다. 因緣을 찾아보니 원인을 이루는 근본 동기로 뜻을 풀이하고 있다. 부모를 만난 것, 수많은 사람 가운데 짝을 만난 것. 자식을 만난 것, 사회생활 속에서 동료들도 뭔가 어떤 동기에 의한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뜻일까?

시절인연(時節因緣)은 불교의 업설과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으로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으로 쓰인다. 사람과의 만남뿐 아니라 사물과의 만남, 자연과의 만남에도 이런 원리가 있음이 보인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가냘프게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들도, 쓸쓸하게만 보이는 갈대들도, 온갖 색을 품고 떨어지는 고운 단풍잎들도 이 시기에 만나야 하는 시절인연이다. 그리고 그 인연은 또 변하고 떠나고 다시 다가온다.

 

인연

- 김종환 -

내가 있기에 내가 너를 본다.

네가 있기에 내가 너를 생각한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네가 있기에 내가 너를 만난다.

네가 있기에 내가 너의 이야기를 한다.

네가 있기에 내가 너와 의미를 만든다.

네게 있기에 너와 인연을 맺는다.

네가 있기에……

 

어쩌면 미리 운명적으로 맺어진 필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얕은 인연, 깊은 인연, 악연惡緣등의 인연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성숙해지곤 한다. 한여름의 햇살과의 만남이 과육을 단단하고 맛나게 하는 것처럼 만나면서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의 알게 되고 성숙해 가면서 성숙한 인간관계를 알아가고 맺어간다. 관계는 노력이기에 아름다운 인연들로 만들어 가는 삶을 맘껏 살아보라고 이 이름다운 생을 선물로 우린 받았다. 오늘 주어지는 고운 因緣앞에 고운 인연이 내가 되길 희망해 본다. 因緣의 책을 주신 인연께 오랜만이 인사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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