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자 작가의 여행이야기] 그대, 아루나찰라로 초대합니다. -4-

이연자 작가 승인 2020.11.12 13:43 의견 0

나마스테(Namaste नमस्ते), 내 안의 신(god)이 당신 안의 신(神)에게 경배합니다.
그 자리는 빛과 사랑과, 진리와 평화, 지혜가 깃든 온 우주입니다.
아름다움이여.


12. 스리 수브라마니엄(Sri. K. V. Subramanyam)

이곳의 디팜(Deepam) 축제는 1년 중 가장 성대한 시기로 히말라야 등지에서 많은 구루지들이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연히 아쉬람 경내에 있는데, 다나가 어떤 무리를 가리킨다. 쪼그랑 할아버지와 단정한 학자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주변을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다. 단정해 뵈는 사람은 가네산(Sri V. Ganesan)으로 유명한 저자이고, 그 쪼그랑 할아버지는 경지가 높으신 힌두 승려(스와미)로 가네산을 티칭하실 정도란다.

나는 흥미가 일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디카로 멀리서 사진을 찍을까 했더니, 내 사부인 다나가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좀 아쉽긴 하였지만 할 수 없이 나는 비서인 듯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분들의 정확한 이름을 적어달라고 하였다. 쪼그랑 할아버지와의 첫 대면은 그랬었다. 수많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한 소식하신 분을 이렇게 수월하게 경제적으로 알아보는 것도 아루나찰라에서 오랜 기간 수행하며 살고 있는 다나의 덕분이다.

다음 날 점심시간에 역시나 그 쪼그랑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먼발치에 서 있다가 조금 가까이서 그분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몇 걸음 다가갔다. 무례하지 않은 거리에서 서 있으려니, 그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거신다.

일본인, 한국인? 한국인입니다요.

오, 한국인, 한국인들은 너무 지성적이지, 하늘 문을 열어달라고 똑똑 노크하지만 입장 사절(No Admittance)!

둘러싼 사람들이 박장대소한다. 나도 같이 미소지었지만 사형선고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성격이 밝으신지 계속 이야기 하신다. 그러더니 점심식사 때 보자고 하신다. 식사시간 줄을 맞춰 입장할 때 나는 얼른 할아버지 옆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식탁에 앉으시며 가서 식사하라고 말하시기에, 같이 식사하고 싶다고 했더니 나를 따라오신다. (나중에 보니, 식탁은 앉기가 힘든 노인들과 승려들을 위한 배려였다.)

산더미 같은 밥을 받으시더니, 나더러 식사를 너무 적게 한다고 하시며 당신 밥을 손으로 휘익 떠서 던지듯이 내 바나나 잎에 나누어 주신다. 그 후 할아버지와 나는 아쉬람 안에서 여러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간디가 많은 것을 포기하라고 했는데, 본인은 한 가지 포기가 안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영)문학(English literature)이라고 하셨다. 옥스퍼드를 나오셨다 한다. 여러 작가들을 말씀하시고, 내가 말한 작가들은 최근 작가라 모르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굉장히 박학다식하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기 때문인지,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수집하는 노하우를 알고 계신다.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지시므로 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스킬(skill) 말이다.

식사가 끝나고 할아버지와 함께 식당 바깥으로 나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싸는데, 전부 다 박사라고 소개를 한다. 나더러 한국미인(Korean Beauty)이라고 하시고, 아주 똑똑하게 보이는 아가씨는 저널리스트인데 인도미인(Indian Beauty)이라고 하신다. 그 아가씨는 진짜 미인이더구만. 그러시더니, 주위 사람들에게

“저 라라(내 영어이름)를 봐라. 저렇게 어리고 예쁜데 ph.D가 있대. 내 딸 세대라고 해도 되지.”

(아이구 민망하여라) 나중에 이 소리에 붙잡혀 그분은 나의 파파가 되고, 나는 그의 딸 (spiritual daughter)이 된다.


그러시더니, 한 번 더 오버를 하신다. “아이구, 라라의 저 아름다운 이를 봐, 나는 이가 하나도 없는데….” 그의 지적에 모두 다 유쾌하게 내 이를 한 번씩 쳐다본다. 사실 나는 고른 치열을 가지고 있어서 칭찬을 많이 받아보긴 했지만, 인도까지 와서도….

애니웨이, 주위의 한 남자가 그분의 별명이 ‘백과사전 스와미(encyclopedia swami)’라고 말해준다. 그분은 라마승 중에서도 아주 깊으셔서 많은 존경을 받고 계셨다.

13. 총증항극(寵增抗極) ― 총애가 더해질수록 교만하지 말고 극진해야 한다

나는 다나에게 낱낱이 보고한다. 다나는 ‘입장사절’ 이야기에 적이 놀란다. 그리고 한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 한다. 얼마 전 누군가가 스와미에게 다가갔었고, 스승 되기를 청했다가 거절당했었노라고 말해준다. 나는 여전히 아쉬람 경내보다도 바깥일에 몰두한다. 조금 알려진 구루(guru, 스승)의 삿상에 가서 한번 들어본다. 다나는 그 구루보다 로터스가 훨씬 경지가 높다고 말한다. 외국인들이 껌뻑 넘어가지만 그들의 고뇌는 사실 몇 가지 범주에 적용된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우울증 아닌가. 절박하게 이야기 하지만, 결국 우울증 환자라는 이야기다. 그 구루의 용어 중에 쌈빡한 게 하나 있다면 “cocktail of ‘I-am’” 정도랄까. 내 사부 다나가 훨씬 상급이다. 이 동네에는 아쉬람도 많고, 렉쳐를 하는 구루들도 부지기수란다.

나는 파파에게 산스크리스트어(고대 인도어, 완성된 언어라는 뜻)로 내게 맞는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점심식사 후에도 나는 그분을 졸졸 따라다녔다. 파파는 나더러 쉬어야 한다고, 가서 낮잠을 자라고, 그리고 가슴 깊은 곳의 소리를 들으며 묵상하라고 권하신다. 오우케이, 파파.

며칠 뒤 우연히 챈팅 시간에 대회당에 갔는데 파파가 출입구 쪽에서 신문지를 깔고서 챈트(chant, 단순하고 반복적인 곡조의 성가)를 하고 계신다. 나는 그 옆에 있는 매트에 앉아 바싹 기대어 그분의 챈트를 듣는다. 수십 년간 되풀이 하셨을 타밀어 챈트의 단조로운 음률과 음색에 감동이 밀려왔다. 파파가 갑자기 챈트를 하시다 말고, 남루한 쌕에서 구깃구깃한 종이를 꺼내시더니, 무언가 열심히 적으신다. 발바닥을 보니 맨발로 걸으셔서 다 갈라져서 찢어져 있다. 그 발바닥을 내가 만져본다. 웃으신다. 파파의 먼발치에는 항상 비서인 듯한 분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파파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쌕을 슬쩍 보니, 구깃구깃한 검정 비닐봉지(plastic bag)가 2장 보였다. 내가 가진 물건에서 금방 마르는 흰색 스포츠수건 한 장과, 검은색 벙거지 모자, 자유시간 초콜릿 두 개를 드렸다. 파파는 40년 동안 아무 것도 받지 않는다는 본인의 원칙을 지켜왔다고 하시며, 초컬릿 한 개만 받으신다.

알았사옵니다. (그러니까 쓰던 물건을 들고 온 것 아니옵니까.)


파파가 글을 쓰고 계시는 동안 나는 지퍼락을 가방에서 한 장 얼른 꺼내서 쌕에다 집어넣었다. 파파는 흠칫 놀라더니, 대체 무엇이냐고 물으셔서 비닐봉지 한 장이라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못 미더웠는지 쌕을 당신 앞으로 가지고 가서 지퍼를 닫으셨다. 그런데 너무 세게 잠그시니 닫히는 게 아니라 찌익 벌어져 버린다. 나는 깔깔깔깔 소리 내서 크게 웃는다.

하하하하. 파파도 어이가 없는지, 내 웃음소리에 전염이 되어서인지 같이 웃고 만다.

종이 한 장을 쓱 내미신다. 내 이름이다. 우와. 기쁘다. 땡 잡았다 아이가!

필기체로 쓴 내용을 한번 옮겨보겠다.

I suggest the following name: Ramani (산스크리스트어 )

(n is stronger than n(the tip of the tongue is placed in the middle of the palate away from the teeth, unlike n). There is no equivalent sound to n in English.)

Ramani(n pronounced Ramanee) means “one(a girl or woman) who gladness or pleases.”

Ramana = a boy or man who gladness or pleases.

내 산스크리스트어 이름은 ‘라마니’로, n 아래 방점이 있는 소리로 똑같은 영어 발음은 없다고 친절하게 음성학적 해설까지 써주신 것이다. ‘기쁨 혹은 즐거움’이라는 뜻을 가진 ‘라마니’라는 이름을 받고 얼마나 행복하던지.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 만나서 사진도 한 장 같이 찍기로 약속했다. 이제 떠날 날이 다가온다. 금요일 아침에 떠날 예정이므로 아침 7시에 만나기로 하였다. 프라닥시나가 늦게 끝나 아침 시간을 못 맞추었다. 그런데 아쉬람 앞길에 파파가 지나가신다. 인사하고 헤어진다.

안녕(Good bye). 파파.

뒤돌아보니 낡은 쌕 하나 둘러메고 번잡한 아쉬람을 지나 저 아래로 휘휘 걸어내려 가시는 파파의 굽은 뒷모습. 힌두 승려를 스와미라 부른다지. 본인은 그냥 수많은 헌신자 중의 한명으로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지. 문학은 포기하지 못했다고도 하셨지. 멀어지는 파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적 풍미나 문학적 취향을 우선하는 단점을 가진 나는 모든 이들에게 더욱 공평하고 반듯하게 대하겠다고 서원하였다. 안녕. 파파.

이연자

자서전전문 ‘추억의 뜰’ 수석작가
영문학박사
Setonhall univ.에서 다수의 연극제작
아동문학번역 (11권)
자기계발서 집필 (8권)
어르신생애사 신문연재, 관세신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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