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칼럼] 직장 내 괴롭힘

이은정 노무사 승인 2020.12.10 14:41 의견 0

노무법인 정음 공인노무사 이은정

몇 년 전 한 간호사가 직장 내 ‘태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또 다른 간호사도 태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병원에서 장례도 하지 말고 병원 사람들은 조문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태움’은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의 한 유형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할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발생시키고 삶을 파괴한다.

‘태움’이라는 고유용어가 있을 정도로 만연한 악폐습이었지만, 그동안 이를 제재할 만한 마땅한 노동관계법령이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단순한 기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이에 대한 법제화가 논의되었고, 이에 2018년 12월 27일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과 ‘사업주의 방지의무’를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약 1년이 지난 현재,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방치법”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는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제도 시행 이전에는 그저 소주잔을 기울이며 울분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면, 요즘은 ‘인사부서나 고용노동청을 가볼까?’하는 선택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 제도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진정접수는 4,066건(2020. 5.까지)에 달하고 공인노무사 업계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상담 또는 조사 의뢰 건수가 매우 증가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는 ①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②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사업장 내에서 자율적으로 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 등에 반영, ③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사용자에게 조사 및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피해자에 대한 휴가 등 피해자 보호조치, ④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된 경우 가해자 징계 등 조치, ⑤ 신고를 이유로 피해자나 신고인에 대해 해고 등 불이익한 처분을 하는 경우 사법처리(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어, 처벌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예방과 사업장 내에서 자율적으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직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 사안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법상 요건에 해당하는 것만이 가능하며, ▲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되어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당사자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일회적 또는 단기간의 것인지 또는 계속적인 것인지 여부 등의 구체적인 사정”을 참작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되, 객관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서 다양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예를 명시하고 있는데, ▲ 정당한 이유 없이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인 대우 등에서 차별하는 경우, ▲ 의사와 상관없이 음주/흡연/회식 참여를 강요하는 경우, ▲ 업무에 필요한 주요 비품(컴퓨터, 전화 등)을 주지 않거나 인터넷·사내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하는 경우, ▲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주지 않는 경우, ▲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병가· 복지혜택 등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의 시행 1년. 그 시작 자체가 반가웠던 기간이었다. 필자는 보다 실질적인 권리구제를 위한 제도의 보완 노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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